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흥식 전 원장과 김기식 전 원장이 잇달아 불미스러운 일로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금감원 위상이 땅에 떨어진 상황에서 윤 원장도 이번 보험사와의 갈등을 '역이용'할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윤 원장은 즉시연금을 과소 지급한 삼성생명과 한화생명 등 생명보험사를 상대로 압박 수위를 높이며 ‘강 대 강’ 국면을 이어가고 있다.
7월 말 삼성생명이 금감원의 즉시연금 일괄 구제 권고를 거절한 뒤 보름여 만에 공식석상에 나선 윤 원장은 “욕을 먹어도 할 일은 하겠다”며 삼성생명을 대상으로 종합검사 가능성을 내비쳤다.
윤 원장은 7월 말 "생명보험사들이 금감원의 권고를 거부하더라도 보복 검사 등을 실시하지 않겠다"며 선을 그었던 데에서 180도 태도를 바꾼 것이다.
삼성생명과 한화생명 등이 즉시연금과 관련해 먼저 소송을 거는 등 강경한 태도를 보이자 더 이상 ‘보복성 검사’라는 틀에 갇혀 스스로 운신의 폭을 제한하고만 있지는 않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즉시연금 과소 지급 사태가 보험사와 소비자 사이의 법적 분쟁으로 번지면서 금감원이 후방에서 소송 지원을 하는 것 외에는 사실상 손쓸 여지가 없어지자 종합검사 카드를 꺼내든 셈이다.
윤 원장이 생명보험사들의 결정을 정면으로 비판하면서 ‘강 대 강’ 구도가 심화됐다.
윤 원장이 취임한 뒤 사실상 '실무적'으로 금융회사와 처음 마주한 구체적 사안인 만큼 상징적 측면에서도 쉽게 물러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은행과 증권사와 비교해 보험사의 약관과 관련된 ‘관행’을 꼬집으며 생명보험사를 향한 압박 범위도 넓혔다.
윤 원장은 “은행과 증권 등은 주기적으로 펀드 수익률을 안내하는 등 소비자가 알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보험사는 상품이 복잡한 건 이해하지만 그걸 불투명하게 해서 고객에게 떠넘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윤 원장이 보험사 약관의 애매모호함을 문제 삼으면서 즉시연금에 이어 암보험을 놓고도 생명보험사를 압박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해졌다.
암보험 논란은 암 진단을 받은 뒤 요양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이 보험사에 암 치료비를 청구했지만 보험사들이 약관에 정한 ‘암의 직접적 치료 목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하면서 시작됐다.
다만 윤 원장이 생명보험사를 상대로 종합검사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지만 검사 및 제재의 '시기'를 잡기 쉽지 않아 보인다.
즉시연금 사태가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뜨거운 감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그 전에 종합검사를 결정하기엔 부담이 크다. ‘보복성 검사’라는 비판이 불거질 수 있는 빌미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7월 국회에서 열린 금감원 업무보고에서도 김선동 김종석 자유한국당 의원 등은 “생명보험사에 즉시연금 일괄 구제를 요구하는 것은 직권남용”이라며 질타했다.
종합검사를 실시하더라도 즉시연금 사태가 법원으로 넘어간 만큼 최소한 1심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는 생명보험사를 상대로 제재를 내리기에는 쉽지 않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윤 원장은 즉시연금 과소 지급에 따른 소송 문제와 보험업법의 설명의무 위반에 따른 제재는 별개로 보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법원의 판단과 엇갈리면 후폭풍이 거셀 가능성이 높다.
금융권 관계자는 “생명보험회사들이 금감원에 정면으로 맞서는 모양새가 되면서 금감원 체면이 많이 구겨졌다는 말이 나돈다”며 “윤 원장은 금감원 조직의 힘이 빠지지 않도록 생명보험사와 ‘전쟁’도 감수할 채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최석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