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HLB생명과학 대표 한용해 "고가의 수입 대마치료제 국산화"

▲ 한용해 HLB생명과학 대표이사가 12일 비즈니스포스트와 인터뷰에서 의료용 대마, 동물용 항암제 등 신사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한국 뇌전증 환자 상당수가 기존 약이 듣지 않아 영국 회사 GW파마의 의료용 대마 치료제를 가져온다. 한 병당 150만 원 수준인 치료제를 한 달에 2병만 먹어도 연간 4천만 원 수준의 치료비가 든다."

12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HLB생명과학 본사에서 비즈니스포스트와 만난 한용해 HLB생명과학 대표이사는 신사업 중 하나인 의료용 대마사업이 기업가치와 공익 모두를 충족할 수 있는 분야라고 강조했다.

◆ 의료용 대마, 동물용 항암제, 자체 후보물질 '3대 축'

의료용 대마는 대마 성분 가운데 환각성이 없으면서 질병에 대한 치료효과를 발휘하는 것을 말한다. 최근 뇌전증 치료제로 주목받고 있다. 갑자기 발작이 일어나는 질병인 뇌전증은 여러 치료제가 개발돼 있지만 환자에 따라 치료제가 효력을 발휘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한 대표에 따르면 국내에서만 약 40만 명에 이르는 뇌전증 환자가 기존 치료제의 혜택을 받지 못해 의료용 대마를 비롯한 새로운 약물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국내 의료용 대마 개발은 아직 선진국에 비해 뒤처져 있어 환자들은 값비싼 해외 치료제를 사용해야 한다.

한 대표는 "정부에서 최근 해외 의료용 대마에 건강보험을 적용하게 해줬는데 이는 국가재정을 소모하는 일이다"며 "국산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먼저 의료용 대마 기반 소아뇌전증 치료제를 국내에서 개발하고 해외에도 진출할 것"이라며 "서울대 약대와 협력해 제형 연구를 하고 있고 임상을 준비하는 중이다”고 덧붙였다.

HLB생명과학의 의료용 대마사업은 네오켄바이오와 협업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네오켄바이오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출자 기업으로 150여 개에 이르는 의료용 대마 성분을 값싸게 대량생산 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한 대표는 표적항암제 '리보세라닙'을 동물용으로 개발하는 과제도 HLB생명과학의 중요한 신사업이라고 설명했다. 리보세라닙은 HLB가 글로벌 권리를 보유한 약물이다. 

HLB생명과학은 리보세라닙의 국내 개발을 맡고 있는데 최근 반려견 유선암 대상으로 효능을 검증하기 위한 임상에 들어갔다. 올해 안으로 임상을 마치고 허가 신청을 하는 게 목표다. 동물용 의약품은 사람용과 달리 1회 임상만으로 허가절차를 밟을 수 있다.

한 대표는 동물용 항암제시장에 큰 사업기회가 있다고 평가했다. 동물용 항암제는 국내에서 허가된 게 없고 세계적으로도 5개에 그치기 때문이다. 3대 메이저 질환인 비만세포종·림프종·유선암(유방암) 중 비만세포종과 림프종에 대해서만 각각 3개, 2개가 허가됐다. 

한 대표는 "리보세라닙이 다른 암에도 효과가 있겠지만 3대 질환 중 비어 있는 유선암 쪽으로 우선 공략하기로 했다"며 "사람 항암제도 개발하고 반려동물 항암제도 개발해서 고급 제품(리보세라닙)을 더 럭셔리하게 만들 것이다"고 말했다.

HLB생명과학은 리보세라닙 이외에 자체적인 후보물질도 발굴하는 중이다. 앞서 국내 바이오기업 엘에스케이엔알디오와 협약을 맺어 항암 후보물질 'G2M’을 들여온 데 이어 최근에는 독일 기업과 후보물질 도입을 논의하고 있다.

한 대표는 의료용 대마, 동물용 항암제, 자체 후보물질 발굴 등 HLB생명과학이 주도하는 연구개발을 통해 제2, 제3의 리보세라닙을 확보하겠다고 했다. HLB그룹 차원의 성장 동력을 육성하는 한편 HLB생명과학 자체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한 대표는 "글로벌 리보세라닙 개발을 뒷받침하는 일 이외에는 HLB생명과학의 존재감이 크지 않았다"며 "리보세라닙을 밑천으로 해서 여기까지 왔지만 이제 후보물질 다각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바라봤다.

◆ HLB그룹 바이오 구심점 역할, 글로벌 네트워크로 뒷받침

HLB생명과학이 진행하는 여러 신사업 이외에도 한 대표에게 주어진 과제는 또 있다. 바로 HLB그룹 바이오 최고기술책임자(CTO)로서의 업무다. HLB그룹은 최근 바이오 CTO를 신설하고 한 대표를 선임했다. 

바이오 CTO는 기술적인 측면에서 HLB그룹 바이오사업의 사령탑 역할을 하게 된다.

