![]() |
||
▲ 정석현 수산그룹 회장. |
수산그룹의 IT보안 소프트웨어 전문회사인 수산INT가 코스닥에 상장한다.
정석현 수산그룹 회장은 자수성가한 건설기계 전문가인데 한 청년의 미래를 보고 투자해 수산INT를 키워냈다.
◆ 수산INT, 코스닥 상장
수산INT가 11일 코스닥에 상장한다.
수산INT는 올해 초 플러스기술에서 회사이름을 바꾸었다. 플러스기술은 인터넷 초창기시절이던 1990년대 말 ‘수호천사’라는 유해정보차단 서비스를 선보이며 선구자로 꼽히던 회사다.
수산INT는 유해정보차단 서비스시장의 경쟁이 과열되자 공유단말 접속관리 서비스를 새로운 먹거리로 개발했다.
공유단말 접속관리 서비스는 인터넷 한 회선 당 몇개 기기가 접속하는지 파악하는 기술이다. 국내 인터넷서비스 회사는 이 기술을 이용하면 여러 컴퓨터를 한 회선에 연결해 많은 트래픽을 발생시키는 고객으로부터 추가 요금을 받을 수 있다.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 등이 수산INT의 솔루션을 사용하고 있다.
수산INT는 네트워크 접속관리 솔루션 ‘이워크’도 판매하고 있다. 이워크는 특정 시간에 네트워크 접속을 차단하거나 컴퓨터를 어떤 용도로 사용했는지 분석해주는 솔루션이다. 행정자치부 산하 관공서 190여 곳에서 사용하고 있다.
수산INT는 보안소프트웨어사업도 하고 있다. 청와대와 군, 검찰, 금감원, 현대차, 포스코 등 914곳에 보안소프트웨어를 납품하고 있으며 베트남 등에 수출하고 있다.
수산INT의 창업자는 수산INT에서 기술최고책임자(CTO)을 맡고 있는 박형배 이사다.
박 이사는 안동대 대학원생이던 1997년 대학생 소프트대회 경진대회에서 유해정보차단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우수상을 받았다. 그는 정석현 수산그룹 회장을 찾아가 투자를 요청했고 정 회장은 투자를 결정했다.
정 회장은 1998년부터 2008년까지 120억 원 정도를 투자했고 수산INT는 2008년 처음 흑자를 낸 이후 매년 수십억 원씩 흑자를 내고 있다.
수산INT는 지난해 매출 141억 원, 영업이익 44억 원을 냈으며 영업이익률은 31.3%에 달한다. 무차입 경영으로 부채비율도 3.2%에 불과하다.
사업부문별로 보면 공유단말 접속관리가 73.9%, 모바일유해차단서비스가 9.2%, 보안솔루션이 16.9%를 차지하고 있다.
수산INT의 대표는 SK브로드밴드 네트워크부문장를 역임한 이승석씨다.
이 대표는 “수산INT는 특허를 85개나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특허경영을 하고 있다”며 “핵심기술을 원천보유한 덕분에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 정석현, 수산그룹 일궈내다
정석현 수산그룹 회장은 올해부터 각 계열사들에 ‘수산’이라는 그룹명을 붙이며 수산그룹의 브랜드를 통합했다. 수산INT의 회사이름이 바뀐 것도 이 때문이다.
수산그룹은 수산인더스트리(석원산업)을 모태로 수산중공업(건설장비), 수산E&S(원전 유지보수), 수산INT 등을 계열사로 두고 있다. 지난해 그룹의 전체매출은 2800억 원에 이른다.
![]() |
||
▲ 박형배 수산INT 기술최고책임자(CTO). |
정 회장은 전북 장수에서 농부일을 하던 아버지 밑에서 1남 4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가난 탓에 중학교 진학도 힘들었지만 오수중 입학시험에서 수석을 해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취업을 위해 전주공고 기계과에 진학했고 일하면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0년 현대건설에 고졸 공채 1기로 입사했다. 현대건설에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정인영 한라그룹 회장,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결재를 직접 받으며 일을 배웠다.
현대건설에 다니면서도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았고 1979년 한양대학교 기계공학과를 야간으로 졸업했다. 그는 학사학위를 받자 가난을 벗어나려면 직장생활로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고 사업의 길을 선택했다.
처음에는 서울 청계천에서 공구상을 시작했다. 어음 대신 현금결제를 하는 파격을 선보이며 큰 성공을 거두었고 1983년 플랜트 공사전문 기업인 석원산업을 창업했다.
현대건설 시절 쌓은 인맥을 활용해 원전과 발전소 사업에서 하청을 수주했다. 2004년 법정관리 중이던 수산중공업을 인수하며 수산그룹의 기반을 마련했다.
수산중공업은 유압브레이커(굴삭기를 작동시키는 주요 기계장치)와 유압드릴 등 건설용 파쇄장비를 생산하는 기업이었는데 IMF당시 어려움을 겪으며 새 주인을 찾고 있었다.
정 회장은 수산중공업을 인수한 이후 선택과 집중을 통해 제품의 품질과 기술을 개발하는데 주력했다.130여개에 달했던 제품 수도 60여개로 줄이고 수출에 집중했다.
정 회장이 회사의 자원을 효율적으로 집중한 덕분에 수산중공업은 수출중심의 강소기업으로 재기하는데 성공했다. 수출지역도 선진국에서 중동과 동남아 등 90여 개국으로 쉽게 확대됐고 정 회장은 2008년 금탑산업훈장도 받았다. [비즈니스포스트 이승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