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현대자동차와 기아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전기차 구매 보조금(세액공제)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올 1분기 미국 전기차 판매 시장에서 선방했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현지 생산 체제를 앞당겨 보조금 지급 요건을 갖추는데 그룹 역량을 총동원하고 있다. 다만 보조금 없이 미국에서 전기차 판매 전쟁을 펼쳐야 하는 1년여의 기간 동안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크게 키운 브랜드 가치가 전기차 점유율을 지키는데 큰 힘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차그룹 전기차 미국 판매 선방, 정의선 키운 브랜드 위상 위기에 빛나

▲ 현대차그룹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보조금 없이 미국에서 전기차 판매 전쟁을 펼쳐야 하는 앞으로 1년여 동안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크게 키운 브랜드 가치가 전기차 점유율을 지키는데 큰 힘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6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1분기 미국 전기차 시장 판도가 요동치는 가운데 현대차그룹은 지난해에 이어 3위 자리를 유지했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모터인텔리전스에 따르면 현대차와 기아는 1분기 미국에서 1만4703대의 전기차를 판매해 미국 전기차 판매 순위 3위에 올랐다. 

지난해 미국 연간 전기차 판매량 순위에서 2위에 올랐던 포드는 1분기 5위(1만866대)로 미끄러졌다. 멕시코 전기차 생산라인 증설과 배터리 화재로 인한 F-150라이트닝 생산 중단의 영향을 받았다.

반면 배터리 화재 이슈로 2022년 연간 전기차 판매 순위에 오르지 못했던 제너럴모터스(GM)가 2위로 치고 올라왔다. 지난해 미국 전기차 연간 판매 1위에 올랐던 테슬라는 올 1분기에도 전기차 16만1630대를 팔아 선두자리를 지켰다.

순위는 제자리걸음이지만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라인업이 지난해 8월부터 시행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인해 전기차 구매 보조금을 아예 받지 못하는 점을 고려하면 올해 미국 전기차 판매 경쟁에서 선방하고 있는 셈이다.

IRA는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 구매자에게 최대 7500달러(약 990만 원)의 보조금을 지급한다. 현대차그룹의 전기차는 대부분 국내에서 만들어 수출하고 있어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모두 제외됐다.

이에 현대차그룹은 미국 현지 전기차 공장 구축을 조기에 완료하는데 그룹 역량을 총동원하고 있다.

기아는 이날 미국 뉴욕 제이콥 재비츠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2023년 뉴욕 국제 오토쇼'에서 내년부터 기아 미국 조지아 웨스트포인트 공장에서 EV9을 생산할 계획을 밝혔다. 

기아는 내년 중반까지 EV9 현지 생산 시점을 앞당기고 추후 미국 공장에서 5개 차종의 전기차를 생산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현대차는 최근 4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2025년 상반기 목표로했던 조지아주 전기차 전용 공장의 준공 시점을 2024년으로 앞당기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강현 현대차 기획재경본부장 부사장은 "단기 대응책을 세워 미국에서 전기차를 본격 생산하는 2024년까지 판매와 손익에 큰 영향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이 현지 전기차 생산을 시작하기까지 앞으로 1년여의 기간 동안 정 회장이 선제적으로 확보한 전기차 경쟁력이 미국 전기차 시장점유율을 방어하는데 큰 힘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 회장은 2018년 9월 현대차그룹 총괄수석부회장에 올라 사실상 경영을 책임지게 된 뒤 현대차그룹의 브랜드 위상을 크게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에서 기아의 중고차 평균 잔존가치는 2018년 39.7%에서 2022년 55%로 급등했다. 이에 따라 잔존가치 평가는 35개사 가운데 26위에서 2위로 최상위권을 기록했다.

이전까지 차량 잔존가치는 한국 자동차 브랜드의 약점으로 꼽혀왔다. 

하지만 올해 기아는 미국 시장사업체 제이디파워 '2023 잔존가치상'에서 5개 부문에 이름을 올리며 최다 차종 수상 브랜드로 선정됐다.

이뿐 아니라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미국 최고 권위의 제이디파워(J.D.Power) 내구품질조사(VDS)에서 글로벌 33개 완성차 브랜드와 경쟁해 최상위권을 휩쓸었다.

기아는 1위, 현대차는 3위, 제네시스는 4위에 오르며 품질 경쟁력을 인정받았다.

미국에서 현대차그룹의 높아진 브랜드 위상은 딜러에게 지급하는 인센티브(판매장려금)에서도 확인된다.

지난해 미국 자동차시장의 평균 인센티브 비용은 1250달러를 기록했는데 현대차는 471달러, 기아는 710달러에 그쳤다. 올해 1월 들어서도 현대차는 1062달러, 기아는 520달러 수준의 인센티브를 보여 미국시장 평균 1333달러보다 크게 낮은 수준을 유지했다.

지난해 브랜드별 평균 인센티브 비용은 GM 1635달러, 포드 1274달러, 스텔란티스 2091달러, 토요타 803달러 였다.

