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스튜어드십이 온다③] AIGCC 배희은 “투자자도 기후변화 피할 수 없다”

▲ 배희은 AIGCC 이사는 비즈니스포스트와 인터뷰에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투자자들의 기업 관여가 필수불가결하다고 강조했다.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32조 달러. 우리 돈으로 약 4경2560조 원. 기후변화에 관한 아시아 투자자그룹(AIGCC)에 참여한 아시아 금융기관들의 자산 규모다.

AIGCC에는 한국, 중국, 일본, 홍콩, 대만 등 아시아 11개 지역의 70여 개 기관투자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AIGCC를 통해 기관투자자들은 투자한 기업들을 향한 ‘기후행동’을 벌이고 있다. 이른바 기후 스튜어드십(Climate Stewardship) 활동이다.

아시아에서는 한국전력, 포스코홀딩스, SK이노베이션 등 40개 기업이 그 대상이다.

AIGCC는 세계 700여 개 기관이 참여한 글로벌 투자자 이니셔티브 ‘기후행동(Climate Action) 100+’의 간사조직으로서도 기업들에 대한 기후 스튜어드십 활동을 벌이고 있다.

또한 AIGCC는 기후변화, 저탄소 투자 관련 리스크와 기회에 관해 아시아 자산 소유자들과 금융기관의 의식을 고취하고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기관투자자들은 왜 AIGCC와 함께 기후 스튜어드십 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일까? 환경단체도 아닌 투자자들이 이런 식으로 '기후행동'을 해도 수익 창출을 지속할 수 있는 걸까?

비즈니스포스트는 23일 AIGCC의 배희은 이사를 만나 기후 스튜어드십에 대해 물었다. 배 이사의 설명은 명쾌했다.

“투자자가 투자한 기업의 지분을 팔아 기업에서는 빠져나올 수 있지만 기후변화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 전체적으로 기후변화가 자신의 포트폴리오에 직접적 영향이 있다는 것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한 기업의 기후변화 대응 노력이 부족하면 기관투자자들은 그 기업에서 투자를 철회할 수 있다. 그렇다 해도 기후변화 대응이 느린 모든 기업에서 발을 뺄 수는 없다. 다시 말해 기후변화 리스크에 노출된 세계 경제 전체에서 투자를 철회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특히 연기금 등 대형 투자기관들은 글로벌 대기업들을 투자에서 배제하기가 어렵다. 포트폴리오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기관투자자들이 기존 포트폴리오에 포함된 기업들과 비공개 혹은 공개 대화와 서한 발송, 주주제안, 개입 등 관여(Engagement) 활동을 통해 기업들에 기후변화 리스크 대응을 요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투자자가 보유 포트폴리오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자세히 들여다 본 후 벌이는 활동 가운데 하나가 바로 기업 관여다. 

배 이사는 “자신의 포트폴리오 안에 있는 기업을 중심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거나 그런 기업들을 선정해 (기업이 변화할 수 있도록) 기업 관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서는 민간 자본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배 이사는 “기후변화 대응은 민간 금융자본이 어마어마하게 투입돼야 성립이 된다”며 “탄소중립으로 가기 위해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만 37조 달러(약 4경9천조 원)라는 천문학적 자금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있는데 이는 정부 차원에서 절대 모두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블룸버그뉴에너지파이낸스(BNEF)가 올해 초 낸 보고서에 따르면 앞으로 탄소중립을 위해 화석연료와 비교해 재생에너지 관련 투자가 7배 이상 집행돼야 한다.

배 이사는 선견지명이 있는 기관투자자들은 기후변화 대응에 필요한 노력을 비용이 아닌 기회로 본다고 했다.

그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전환의 과정에서 투자자들에게 많은 기회가 생길 것"이라며 “일부 투자자들은 이미 재생에너지, 기후테크에 높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투자자들은 기후변화에 따른 자신의 포트폴리오 리스크에 대해서도 면밀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배 이사는 "투자자들이 지구 온도 상승에 따른 시나리오 분석, 기업의 기후변화 관련 재무정보 공개 협의체(TCFD) 공시 분석 등을 통해 포트폴리오의 리스크를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기업 관여 활동을 진행한다”고 말했다.

AIGCC는 투자자들이 여러 분석을 통해 기후변화와 관련한 데이터를 쌓고 이를 기반으로 기업 관여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배 이사는 “기업 관여와 관련해 가장 큰 오해는 투자자들이 기업들의 잘못한 부분만 지적한다는 것”이라며 “투자자들은 기업이 탄소중립을 위해 잘한 부분도 적극적으로 평가한다”고 설명했다.

AIGCC가 국내 기업들에 보낸 서신들이 한 예다.

SK이노베이션이 2021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사업별 세부 방안 및 투자계획 등을 담은 ‘넷제로 선언’을 한 뒤 AIGCC는 SK이노베이션의 전략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서신을 발표했다.

반면 2020년 한국전력에는 신규 석탄화력발전 투자 계획을 철회할 것을 요구하는 등 탄소중립 전략을 수립하고 더 많은 행동을 촉구하는 서신을 보냈다.

배 이사는 “다만 단순히 탄소중립 등 계획을 세우는 부분을 보는 것이 아니다”며 “계획이 구체적으로 자세히 세워졌는지, 과학적 기반을 통해 수립됐는지를 중점적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기후 스튜어드십이 온다③] AIGCC 배희은 “투자자도 기후변화 피할 수 없다”

▲ 배희은 이사(왼쪽에서 두 번째)는 지난 4월18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열린 '국민연금 2040 넷제로 달성 방안 토론회'에서 '해외 연기금의 넷제로 추진 동향' 발제를 통해 국민연금과 비교해 해외 연기금들의 적극적 기후 행동을 소개했다.

