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원석 기자 stoneh@businesspost.co.kr2022-08-23 16: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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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현대자동차가 첫 세단전기차 아이오닉6 고사양 모델도 전액 보조금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국산차 우대정책이 별도로 없는 국내 전기차보조금 정책 아래서 아이오닉6의 가격경쟁력을 높이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 23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전날 사전계약을 시작한 아이오닉6는 '이-라이트' 트림을 추가해 전기차 보조금 전액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더현대 서울 팝업 매장에 전시된 아이오닉6.
23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전날 사전계약을 시작한 아이오닉6는 롱레인지 모델에 '깡통' 트림인 '이-라이트(E-LITE)' 트림을 추가했다. '깡통' 트림은 옵션을 하나도 추가하지 않은 모델을 일컫는 말이다.
이로써 53.0kWh 배터리를 장착한 스탠다드 모델뿐 아니라 77.4kWh 배터리가 탑재된 롱레인지 모델도 전기차 보조금을 전액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는 애초 지난달 28일 아이오닉6의 사전계약을 시작할 예정이었으나 계약 일정까지 미뤄가며 보조금을 최대한 받을 수 있는 가격 정책에 공을 들인 것으로 분석된다.
롱레인지 이-라이트 트림에는 기존 엔트리트림인 롱레인지 익스클루시브와 비교해 외관과 내장에서 오토 플러시 도어핸들, 열선과 픽셀 라이트를 포함한 가죽 스티어링 휠, 뒷자석 센터 암레스트, 이중접합 차음유리, 자외선 차단 유리가 빠졌다.
편의사양 가운데는 인조가죽 시트, 운전석 8웨이 전동시트, 운전석 2웨이 럼버서포트(등받이), 앞좌석 통풍시트, 세이프티 파워 윈도우(차창 끼임 방지) 기능을 덜어냈다.
환경부는 전기차의 성능(연비, 주행거리) 등에 따라 최대 700만 원의 국비보조금을 차등 지급하고 있다. 인증사양별 기본가격이 5500만 원 미만이면 보조금 전액을, 5500~8500만 원 미만이면 보조금의 절반을 지급한다. 8500만 원 이상 차량은 보조금을 받을 수 없다.
전기차 판매사가 인증사양별 기본가격을 제출할 때 사이즈, 모터출력, 배터리용량, 공조장치 타입, 구동방식(전륜, 후륜, 4륜)을 포함시키도록 하고있는데 해당 내용이 같으면 같은 기준으로 보조금을 지급한다. 판매사가 특정 트림의 기본 가격을 인증 받으면 어떤 옵션을 추가하든 기본 가격에 해당하는 보조금을 지급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아이오닉6의 판매가격은 전기차 세제 혜택 후 개별소비세 3.5% 기준으로 스탠더드 모델은 5200만원, 롱레인지 모델은 △이-라이트 2WD 5260만 원 △익스클루시브 5605만원 △익스클루시브 플러스 5845만 원 △프레스티지 6135만 원이다.
현대차의 트림 추가를 통한 가격조정으로 롱레인지 모델에서도 이-라이트 트림을 선택하면 700만 원의 보조금 전액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런 가격 전략에 힘입어 현대차는 아이오닉6 사전계약 첫날 3만7446대를 접수해 국내 완성차 모델 역대 최다 기록을 새로 쓰는데 도움을 받은 것으로 분석된다.
이를 놓고 현대차는 "아이오닉6의 합리적 가격 구성을 통해 구매 고객들이 전기차 보조금 혜택을 최대한 받을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현대차와 달리 수입차 브랜드들은 아이오닉6와 비슷한 방식으로 보조금 지급 범위를 넓히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올해 1월 정부는 전기차 보조금을 100% 지급받을 수 있는 최고 가격을 6천만 원에서 5500만 원으로, 50% 지급 최고 가격을 9천만 원에서 8천만 원으로 낮췄다.
지난해 6천만 원에 맞춰 국내에 전기차를 출시한 수입차 판매사가 해마다 바뀌는 보조금 기준에 따라 올해 10%가량 낮춘 가격으로 상품 기획의 틀을 새로 짜는 것은 해외에 본사와 생산기지를 둔 상황에서는 힘들다.
잦은 가격인상으로 자주 입방아에 오르는 테슬라는 지난해 2월 새로 변경된 국내 보조금 정책에 맞춰 주력 세단 차종인 모델3 롱레인지 가격을 5999만 원으로 480만 원이나 낮췄었다.
2019년 국내 출시 뒤 모델3 롱레인지 모델의 가격이 내려간 것은 이 때가 유일하다.
국내시장 점유율을 지키기 위한 테슬라의 고육지책이었으나 약 10개월 뒤인 지난해 12월 한 번에 가격을 980만 원 인상하며 50%의 보조금을 포기했다. 글로벌 전기차 1위 업체인 테슬라로서도 한국 시장에서 보조금 확보를 위한 가격 인하는 큰 부담이 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현대차 아이오닉6와 같은 가격 전략을 놓고 깡통 트림을 앞세워 보조금을 타내기 위한 꼼수라는 비판도 나온다.
하지만 치열한 글로벌 전기차 주요시장에서 자국 우선의 정책이 강화되고 있어 국산차 브랜드로서는 전기차 보조금과 관련한 빠른 의사결정과 가격 대응이 불가피하다는 시선도 만만치 않다.
중국은 '신에너지차 권장 목록'을 매달 발간해 보조금 지급 심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한국 완성차 업체들은 보조금을 받으려면 현지 업체에서 생산된 배터리를 반드시 장착해야 한다.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현지시각 16일 인플레이션 완화법에 사인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에서는 최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내년 1월부터 북미에서 생산되는 전기차에 대규모 보조금을 지급하는 내용을 담은 인플레이션 완화법(감축법)에 서명하면서 아직 미국 현지에서 전기차를 생산하고 있지 않은 현대차그룹은 지원 대상에서 빠지게 됐다.
미국과 중국 등에 상호주의를 적용해 정부가 국산 전기차에 보조금 우대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시선이 나오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수출 중심의 산업구조를 가진 한국의 입지를 고려하면 현실화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코트라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미국은 한국에 24억 4266만 달러 규모의 자동차를 수출했으나 반대로 한국에서 수입한 자동차는 162억3966억 달러에 이른다. 국제관계에서 힘의 크기를 배제하더라도 같은 방식의 보조금 대응전략으로는 잃을 것이 더 많다는 견해가 많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최근 '북미 내'로 규정된 전기차 최종 조립 및 배터리 부품(소재) 요건을 완화해 줄 것을 미국 통상 당국에 요청했다. 외교부도 인플레이션 완화법에 포함된 전기차 보조금 개편안이 한미자유무역협정(FTA)과 세계무역기구(WTO) 규범 위반 소지가 있다는 우려를 미국 측에 전달했다.
다만 기본 트림의 시작가격을 낮게 책정하고 옵션을 제공해 보조금을 지급 받는 방식이 소비자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기본 모델의 상품성을 고객의 눈높이에 맞는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시선도 만만치 않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