현대차그룹은 다른 브랜드와 비교해 인센티브를 제공해 차 값을 깎아주지 않아도 판매량을 유지할 수 있는 단단한 수요층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1천만 원에 가까운 보조금 없이 펼쳐야 할 1년여의 미국 전기차 판매 경쟁에서 브랜드가 갖춘 경쟁력을 바탕으로 정면 승부를 벌이겠다고 예고하고 있다.

기아는 전날 CEO 인베스터데이에서 "테슬라와 별개로 기아는 기아의 길을 가겠다"며 "차 판매가격을 높이고 인센티브를 최소화해 수익성을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초 태슬라가 파격적 할인을 단행하며 촉발한 미국 전기차 가격 경쟁에 휩쓸리지 않고 브랜드력을 바탕으로 확보한 단단한 수요층을 기반으로 수익성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현대차는 보조금 지급을 받지 못하는 올해 미국에서 지난해보다 139% 증가한 7만3천 대의 전기차를 판매할 계획을 갖고 있다.

현대차가 미국 기존 전기차 구매 고객의 소득 수준을 조사한 결과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되는 소비자 비율이 경쟁 차종 대비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기차 구매 보조금을 받기 위해서는 가계 소득이 개인은 15만 달러, 부부는 30만 달러 이하여야 한다.

현대차 전기차 라인업은 내연기관 시대와 달리 프리미엄 가격대에 자리잡고 애초 전기차 보조금을 받을 수 없는 고소득층 고객비중이 높아 IRA로 인한 타격을 덜 받는다는 얘기다.

현대차 관계자는 "올해 들어서도 아이오닉5는 안정적 선주문과 함께 높은 판매흐름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이 미국에서 IRA로 인해 당분간 가격경쟁력을 크게 잃게 된 상황에서도 정면돌파 전략을 펼치는 힘은 E-GMP 플랫폼에 기반한 전기차 라인업의 높은 상품성에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현대차그룹의 아이오닉5와 EV6은 E-GMP 플랫폼의 우수한 파워트레인과 효율성, 800V(볼트) 고전압 충전시스템, 넓은 공간 활용성 등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지난달 미국에서 판매를 시작한 현대차 중형 세단 전기차 아이오닉6은 세계 3대 자동차 시상식 가운데 하나인 '2023 월드카 어워즈'에서 '세계 올해의 자동차'에 선정됐다. 현대차는 지난해 아이오닉5에 이어 아이오닉6로 세계 올해의 자동차 상을 2연패했다.

기아 EV6는 올 1월 '2023 북미 올해의 차(NACTOY)' 시상식에서 SUV(스포츠유틸리티) 부문 '북미 올해의 차'에 올랐고, 지난해에는 '2022 유럽 올해의 차(COTY)'를 수상해 지난해부터 현대차그룹 전기차는 세계 3대 자동차 시상식을 모두 휩쓸고 있다.

정 회장은 "내연기관차 시대에 우리가 '패스트 팔로어(빠른 추격자)' 였지만 전기차 시대에는 모든 업체들이 공평하게 똑같은 출발선에 서 있다"며 "경쟁업체를 뛰어넘는 압도적 성능과 가치로 전세계 전기차 시장을 선도하는 퍼스트 무버가 돼야한다"고 강조해왔다.

정 회장의 이런 지휘 아래 현대차그룹은 기존 내연기관차를 생산해온 주요 완성차업체 가운데 선제적으로 전용전기차 플랫폼 개발을 완료했다.

정 회장은 현대차그룹이 E-GMP 개발을 추진할 당시 이를 놓고 내부 의견이 엇갈렸을 때 현대차그룹의 차별화된 가치를 전달해야 한다며 개발을 밀어붙였다.

글로벌 고성능, 고급차 브랜드들을 뛰어넘는 수준의 전기차 전용플랫폼을 확보하는 것이 퍼스트 무버로 도약할 수 있는 전제조건이라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 회장은 E-GMP 800V 초급속 충전시스템과 전기차 전력을 외부로 내보내는 V2L  등 다른 완성차업체들이 비싼 비용을 이유로 적용을 고민하는 고사양 장치들을 과감하게 탑재했다.

이런 선택이 현재 현대차그룹이 갖춘 차별화한 전기차 경쟁력으로 빛을 발하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는 5% 현재 미만의 미국 리스 판매 비중을 올해 30%까지 늘릴 계획을 갖고 있다. 

지난해 말 미국 재무부가 추가지침을 공개하면서 북미 최종 조립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한국산 전기차도 리스 등 상업용으로 판매되면 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 점을 활용하려는 것이다.

기아 관계자는 CEO 인베스터데이에서 "1분기에 인센티브와 리스 판매 없이 미국 시장에 대응했으나 2분기에는 본격 리스 판매에 나설 것"이라며 "올해 미국 전기차 판매 목표인 5만8400대는 기아의 전략으로 달성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