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네시스가 미국에서 렉서스 추격을 본격화하고 있다. 사진은 GV70 전동화모델. <이미지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현대자동차의 고급브랜드 제네시스가 작년 미국 진출 7년여 만에 '괄목상대'할만한 판매 성과를 기록했다.
다만 1980년대 말 미국에 발을 들인 뒤 현지 고급차 시장에 단단히 자리잡은 토요타 렉서스와 비교하면 아직 작년 판매량은 5분의1 수준에 그쳤다.
제네시스가 렉서스 추격을 본격화하기 위해서는 내년 이후 플래그십 전기차 출시, 현지 전기차 판매량을 얼마나 끌어올리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22일 세계 완성차 업계 판매실적 자료를 종합하면 제네시스는 지난해 미국에서 2022년보다 23% 증가한 6만9175대를 판매하며 같은 기간 6만4699대가 팔린 일본 닛산의 고급브랜드 인피니티를 2년 연속으로 꺾었다.
2016년 준대형 세단 G80과 대형 세단 G90을 앞세워 첫 미국 땅을 밟은 제네시스는 2020년까지 현지 연간 판매량이 1~2만 대 수준에 머물렀다. 하지만 2021년부터 GV80과 GV70 등 SUV(스포츠유틸리티 차량) 모델을 투입하며 판매 고공행진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제네시스는 2021년 미국에서 전년보다 3배 넘게 뛴 4만9621대의 판매실적을 올렸다. 2022년엔 5만6410대로 상승세를 이어가며 사상 처음 닛산 인피니티를 제쳤다.
인피니티가 제네시스보다 30년 가까이 앞선 1989년 미국에서 출범한 점을 고려하면 제네시스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룬 셈이다.
다만 제네시스가 1989년 토요타의 고급화 전략 일환으로 미국에서 출발해 '환골탈태'하며, 미국 대표 프리미어 브랜드로 자리잡은 렉서스에 다가서기 위해선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작년 렉서스는 미국에서 32만249대를 판매하며 100여년 전 애초 고급 브랜드로 시작한 유럽 전통의 BMW(36만2244대), 메르세데스-벤츠(35만1746대)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또 렉서스는 미국에서 되살아난 하이브리드차 인기를 타고 2023년, 전년 대비 판매 성장률에서도 제네시스보다 높은 24% 성장률을 기록했다.
하이브리드차 중심 친환경차 전략을 펼친 렉서스는 8종에 이르는 강력한 하이브리드 라인업을 가진 반면 제네시스는 현재 보유하고 있는 하이브리드 차종이 없다.
데이터분석 컨설팅 업체인 글로벌데이터에 따르면 미국에서 하이브리드차 판매량은 2020년 이후 2년 동안 배 이상 증가한 데 이어 2023년에도 35% 증가한 것으로 추산됐다.
또 미국의 하이브리드차 침투율(해당 상품을 구매하는 목표시장에서의 비중)은 지난해 10월 기준 8.3%를 기록하며, 전기차 침투율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블룸버그는 부족한 충전 인프라와 높은 전기차 가격에 부담을 느낀 소비자들이 전기차 대신 하이브리드차를 선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작년 하반기부터 미국 전기차 시장을 놓고 비관론이 끊임없이 일었지만 지난해 미국 전기차 시장 규모는 사상 처음 100만 대를 돌파했고, 올해도 증가세를 지속할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S&P글로벌은 "전기차에 대한 소비자 수요 둔화에도 전기차 소멸에 대한 보고서는 크게 과장됐다"며 올해 미국 전기차(BEV) 시장 규모가 2023년과 비교해 66.4%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제네시스가 27년 앞서 미국 시장에 진출한 렉서스를 본격 추격할 수 있는 계기는 전기차 시장 전환 과정에서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제네시스는 내년부터 모든 신차를 전기차로만 출시하겠다는 공격적 전동화 전략을 세웠다.
▲ 제네시스 GV90 디자인 예상도. <유튜브 채널 '뉴욕맘모스' 영상 캡처> |
현재 제네시스는 미국에서 GV60과 GV70 전동화모델, G80 전동화모델 등 3차종의 전기차를 미국에서 판매하고 있지만 렉서스는 지난해 1분기 현지에 출시한 RZ 단 한 차종만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제네시스는 미국에서 전기차 판매량을 3.8배 가량 늘렸지만 여전히 3차종의 합산 전기차 판매량은 6403대로 미미한 수준이다.
미국서 판매하고 있는 GV70과 G80 전동화모델은 기존 내연기관차의 파생모델로 상품성에서 한계가 있고 유일한 전기차 전용플랫폼 E-GMP 기반 전기차인 GV60은 준중형 차급으로 중대형 차량 수요가 높은 미국 시장에 대응하기엔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다.
현대차는 내년 하반기 완공하는 울산 전기차 전용공장을 제네시스의 대형 전기 SUV GV90 생산을 시작으로 본격 가동할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의 역대 전기차 라인업 가운데 최고의 상품성을 갖춰 출시될 플래그십 전기차 GV90은 제네시스가 미국에서 고급 전기차 브랜드로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그룹은 eM의 개발 목표로 E-GMP 대비 주행거리 50% 이상 개선, 운전대에서 손과 발을 완전히 뗄 수 있는 레벨3 이상의 자율주행 기술 적용, B필러(차지붕과 차체를 연결하는 2번째 기둥)를 없앤 양문형 도어 적용, 내장형 공기청정 시스템 탑재 등을 세워 뒀다.
특히 GV90과 같은 대형 전기 SUV는 북미 최종 조립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는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가격 상한 기준인 8만 대를 훌쩍 뛰어넘어 국내에서 수출해도 가격경쟁력이 훼손될 우려가 없다.
제네시스는 2016년 미국 진출 당시 2차종에 그쳤던 라인업을 현재 8차종으로 늘리고, 최근 5년 동안 7배에 달하는 판매 확대를 이뤘다. 작년 말에는 7년여 만에 누적 판매 25만 대를 넘어섰다.
올해는 최근 현지 출시한 GV80 부분변경(페이스리프트) 모델과 GV80 쿠페를 앞세워 또 한번의 판매 확대에 나선다.
그룹 관계자는 "제네시스는 올해 미국에서 의미 있는 기록을 달성할 것"이라며 "3분기 무렵엔 미국 시장 누적 판매 30만 대 달성이 유력하다"고 말했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