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은 정부의 적극적 재정 역할을 강조하는 이 후보의 경제관을 '포퓰리즘'이라며 맹공을 퍼붇고 있어 유권자들 표심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주목된다.
22일 정치권 움직임을 종합하면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와 국민의힘이 정부의 ‘확장 재정’을 두고 격돌을 펼치고 있다.
김용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이재명 후보가 '우리나라는 국민에게 공짜로 주면 안 된다는 희한한 생각을 하고 있다. 나라가 빚을 지면 안 된다는 무식한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했다"며 "이게 국가를 책임지겠다는 사람의 말인가”라고 비판했다.
앞서 이 후보는 21일 경기 인천 유세에서 “나라 빚이 1천조 원 넘었다며 절대 나라 빚을 지면 안된다는 무식한 소리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GDP가 2600조 원인데 1천조 원이면 국가부채 50%가 안 되는 건데 다른나라들은 110%가 넘는다”고 말했다.
실제 우리나라 정부의 2024년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은 46.1%다. 2013년(31.2%)부터 2019년(35.4%)까지 30%대를 유지하다 2020년 코로나19 유행 당시 정부가 재정을 풀면서 처음 40%대(41.1%)로 진입했다.
이는 다른 주요 국가들과 비교해 지표상 낮은 수준이다.
세계 196개국의 경제지표 데이터를 제공하는 트레이딩 이코노믹스에 따르면 미국은 2023년 기준 정부 부채 비율이 120%로 추정되며 유럽(87.4%), 프랑스(113%), 독일(62.5%), 중국(88.3%) 등도 우리나라보다 훨씬 높다.

▲ 기획재정부의 2024년 회계연도 기준 국가채무 결산 결과 표. <기획재정부>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연구위원은 21일 YTN라디오 생생경제에서 “국채 발행량이라는 것은 전체 발행 액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결국 GDP 대비 국채 발행 비율이 중요하다”며 "우리가 너무 국채 발행 총액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말고 얼마나 우리 경제 성장에 기여할 수 있을까를 보면 더 재정의 지속 가능성은 더 좋아질 수도 있다라는 부분은 알아야 한다“고 짚었다.
이 후보와 민주당은 그동안 추가경정예산이나 자영업자, 소상공인 지원 등을 강조해 왔다. 이 후보가 현재 우리나라의 국가 채무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함에 따라 결국 국채 발행으로 재원을 마련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민주당은 지난 12일 이재명 후보의 10대 대선 공약을 발표하면서 재원 조달 방안을 놓고 정부재정 지출구조 조정분, 2025~2030년 연간 총수입 증가분으로 충당한다는 ‘한 줄 설명'에 그쳤다. 이에 반해 아동수당 확대 등 공약에 필요한 재원은 개별 사업마다 수조 원에 이른다.
이상민 연구위원은 “아무리 정부의 지출 구조조정을 잘해도 10% 이상 할 수는 없는데 이게 최대 20조 원”이라며 “20조 원 가지고 전체 공약 재원을 마련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이 후보의 확장 재정론은 지금 내수 경기가 심각하게 위축된 만큼 국가 재정을 투입함으로써 경제성장에서 정부와 민간 소비가 기여하는 비중을 높이는 동시에 선순환을 발생시킨다는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이른바 1930년대 미국의 경제 대공황 당시 정부재정 투입을 늘리며 효과를 증명했던 ‘케인즈주의 경제론’이다.
반면 국민의힘과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국가의 재정건전성과 지속성을 강조한다. 결국 기업의 효율성을 통해 경제성장을 달성하려는 '고전주의 경제론'에 무게를 싣는 셈이다.

▲ 김용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2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김문수 대선후보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현장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와 함께 이 후보가 말하는 ‘확장 재정’은 결국 미래세대의 빛으로 돌아온다고 주장하며 2030세대를 향해 이 후보의 경제관이 잘못됐다고 호소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이 후보의 빚을 더 '퍼질러서' 쓰겠다는 발상은 대한민국을 끝장내고 국민 모두를 집단 파산으로 몰아가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며 “이 빚은 모두 2030세대, 미래 세대가 갚을 수밖에 없어 이재명식 질러노믹스는 감당할 수 없는 포퓰리즘”이라고 맹비난했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에 '대안'을 내놓으라고 맞불을 놓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기가 심각하게 침체됨과 동시에 단기간 내에 성장률이 극적으로 높아질 가능성도 낮은 상황에서 정부재정 투입이 아니라면 내수경기 회복의 다른 ‘묘수’를 내놓아 보라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집권기간 내내 '건전 재정'을 외쳤지만 경제운영에 대한 국민적 평가가 좋지 못한 데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공약에도 재원 조달 방안이 부족하다는 점을 민주당은 파고들고 있다.
조승래 민주당 공보단장은 이날 언론브리핑에서 이 후보의 경제관을 향한 지속적인 공세에 관한 질문에 “지금 내수경기 침체돼 있다는 건 누구나 인정하는데 이걸 어떻게 해결하느냐 핵심 문제”라며 “경기 진작 방안 측면에서 보면 적극적 정부재정 역할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건데 국민의힘은 어떤 대안을 갖고 있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다만 실제 정부가 국채를 발행해 확장 재정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이라 하더라도 정부 부채를 늘리는 것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정부는 빚을 낼 여력이 있다지만 경제의 세 주체인 가계, 기업, 정부 부채를 모두 더한 ‘국가총부채’ 규모가 6천조 원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국제결제은행(BIS)이 지난 3월20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4년 3분기 말 원화기준 우리나라의 비금융부문 신용은 6222조 원으로 집계됐다. 비금융부문 신용이란 주요 경제 주체인 가계·기업·정부의 부채를 합산한 금액으로 한 국가의 총부채를 뜻한다.
실제 국제결제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가총부채(정부+가계+기업)는 2024년 말 기준 GDP 대비 269.8%로 선진국(264.3%) 평균을 5.5%포인트 웃돌았다. 다만 이는 가계부채가 비정상적으로 크기 때문에 수평적 비교가 어렵다. 가계부채는 주택담보대출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다.
우리나라보다 비율이 높은 10개국은 △홍콩(441.7%) △룩셈부르크(407.9%) △일본(398.8%) △싱가포르(347%) △프랑스(320.4%) △캐나다(312.1%) △스위스(294.4%) △벨기에(293.3%) △중국(283.4%) △노르웨이(273.1%) 등이다. 김대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