이전까지 HLB그룹의 모든 의사결정은 그룹 수장인 진양곤 HLB 대표이사 회장에게 집중돼 있었다. 진양곤 회장은 인수합병 전문가로 꼽히지만 바이오 분야의 기술적인 부분에 관해서는 전문성이 높지 않았다. 외부 기업과 협업, 새로운 기업 인수 등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기술 검토를 하는 역할이 필요했다.

HLB그룹이 거느린 수많은 바이오 계열사들에게 구심점이 없다는 것도 문제였다. HBS(HLB 에코시스템) 기반 협업이 성공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교통정리라는 전제조건을 충족해야 했다. HBS란 HLB그룹 계열사들이 신약개발 전주기에 참여해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생태계를 말한다.

한 대표는 "회장님이 바이오 CTO를 제안해서 고민하다가 수락하게 됐다. 외부 인원이 오는 것도 좋지만 경영진과의 신뢰가 있는 기존 임원이 나서야 한다는 필요성에 공감했다"며 "바이오 CTO로서 HBS와 관련해 프로젝트 관리와 구심점의 역할, 프로젝트가 잘 굴러가게끔 하는 조정자 역할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 HLB생명과학 대표 한용해 "고가의 수입 대마치료제 국산화"

▲ 한용해 HLB생명과학 대표이사는 연구개발 전문가일뿐 아니라 재미한인제약인협회(KASBP) 회장을 역임한 경험을 바탕으로 풍부한 해외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어 HLB그룹 바이오 CTO에 적합한 인물로 평가된다. <비즈니스포스트>


글로벌 신약개발을 진행하는 HLB그룹에서 바이오사업을 진두지휘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역량과 국제 네트워크를 갖춰야 한다. 한 대표는 이런 점에서 바이오 CTO에 가장 적합한 인물로 평가된다.

1962년생인 한 대표는 서울대 약대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교수를 목표로 일본과 미국에서 연구에 매진했다. 그러나 정작 교수 모집 공고가 나왔을 때 본교 출신이 교수 정원의 3분의 2를 넘을 수 없다는 규정으로 인원 제한에 막혀 꿈을 접었다.

이후 미국에서 글로벌 제약사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에 영입돼 신약개발을 시작했다. 모든 분야의 신약 프로젝트에 통용되는 연구에 관한 전문성을 갖고 있어 폭 넓은 프로젝트에 관여했다고 한다. 

다만 회삿일에만 몰두한 게 아니라 현지 한국인 연구진을 위한 네트워크 형성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2011년 재미한인제약인협회장에 오른 일이 대표적이다. 

재미한인제약인협회(KASBP)는 이름 그대로 제약바이오업계에 종사하는 한국인들을 주축으로 결성된 비영리단체다. 정기적으로 심포지엄을 열어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관련된 이슈, 신약개발 트렌드 등을 논의한다. 현재 회원은 1200명 규모로 알려졌다.

“회장을 역임하면서 협회의 규모와 위상을 키우는 데 기여하다 보니 미국 네트워크가 많이 쌓였다. 이 네트워크를 사업을 하는 중 이슈가 있을 때마다 활용하고 있다. 해외 전문가들이 (국내 기업인을) 잘 안 만나주는 경향이 있는데 나는 좀 통한다.”

◆ HLB그룹에 합류하기까지, 당면과제는 '내실'

한 대표가 굳건하게 다져놓은 해외 기반을 뒤로하고 귀국한 계기는 당시 대장암 말기였던 어머니의 병환이었다. 한국 제약바이오업계의 발전에 기여하는 등 보람있는 일을 하고자 하는 바람도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한 대표는 엔지켐생명과학, 대웅제약, CJ헬스케어(현재 HK이노엔) 등 여러 기업을 거치며 중책을 역임했다. 연구개발 인력의 의견을 경청하고 지속적으로 투자하는 기업을 찾고자 했다.

그러다 대웅에서 함께 일했던 전복환 HLB제약 대표의 소개를 받아 진양곤 회장을 만났다. 이메일로 이력서를 보낸 지 30분 만에 연락이 왔다. 진양곤 회장은 한 대표를 만나자마자 악수하며 "함께 일하시죠"라고 했다. 연구개발 성과를 기다리는 인내심, 전문가를 존중하는 태도도 한 대표에겐 인상적이었다. HLB그룹이 완벽한 기업이 아니라는 점도 오히려 끌렸다.

"당시 HLB는 글로벌 임상을 3개나 진행하고 있었고 신약허가신청(NDA)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외형은 굉장히 크지만 내 경험과 네트워크를 활용해서 내실을 채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회장님 인품도 굉장히 좋았다."

한 대표가 HLB그룹에 합류하기로 한 까닭이다. 

한 대표는 2020년 HLB생명과학 사장으로 영입돼 신약개발을 총괄해왔다. 2022년부터는 대표이사를 맡아 HLB그룹의 규모에 걸맞은 후보물질을 갖추는 데 집중하고 있다.

"운동장이 큰데 가재도구는 아직 부족한 편이라 냉장고를 살지 TV를 살지가 즐거운 고민이다. 이처럼 후보물질을 채워넣는 게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룹은 그 여건을 만들어주고 기다려주고 있다. 내 경험과 지식을 잘 녹여넣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임한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