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0년대 중반 민간 아파트에 무량판구조를 최초로 도입한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단지 모습. HDC현대산업개발은 회사 공식 홈페이지 첫 배경화면으로 압구정 현대아파트 이 사진을 쓰고 있다. < HDC현대산업개발 > |
[비즈니스포스트] “최근 신축 아파트 중에 무량판구조로 지어진 곳이 어디 있나요?”
최근 공공아파트 지하주차장 부실시공 사태와 관련 무량판공법에 관한 막연한 불안감이 확산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무량판구조 아파트 확인하는 방법’이라는 제목을 단 게시글도 심심찮게 보인다.
3일 건축업계 전문가 등의 말을 종합하면 무량판구조 자체는 문제가 없는 공법이라고 입을 모은다. 실제 인천 검단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사고를 비롯해 이번 한국토지주택공사 발주 아파트들의 전단보강근(철근) 누락 사태는 설계오류, 도면착각 등이 원인이었다.
무량판구조는 건축구조의 한 종류로 하중을 받쳐주는 수평 기둥(보) 없이 위층 수평 구조인 슬래브(바닥)를 수직 기둥이 직접 지탱하는 공법이다.
수평구조 부재인 보가 없어 층고를 높일 수 있는 등 공간 효율성이 좋아 백화점 등 상업용 시설부터 병원, 사무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건물에 적용되고 있다.
주거용 건축물에는 잘 쓰이지 않았던 공법이라고 하지만 한국에서도 1970년대에 이미 무량판공법을 아파트에 적용했다.
▲ 서울 강남구 압구정 현대아파트 단지 모습. <현대건설 70년사> |
바로 ‘부자 아파트’의 대명사인 압구정 현대아파트가 주인공이다.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한강을 눈앞에 둔 준공 48년차 단지다. 1974년 현대1,2차 단지 건설사업이 시작돼 1987년 14차까지 6천 세대 규모로 한국 고층 대단지 아파트의 길을 열었다.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15층 높이로 지금 시선으로는 고층이 아니지만 1970년대 당시에는 신기술과 신공법이 대거 도입된 아파트였다.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현재 HDC현대산업개발이 된 현대건설 주택사업부에서 시작된 프로젝트다.
현대건설은 홈페이지에 게재한 ‘현대건설 70년사’에서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는 당시 도심 한복판의 값비싼 오피스건물에서나 가능했던 첨단기술을 적용한 공동주택”이라며 “당대 최고 건축기술이 집결된 경연장이었다”고 쓰고 있다.
현대건설은 “마포아파트가 지어진 1960년대 초반 이래 아파트 건설에는 철근콘크리트 기둥식(라멘) 구조가 주류를 형성하고 있었지만 현대아파트는 무량판구조와 조립식구조 등 선진공법을 적용해 건축적 완성도를 높였다”고 설명했다.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무량판구조 아파트지만 실제 견고성과 실용성 등 측면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현대아파트는 튼튼하다’는 이미지를 구축하는 토대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 삼성동 아이파크 아파트 모습. < HDC현대산업개발 > |
HDC현대산업개발은 그 뒤 2000년대 들어 삼성동 아이파크 아파트에도 무량판구조를 도입했다.
삼성동 아이파크는 46층 높이 초고층 아파트로 2004년 준공됐다. 슬래브, 보, 기둥으로 구성하는 일반적 철근콘크리트 기둥식 구조와 달리 보가 없는 무량판구조를 채택하면서 슬래브 두께는 보통 아파트보다 40~60% 더 두껍게 적용했다.
또 무량판구조는 보가 없어 하중이 집중되는 기둥 주위 보강작업이 필요한 점을 고려해 기둥 주변 철근을 보강해 안정성을 확보했다. 이번 공공아파트 부실사태에서 문제가 된 그 전단보강근이다.
실제 삼성동 아이파크는 최근 무량판구조의 안정성에 의구심이 높아지자 '무량판구조 자체는 죄가 없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례로 주목받고 있기도 하다.
삼성동 아이파크는 앞서 2013년 11월 서울 상공을 날던 헬기가 짙은 안개로 아파트 24~25층 부근에 충돌해 외벽 일부가 무너졌지만 건물구조에 손상이 없었다.
▲ 1906년 미국 위스콘신주 밀워크 제3지구 중심부에 건설한 마샬빌딩 모습. <마샬빌딩 공식 홈페이지> |
세계적으로도 무량판구조는 1900년대 초반부터 건물에 도입돼 120년 가까운 세월동안 널리 활용돼 온 건축공법이다.
무량판구조는 미국의 구조 엔지니어 클라우드 엘렌 포터 터너가 디자인해 1908년 특허를 받았다. 클라우드 터너는 1869년생으로 펜실베니아 리하이대학 공과대학을 졸업한 뒤 건축회사 엔지니어로 근무하다 1901년 회사를 세우고 플랫 슬래브(Flat Slab), 무량판구조를 개발했다.
클라우드 터너는 1905년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의 ‘존슨-보비 빌딩’에 보가 없이 기둥이 콘크리트 바닥을 지지하는 무량판구조를 처음 적용했다.
현재 존재하는 가장 오래된 무량판구조 건물인 미국 ‘마샬빌딩’도 비슷한 시기에 지어졌다.
여전히 미국 위스콘신주 밀워키 도심에 자리잡고 있는 마샬빌딩은 1906~1907년에 5층짜리 건물로 건설됐다. 그 뒤 2011년 6층을 추가해 완공했다.
마샬빌딩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이 건물은 클라우드 터너의 무량판구조 시범 프로젝트로 강철 철근으로 보강한 평평한 슬래브 콘크리트 바닥을 사용했다. 강철 프레임 바닥을 적용해 건설비용이 더 많이 들었지만 튼튼하고 오래 사용할 수 있는 건물로 지어졌다고 소개했다.
마샬빌딩은 2002년 미국토목학회가 선정하는 토목공학 랜드마크에 이름을 올렸다. 현재도 카페와 갤러리, 기업사무실, 부티크 등이 입주해있다.
▲ 제다타워(왼쪽 첫번째) 이미지. <제다타워 공식 홈페이지> |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 될 사우디아라비아 ‘제다타워’도 구조설계에 무량판구조를 채택하고 있다.
킹덤타워로도 불리는 제다타워는 완공 시 예상 높이가 1008m로 세계 건축물 가운데 처음으로 1km를 초과하게 된다. 현재 가장 높은 빌딩인 두바이 부르즈 칼리파는 828m다.
제다타워는 호텔, 업무·상업시설, 주거시설, 전망대 등이 조성되는 초고층 빌딩으로 엘리베이터만 59대가 들어간다. 제다타워는 전체 건물이 철근콘크리트로 건설되며 건물 중앙의 삼각형 중심부에서 3면으로 날개가 뻗어나간 듯한 구조로 설계됐다.
건물의 호텔, 사무실, 주거시설 공간 등은 250mm 두께의 슬래브 바닥과 벽으로 구성한 수직 지지대가 지탱하는 구조로 짓는다. 아웃트리거 벽이나 기둥 대들보 등은 없는 구조다.
이밖에도 미국 뉴욕 맨해튼의 초고층빌딩 원월드트레이드센터(417m), 대만의 타이페이 101 빌딩(509m) 등 세계 마천루 빌딩들 다수에 무량판구조가 적용돼 있다.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