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이한우 현대건설 대표이사와 주우정 현대엔지니어링 대표이사 사장이 전례 없는 수준의 '빅 배스(잠재부실을 털어내는 회계기법)'를 단행했다. 이에 지난해 현대건설은 자회사 현대엔지니어링을 포함한 연결기준으로 현대자동차그룹 편입 뒤 처음으로, 자체적으로는 23년 만에 영업적자를 보게 됐다.

다만 풍부한 수주곳간을 기반으로 올해 역대 최대 규모의 영업이익을 목표로 내건 만큼 이번 빅배스는 두 최고경영자가 향후 수익성을 높이면서 체질개선을 가속화하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현대건설 현엔 '빅 배스'에 그룹 편입 뒤 첫 적자, 새 리더 이한우 주우정 수익경영 담금질

이한우 현대건설 대표이사(왼쪽)과 주우정 현대엔지니어링 대표이사 사장.


현대건설은 2024년 연결기준 매출 32조6944억 원, 영업손실 1조2209억 원, 순손실 7364억 원을 낸 것으로 잠정집계됐다고 22일 발표했다.

2023년과 비교해 매출은 10.3% 증가했지만 대규모 영업손실과 순손실을 내면서 적자전환한 것이다.

현대건설이 영업손실을 본 것은 2011년 현대자동차그룹으로 편입된 뒤 처음이다. 시계를 더 거꾸로 돌려도 워크아웃에 돌입한 2001년(영업손실 3826억 원) 이후 무려 23년 만이다.

현대건설의 지난해 실적은 당초 증권업계 추정을 현저하게 밑돌면서 분석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수준이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해 현대건설 실적 추산치는 매출 33조5889억 원, 영업이익 5781억 원, 순이익 5133억 원이다.

건설업계와 증권업계 안팎에서는 올해 이 대표와 주 사장이 새로 선임된 직후 4분기 일정 수준의 원가율 현실화 비용을 반영했을 것이라는 시각이 나왔다.

다만 대형건설사 사이에서도 눈에 띄게 수익성이 악화했던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에서 예측을 뛰어넘는 대규모 부실털기, 빅 배스(big bath)가 이뤄진 셈이다.

빅배스는 부실요소를 한 번에 손실로 반영해 위험요인을 제거하는 회계기법이다. 특히 지난해 현대건설의 대규모 영업손실의 주요 원인은 자회사 현대엔지니어링 해외 현장 비용 반영이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매출채권은 2조2307억 원, 미청구공사채권은 1조6236억 원 규모다. 2023년 말과 비교하면 매출채권은 22.0%, 미청구공사채권은 13.3% 늘어난 것이다.

매출채권은 공사를 진행한 뒤 발주처에 청구했지만 받지 못한 미수금을, 미청구공사채권은 공사를 진행했지만 아직 발주처에 청구하지 않은 금액을 말한다.

각 사업장에 따라 정도는 다르지만 공사를 하면서 진행한 비용을 아직 돌려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위험요소로 분류된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이를 선제적으로 손실에 반영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업장별로 보면 현대엔지니어링은 인도네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 플랜트 공사와 관련해 대규모 손실을 반영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 가운데 특히 인도네시아 발릭파판 정유공장 프로젝트에서 공정 촉진 발생 비용에 따라 대규모 손실을 반영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엔지니어링 최근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발릭파판 프로젝트는 2018년 12월 공사를 시작해 2025년 9월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기본도급액 4조3720억 원 가운데 4686억 원이 계약잔액으로 남아있다.

이밖에 현대건설도 현대엔지니어링과 함께 진행하는 사우디아라비아 자푸라 가스전 사업장 등에서 발생한 손실을 지난해 4분기 실적에 반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현대건설 연결기준 영업손실을 회사별로 보면 현대건설이 별도기준 1722억 원, 현대엔지니어링이 연결기준 1조2401억 원을 냈다. 현대건설은 수천억 원대, 현대엔지니어링은 1조 원 규모 이상을 선제적으로 손실로 반영한 것으로 분석된다.

일반적으로 빅배스는 기업의 새 대표가 선임되면 전임 경영진 때 쌓인 불안요소를 단번에 털고 향후 실적 반등을 노리기 위해 이뤄지는 경우가 잦다.

