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영활동의 공과
- 비전과 과제/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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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외부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편이다. 전면에 드러나는 것을 꺼리다가 한진중공업 사태를 키웠다는 비판도 있다.
2007년 한진중공업의 CI 선포식 행사도 외부나 선주사 및 발주처에 알리지도 않은 채 내부 행사로만 진행했다. 조남호가 회사 내실부터 제대로 다져야 한다며 그렇게 결정했다고 한다.
맏형인 조양호 회장과 사이가 좋지 못하다. 그는 막내인 조정호 회장과 손을 잡고 조양호 회장과 여러 법정 공방을 벌였다. 한진중공업을 계열 분리시키면서 독자 상표를 만들어 한진 측에 상표권 사용료를 내지 않고 있다.
2016년 2월에는 한진칼과 대한항공, 한국공항 보유지분을 처분했다. 이는 2005년에 계열 분리된 지 11년 만에 일어난 것으로 한진그룹과 선을 그으려는 것으로 분석됐다.
조선시장의 침체로 한진중공업의 실적이 부진한 상황에 직면해왔다. 조남호는 이런 실적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투 트랙 전략을 펼쳤다. 영도조선소는 군함과 쇄빙선 같은 특수선, 필리픽 수빅조선소는 일반 상선을 담당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위기를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조남호의 이런 경영정상화 노력으로 조선부문의 매출은 2014년부터 다시 상승세를 탔다. 한진중공업은 2014년 조선 매출은 1조1765억 원, 2015년에는 1조7913억 원을 기록했다. 영업손실도 2014년 1238억 원에서 2015년 580억 원으로 감소했다.
조남호는 조선소 규모가 작아 조선 빅3가 진출했던 해양플랜트시장에 진출하지 못했다. 그러나 현재 조선 빅3가 해양플랜트로 오히려 대규모 적자를 보고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적자를 피하게 됐다는 말도 나온다.
수빅조선소의 경쟁력에 대해 높게 평가받고 있다. 수빅조선소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부산과 동반성장을 이끌고 있다는 말을 듣는다. 수빅 조선소는 부품과 기재재를 부산경남 조선협력업체단지에서 가져온다. 조립기자재의 70%를 한국에서 조달받는 것이다.
조남호는 2010년과 2013년 한진중공업 사내이사 선임 건에서 총 5건, 2012년과 2015년 한진중공업홀딩스 사내이사 선임 건에서 3건 등 모두 8번에 걸쳐 사내이사 선임 건에 대해 기관투자자로부터 반대를 받았다. 기관투자자가 반복적으로 반대표를 던졌기 때문에 조남호가 고위 임원에 임명되는 부분에 대해 문제가 제기되기도 한다.
2011년 국회 청문회에서 출석을 결정하자 해외로 출국하는 등 최고 의사결정권자로서 책임을 회피한 것 아니냐는 비난도 일었다.
한진중공업 사태로 내외부적으로 리더십에 의혹과 함께 신뢰를 잃어버렸다는 평가다. 그래서 2013년 한진중공업 대표이사를 사임하고 지주사 한진중공업홀딩스 대표로 남아있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많다.
- 사건사고
- 경력/학력/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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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력
1971년 대한항공에 입사했다.
1989년 한일레저 사장으로 경영 일선에 나섰고 1993년 한일개발(한진건설) 사장이 됐다.
1999년 한진중공업이 한진건설을 합병하면서 한진중공업으로 옮겨 부회장에 올랐다.
2003년 회장으로 선임돼 2005년 한진그룹에서 완전히 계열분리해 나왔다.
2007년 한진중공업 사업부문과 투자부문을 분리해 지주사인 한진중공업홀딩스를 만들고 지주사 회장에 취임했다.
한진중공업은 2006년 18억불을 투자해 필리핀 수빅만에 대형조선소를 착공해 2009년 완공했다.
수빅 조선소 투자로 필리핀 대통령훈장을 받았다. 수빅조선소는 2014년 세계 조선소 순위 10위에 올랐다.
◆ 학력
1969년 경복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2년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1990년 연세대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을 수료했다.
1992년 고려대 대학원 최고국제관리과정을 수료했다.
◆ 가족관계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둘째아들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형이고 조수호 전 한진해운 회장,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이 동생이다. 박동훈 르노삼성차 대표와 사촌지간으로 친하게 지내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영혜씨와 결혼했는데 경기고 교장을 거쳐 교육감을 지낸 김원규 전 교육감의 차녀다. 김영혜씨는 이화여대 영문과를 나왔으며 조남호는 한진가에서 유일하게 연애결혼에 성공했다. 지난해 12월1일 김영혜씨는 6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슬하에 1976년생 조원국 한진중공업 전무와 1980년생 조민희씨의 1남1녀를 두고 있다. 조 전무는 2008년 선박영업담당 임원으로 입사해 2016년 현재까지 주로 영업업무에 집중해왔다. 최근에는 그리스에서 수주영업의 전권을 지닌 채 세계 최대규모 선박박람회 ‘포시도니아 2016’에서 영업활동을 주도했다.
◆ 상훈
1995년 해외건설 30돌 기념식에서 은탑산업훈장을 수상했고 2001년 인천국제공항 개항식에서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2008년 필리핀 수빅만 조선소 건설로 아시아인 최초로 필리핀 대통령훈장을 수훈했다.
