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희헌 기자 gypsies87@businesspost.co.kr2020-04-21 15:3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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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가 신차를 출시할 때 최저 트림(세부사양 등에 따라 나뉘는 일종의 등급)의 가격은 올리고 최고 트림의 가격은 낮추고 있다.
수익성을 끌어올리려면 판매비중이 높은 최고 트림의 가격을 높여야 한다는 ‘상식’을 뒤엎은 것이다.
▲ 기아자동차 '2021년형 K3'.
가장 비싼 모델의 가격 인상을 최소화해 구매를 유도함으로써 매출 등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21일 기아차에 따르면 20일 출시한 2021년형 K3의 판매가격(개별소비세 1.5% 기준)이 기존 모델인 2020년형 K3보다 최저 트림에서는 비싸졌지만 최고 트림에서는 오히려 인하됐다.
2021년형 K3의 최하위 트림인 스탠다드모델의 가격은 1714만 원이다. 기존 모델의 최하위 트림인 트렌디모델과 비교해 가격은 172만 원, 비율로는 11.2%나 올랐다.
스티어링휠과 변속기 노브에 가죽 소재를 사용했으며 시트를 직물에서 인조가죽으로 바꿨다는 점, 고객 선호도가 높은 버튼시동 스마트키가 적용됐다는 점을 감안해도 가격 인상률이 꽤 높다. 새 K3의 최하위 트림에는 기존 모델의 중간트림에 적용됐던 급속충전 USB단자도 기본으로 탑재됐다.
스탠다드모델보다 한 단계 높은 트림인 프레스티지모델을 기존 K3의 럭셔리모델과 비교해봐도 가격이 8.2%(143만 원)나 올랐다. 후측방충돌 경고와 후방 교차충돌 경고 등 안전사양이 기본화했다는 점을 고려해도 가격 상승폭이 상당하다.
하지만 최고 트림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새 K3의 최상위 트림인 시그니처모델의 판매가격은 2087만 원이다. 기존 K3의 최고 트림인 노블레스모델보다 가격이 57만 원 싸다.
기존 모델에서 기본으로 들어갔던 슈퍼비전 클러스터(4.2인치 칼라 TFT LCD)와 에어로타입 와이퍼 등의 사양이 옵션으로 빠졌다고 하더라도 17인치 타이어와 뒷좌석 공조장치가 기본으로 들어갔다는 점을 생각하면 가격이 낮아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새 K3와 기존 K3의 모든 선택사양이 총망라한 풀옵션모델을 비교해봤을 때 가격(개별소비세 5% 적용)은 2580만 원으로 동일하다.
값싼 모델의 가격 인상폭을 높이는 대신 비싼 모델의 가격을 인하하거나 기존과 동일하게 책정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경향은 현대차의 7세대 아반떼에서도 확인된다.
현대차가 7일 출시한 새 아반떼의 판매가격(개별소비세 1.5% 적용)을 보면 최저 트림인 스마트모델의 가격이 기존보다 11.3% 올랐다.
첨단 운전자 보조시스템(ADAS)인 △전방충돌 방지보조 △차로이탈 방지보조 △운전자 주의경고 △하이빔 보조 △차로 유지보조 등 기능, 크루즈컨트롤과 뒷좌석 높이조절 헤드레스트 등 편의사양을 기본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급가격 기준으로 1400만 원대면 구입할 수 있었던 아반떼를 1600만 원대까지 높였다는 점에서 가격 인상률이 꽤 있다는 평가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오히려 풀옵션모델 기준으로는 가격이 싸졌다.
▲ 현대자동차 '올 뉴 아반떼'.
기존 아반떼 풀옵션모델의 가격은 개별소비세 5% 기준으로 2615만 원이지만 7세대 아반떼는 이보다 41만 원 싼 2574만 원이다.
현대차는 이를 놓고 “풀옵션 기준으로 비교할 때 올 뉴 아반떼의 인스퍼레이션트림은 기존 아반떼의 최상위 트림이었던 프리미엄모델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책정돼 가격 대비 성능(가성비)를 중요시하는 고객에게 특히 매력적 구성이 될 것”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현대차와 기아차가 국내 고객의 특성을 반영해 이런 가격 정책을 쓰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국내 소비자들의 60~70%가량은 자동차를 구매할 때 가장 좋은 트림의 차를 선택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차종마다 다르지만 가격 부담이 적은 차일수록 최상위 트림의 선택 비중이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완성차기업으로서는 이를 고려하면 비싼 모델의 가격을 올리는 것이 수익성 향상을 위해 더 효과적이다.
하지만 비싼 모델의 가격 인상을 무리하게 추진하면 판매량에서 오히려 손해를 볼 가능성도 충분하다. 적절한 조화가 필요한 이유다.
이런 점들을 감안할 때 현대차와 기아차가 ‘값싼 차들의 가격은 확 끌어올리고 비싼 차들의 가격은 오히려 깎아주는’ 가격정책을 들고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현대차는 지난 3월25일 7세대 아반떼의 사전계약 첫 날 1만 대를 넘게 접수받았다. 1세대부터 시작해 30년 역사를 통틀어 역대 최고 기록을 쓴 것이다. [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