AIGCC는 기업 관여를 넘어서 각국 정부 정책에 관여하는 정책 지지(Advocacy) 활동을 이미 시작했다.

배 이사는 정책을 기후변화 대응의 시스테믹(Systemic) 리스크, 즉 ‘전체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요소로 봤다. 결국 기업 관여와 더불어 정책지지 활동이 잘 어우러져야 발전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배 이사는 “작년부터 정책 지지 활동을 시작했다”며 “이전에는 정책 분야에서는 어떤 정책이 나오면 그것에 관해 목소리를 내는 정도였는데 이제 실질적으로 투자자들과 정책 입안 관계자들, 필요에 따라서는 기업까지 같이 대화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우선 일본과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에서 기업 관여 활동과 연관 지어서 정책 지지 활동을 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AIGCC는 현재 40여 개 기업에 기업 관여 활동을 하고 있고 투자자들도 나름대로 개별적으로 기업 관여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배 이사는 이를 “서로 전략을 세우고 나갈 수 있는 방향을 잡고자 하는 대화의 자리”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는 기업들이 전반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환경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기후변화에 관한 리스크는 남아 있다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정부의 정책적 의지와 관련해선 다소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배 이사는 “생존하기 위해서는 경쟁에서 이겨야 하고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운을 띄우며 “다만 국내에서는 기후를 리스크와 비용이라고 여기기만 하지 경쟁력 향상의 기회로 여기지는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세계 최대 연기금인 일본 공적연금(GPIF)은 기후변화에서 리스크뿐 아니라 기회도 찾고 있다. GPIF는 2019년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았을 때보다 1.5도 목표를 위해 기후변화 대응 활동을 했을 때 보유 포트폴리오의 자산 가치가 17% 높아질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이와 함께 "일본 정부는 기후변화 대응을 기회로 삼고 정책 의지를 갖고 국제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고 배 이사는 설명했다. 

투자자들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행동에 더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GPIF 분석처럼 대응이 늦어질 수록 포트폴리오가 받을 영향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배 이사는 “투자자들이 기후변화에 관해서 가장 큰 영향력을 주고 행동해야 하는 시기는 지금"이며 "지금 이 일을 하지 않는다면 적지 않은 기회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후 스튜어드십이 온다③] AIGCC 배희은 “투자자도 기후변화 피할 수 없다”

▲ 배희은 이사(오른쪽에서 둘째)는 24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UNEP FI 아태지역 원탁회의'의 '탈탄소화 포트폴리오 진행시 적극적 고객 관여 필요성' 세션에서도 투자기관들의 적극적 기업 관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기후변화에 관한 아시아 투자자그룹(AIGCC)은 무엇? 배희은 이사는 누구? 

AIGCC(Asia Investor Group on Climate Change)는 기후변화 및 저탄소 투자와 관련한 위험 및 기회에 관해 아시아 자산 소유자와 금융기관의 인식을 높이고 행동을 장려하기 위한 이니셔티브다.

2016년 9월 글로벌 투자자 연합(GIC)의 일부로 출범했으나 현재는 기후변화에 관한 호주·뉴질랜드 투자자그룹(IGCC) 내 조직으로 운영된다. 본부는 싱가포르에 있다. 

AIGCC에는 아시아·태평양의 11개 지역, 70여 개 투자자가 참여했다.

주요 회원사는 미쓰비시UFJ신탁은행, 미쓰이스미토모신탁자산운용, AIA그룹 싱가포르자산운용사(AIAIM),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JP모건자산운용,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CalPERS), 국제금융공사(IFC) 등 자산운용사 및 연기금, 금융기관들이다.

국내에서는 국민연금공단(NPS)과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이 참여하고 있다.

AIGCC 회원사 자산은 모두 합쳐 32조 달러(약 4경2560조 원) 규모다. 

배 이사는 AIGCC에서 아시아 지역 투자자들과 협력해 역량을 높이고 기후와 관련한 투자 과정을 관리하는 투자자 업무 담당을 맡고 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 국제비영리조직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를 거쳤다. 장상유 기자
 
[편집자주] 68조 달러, 우리 돈 9경 원의 자산 보유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후행동 100+’란 이름으로. 캘퍼스, GIC 등 대형 연기금과 국부펀드 등 기관투자자들이 그 주인공이다. 국적도, 규모도 다른 투자자들이 연합해 ‘기후행동’에 나선 이유는 하나다. 기후재앙이 더 커지면 혹은 탄소중립 압박으로 산업 지형이 달라지면 투자 자산의 가치가 하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수탁자 활동 즉 기후 스튜어드십 활동이 국내외 대형 투자자들을 중심으로 강해지고 있다. 올 9월부터는 국민연금도 ‘기후변화 관련 위험 관리’ 차원에서 수탁자 책임 활동 즉 스튜어드십 활동을 시작한다.

비즈니스포스트는 기후 스튜어드십을 선도하는 국내외 리더들을 인터뷰하고 국내 기업 대응 전략을 전한다. 아울러 국회ESG포럼,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과 공동으로 6월13일 2023기후경쟁력포럼을 개최한다. 관련 기사와 포럼 안내는 홈페이지(ccforum.net)에서 볼 수 있다.

① 삼성전자도 LG도 SK도 달라진다, '큰손'들의 기후행동
UNEP FI 에릭 어셔 “기관투자자의 리더십이 중요”
③ AIGCC 배희은 “투자자도 기후변화 피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