◆ 상훈
1995년 해외건설 30돌 기념식에서 은탑산업훈장을 수상했고 2001년 인천국제공항 개항식에서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2008년 필리핀 수빅만 조선소 건설로 아시아인 최초로 필리핀 대통령훈장을 수훈했다.
-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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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한진중공업 홀딩스(그룹 지주회사)의 최대주주이자 회장이지 한진중공업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2011/08/18, 국회환경노동위원회 한진중공업청문회)
“구조조정 과정에서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친 점 고개 숙여 사과한다. 3년 내 경영정상화 실현을 위해 노력하고 이후 정리해고자를 우선 채용하겠다.” “퇴직자 400명 중 희망퇴직자에 한해 자녀 2명의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학자금 1억여원 전액을 지원하겠다.” “수천 명의 한진중공업 및 협력업체 직원들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 생각해 보고 조속히 내려와 줬으면 좋겠다. 불법적 압력에 의해 정당하고 합법적인 경영활동이 힘들어진다면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기본원칙을 저버리는 결과가 초래될 것이다.” (2011/08/10, 대국민호소문에서)
"기존 통념을 깨고 새롭고 창조적인 큰 생각으로 사고하고 판단해야 한다." "수빅조선소는 한진중공업이 추구하는 글로벌 경영의 첫 산물이자 결실." (2008/12, 필리핀 수빅 조선소의 첫 선박이 선주에게 인도되면서)
“내실을 기하는 한편 사업 진척에도 속도를 가해 총매출 3조5000억 원, 영업이익 1400억 원 이상을 달성하자.” (2007/01, 신년사에서)
“새로 창업을 한다는 정신으로 속도전을 벌이자.” (2006년 임직원들에게)
◆ 평가
외부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편이다. 전면에 드러나는 것을 꺼리다가 한진중공업 사태를 키웠다는 비판도 있다.
2007년 한진중공업의 CI 선포식 행사도 외부나 선주사 및 발주처에 알리지도 않은 채 내부 행사로만 진행했다. 조남호가 회사 내실부터 제대로 다져야 한다며 그렇게 결정했다고 한다.
맏형인 조양호 회장과 사이가 좋지 못하다. 그는 막내인 조정호 회장과 손을 잡고 조양호 회장과 여러 법정 공방을 벌였다. 한진중공업을 계열 분리시키면서 독자 상표를 만들어 한진 측에 상표권 사용료를 내지 않고 있다.
2016년 2월에는 한진칼과 대한항공, 한국공항 보유지분을 처분했다. 이는 2005년에 계열 분리된 지 11년 만에 일어난 것으로 한진그룹과 선을 그으려는 것으로 분석됐다.
조선시장의 침체로 한진중공업의 실적이 부진한 상황에 직면해왔다. 조남호는 이런 실적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투 트랙 전략을 펼쳤다. 영도조선소는 군함과 쇄빙선 같은 특수선, 필리픽 수빅조선소는 일반 상선을 담당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위기를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조남호의 이런 경영정상화 노력으로 조선부문의 매출은 2014년부터 다시 상승세를 탔다. 한진중공업은 2014년 조선 매출은 1조1765억 원, 2015년에는 1조7913억 원을 기록했다. 영업손실도 2014년 1238억 원에서 2015년 580억 원으로 감소했다.
조남호는 조선소 규모가 작아 조선 빅3가 진출했던 해양플랜트시장에 진출하지 못했다. 그러나 현재 조선 빅3가 해양플랜트로 오히려 대규모 적자를 보고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적자를 피하게 됐다는 말도 나온다.
수빅조선소의 경쟁력에 대해 높게 평가받고 있다. 수빅조선소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부산과 동반성장을 이끌고 있다는 말을 듣는다. 수빅 조선소는 부품과 기재재를 부산경남 조선협력업체단지에서 가져온다. 조립기자재의 70%를 한국에서 조달받는 것이다.
조남호는 2010년과 2013년 한진중공업 사내이사 선임 건에서 총 5건, 2012년과 2015년 한진중공업홀딩스 사내이사 선임 건에서 3건 등 모두 8번에 걸쳐 사내이사 선임 건에 대해 기관투자자로부터 반대를 받았다. 기관투자자가 반복적으로 반대표를 던졌기 때문에 조남호가 고위 임원에 임명되는 부분에 대해 문제가 제기되기도 한다.
2011년 국회 청문회에서 출석을 결정하자 해외로 출국하는 등 최고 의사결정권자로서 책임을 회피한 것 아니냐는 비난도 일었다.
한진중공업 사태로 내외부적으로 리더십에 의혹과 함께 신뢰를 잃어버렸다는 평가다. 그래서 2013년 한진중공업 대표이사를 사임하고 지주사 한진중공업홀딩스 대표로 남아있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많다.
◆ 기타
선친의 유산배분과 관련해 형 조양호 회장과 사이가 매우 안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러차례 소송을 겪었고 조양호 회장과 고 조수호 회장, 조남호 회장과 조정호 회장이 음력과 양력으로 기일을 나눠 제사를 따로 지낼 정도까지 악화됐다.
조남호 회장의 부인 김영혜씨 장례식에 조양호 회장의 부인을 비롯해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과 조현민 대한항공 상무 등 조양호 회장 가족이 조문했다. 조양호 회장은 해외 출장으로 빈소를 찾지 못했다.
조남호는 2015년 총 7억4500만 원의 보수를 지급받았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조남호의 주식 자산은 2006년 말 3048억 원에서 2016년 4월 기준으로 821억 원으로 줄어 반 이상이 감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