이 대표와 주 사장이 건설업 불황에 따른 위기극복 및 근본적 체질개선을 가속화하라는 현대차그룹의 특명을 받은 점이 이번 빅배스가 실시된 배경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기아 재경본부장(CFO·최고재무책임자)을 지낸 주 사장의 현대엔지니어링에서 강도 높은 빅배스가 단행됐다.

이 대표와 주 사장이 빅배스를 통해 수익성 개선의 길을 열어둔 상황에서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의 꾸준한 외형성장, 풍부한 수주잔고는 두 최고경영자에게 든든한 뒷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건설은 지난해 처음으로 연결기준 매출 30조 원을 돌파하며 기존 목표였던 29조7천억 원을 10% 이상 초과달성했다. 2021년 18조655억 원, 2022년 21조2391억 원, 2023년 29조6514억 원에 이어 지난해 32조6944억 원까지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회사별로 봐도 최근 3년 동안 외형성장에 성공하고 있다. 현대건설 매출은 2021년 10조700억 원, 2022년 11조8636억 원, 2023년 15조7788억 원, 지난해 16조7542억 원, 현대엔지니어링 매출은 같은 기간 7조3722억 원, 8조8155억 원, 13조633억 원, 14조7604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현대건설은 이라크 바스라 정유공장, 국내 샤힌 프로젝트 등 대형 현장 공정을 순조롭게 진행하면서 11월 준공한 서울 강동구 올림픽파크포레온(둔촌주공 재건축)이 실적에 반영되면서 우수한 매출 성적을 냈다.

현대건설은 지난해 신규수주도 30조5281억 원으로 당초 목표였던 28조9900억 원을 5% 이상 초과달성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국내 주요 주택 프로젝트인 대전 도안 2-2지구 공동주택 신축공사, 부산 괴정5구역 재개발사업을 비롯해 불가리아 코즐로두이 대형원전 설계, 사우디 자푸라 프로젝트 패키지2 등 고부가가치 해외 프로젝트를 따내며 수주잔고 89조9316억 원을 확보했다.

현대건설 연결기준 수주잔고는 2021년 말 78조7608억 원에서 지난해 말 88조9316억 원으로 12.9% 확대됐다. 지난해 말 기준 현대건설이 60조9050억 원, 현대엔지니어링이 28조1499억 원이다.
 
현대건설 현엔 '빅 배스'에 그룹 편입 뒤 첫 적자, 새 리더 이한우 주우정 수익경영 담금질

▲ 현대건설 계동사옥.


이 대표와 주 사장은 빅배스 및 풍부한 일감을 기반으로 올해 수익성 개선을 자신하는 모양새다.

신규수주 목표를 지난해 성과보다 더 높이 설정한 것을 넘어 오랜만에 영업이익 목표치를 시장과 소통한 데다 그 규모가 1조 원 이상에 이른다.

현대건설은 올해 경영목표로 연결기준 매출 30조3873억 원, 신규수주 31조1412억 원을 내세운 가운데 영업이익 목표도 1조1828억 원으로 제시했다.

현대건설이 가장 최근 매출과 신규수주 이외에도 연초 경영계획으로 영업이익을 제시했던 때는 2020년이었다. 현대건설은 2020년 연결기준 영업이익 목표 6천억 원을 세웠고 5490억 원을 냈다.

올해 영업이익 목표 자체를 1조1828억 원이라는 공격적 목표로 설정했는데 이는 역대 최대치를 경신하겠다는 것이다.

현대건설은 2015년 건설업계 최초로 영업이익 ‘1조 클럽(1조893억 원)’을 달성한 뒤 2016년 1조1590억 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후 현대건설은 여태껏 영업이익 1조 원 이상을 거둔 해가 없다.

현대건설은 꾸준한 외형 수준을 유지하면서 수익성 중심의 사업구조를 구축해 선별수주, 원가율 및 공사비 관리 강화에 주력한다. 또 에너지 사업으로도 적극적으로 발을 넓혀 체질개선을 통한 위기극복에 매진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글로벌 경쟁력을 보유한 대형원전을 포함해 청정에너지 사업을 확대하고 신개념 주거상품 개발과 생산기술 혁신에 더욱 힘쓸 것”이라며 “수익성 개선을 최우선 과제로 지속가능한 미래 신성장동력을 확보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상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