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 겸 롯데바이오로직스 글로벌전략실장(사진)이 경영 전면에 나서기 위한 경영수업을 빠르게 밟고 있지만 롯데그룹의 현주소를 살펴볼 때 성과를 내기 쉽지 않은 상황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
롯데그룹은 롯데케미칼의 실적 악화에 따른 유동성 위기로 비상경영에 들어갔다. 이제 막 승계수업에 속도를 내기 시작한 신 실장이 역량을 발휘하기 쉽지 않은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신 실장은 주력 사업의 체질 개선보다는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글로벌과 신사업을 발판으로 삼아 경영능력을 입증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그 성과를 바탕으로 경영승계의 명분을 다질 것으로 보인다.
13일 롯데그룹 안팎의 얘기를 들어보면 신유열 미래성장실장의 승진 속도가 다른 대기업과 비교해 매우 빠르다는 데 이견이 없다.
신 실장이 롯데그룹에 처음 모습을 보인 것은 2020년 상반기. 당시 한·일 롯데그룹의 모태로 여겨지는 일본 롯데에 부장 직급으로 입사했다. 2022년 5월에는 임원으로 승진하며 롯데케미칼 일본 동경지사에서 신사업을 담당했다.
한국 롯데그룹에 모습을 비추기 시작한 시기는 2022년 9월부터다. 당시 신동빈 회장의 동남아시아 출장에 동행하면서 한국 언론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롯데파이낸셜 대표이사 등에 선임되면서 경영 전면에 나서는 분위기가 조성됐고 롯데그룹 안에서는 2023년 말 전무, 2024년 말 부사장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부장으로 입사해 4년여 만에 부사장이 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속도라고 할 수 있다. 한화그룹과 HD현대그룹 등에서 30~40대 후계자가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신 실장보다 빠르게 승진가도를 달린 인물을 찾기 힘들다.
▲ 롯데그룹의 '신유열 시대'가 벌써부터 주목받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신 실장의 부족한 경험도 빠른 승진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다른 재벌그룹 오너일가가 국내사업을 최소 5년 이상 경험한 뒤 경영 전면에 나서는 것과 비교하면 신 실장의 롯데그룹 실무 경험은 매우 부족하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신동빈 회장이 그룹 전반의 사업을 좀 더 빠르게 포괄적으로 익혀 궁극적으로 롯데그룹을 이끌어나갈 수 있는 안목을 갖추라는 판단 아래 신 실장의 경영수업을 재촉하고 있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신 실장 역시 대내외 행보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그는 최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가전 박람회 CES2025에 참석해 롯데그룹뿐 아니라 국내외 기업의 부스를 둘러봤다. 신 실장은 3년 연속으로 CES를 찾으며 롯데그룹의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는 데 주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룹 사장단이 모이는 회의 'VCM'에도 꾸준히 참석하고 있다. VCM은 신동빈 회장이 롯데지주 대표이사를 비롯한 주요 사업군 수장과 계열사 사장을 모아 그룹의 미래를 논하는 자리로 옛 사장단 회의의 성격을 지닌다.
신 실장은 CES를 참관하고 난 직후 귀국한 당일 열린 VCM에 참석했는데 쉴 틈 없이 움직였다는 점에서 그룹 후계자의 무게감을 보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물론 신 실장의 앞길은 녹록치 않다.
무엇보다도 롯데그룹이 안팎으로 흔들리고 있어 신 실장의 역량이 겉으로 드러나기 쉽지 않은 구조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롯데그룹은 롯데케미칼의 3년 연속 영업손실 탓에 재무구조가 취약해졌다. 지난해 말 롯데그룹을 곤혹스럽게 했던 유동성 위기설도 롯데케미칼의 실적 부진에 뿌리를 두고 있다.
신 회장이 그룹의 상징과도 같은 롯데월드타워를 은행권에 담보로 제공했다는 사실은 롯데그룹이 얼마나 어려운 시기를 걷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신 실장이 신 회장처럼 인수합병에 힘을 싣기도 사실상 어렵다는 시각이 많다. 그룹에 돈이 있어야 투자에 나설 수 있는데 현재 롯데그룹은 오히려 비주력 자산을 매각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결국 신 실장이 성과를 낼 곳은 그가 담당하고 있는 롯데지주 미래성장실과 롯데바이오로직스 글로벌전략실이 될 수밖에 없다.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은 신 실장이 전무로 승진하던 2023년 12월 신설된 조직이다. 롯데그룹이 추진하는 신사업 관리뿐 아니라 또다른 성장 엔진을 발굴하는 임무를 맡는 조직이라고 롯데지주는 설명한다.
롯데바이오로직스 글로벌전략실도 미래성장실과 결이 비슷한 조직이다. 롯데바이오로직스가 2030년까지 글로벌 톱10 바이오 위탁개발생산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글로벌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글로벌전략실의 역할이다.
▲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사진)은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의 경영수업을 지원하기 위해 롯데그룹의 주요 참모진을 미래성장실에 배치해놓고 있다.
신동빈 회장은 신유열 실장의 안착을 지원하기 위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의 참모도 바꿨다.
지난해 11월 말 실시한 정기 임원인사를 통해 미래성장실 산하 신성장팀 수장으로 임종욱 상무를 배치한 것이다. 임 상무는 신동빈 회장이 일본 브랜드 유니클로의 한국 사업을 운영하는 에프알엘코리아 등기임원에서 물러났을 때 신 회장의 빈자리를 채운 인물이다.
미래성장실 산하 글로벌팀장 자리는 롯데그룹의 기획과 전략 분야 전문가로 꼽히는 김수년 상무보가 2년 연속으로 맡고 있다. 이 두 사람이 향후 신 실장이 그룹 회장으로 커 가는데 실세 키맨 역할을 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신 실장이 경영수업을 받는 모습을 놓고 신동빈 회장이 롯데그룹에 등장했을 때와 닮아 있다.
신 회장은 과거 한국 롯데그룹 경영 전면에 나설 때 ‘확장형 DNA’를 가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창업주인 신격호 명예회장이 ‘롯데가 하던 것만 해야 한다’는 기조를 가졌던 것과 달리 신동빈 회장은 ‘기회가 있을 때 사업을 넓혀야 한다’고 생각한 것으로 알려진다.
1990년대 말 당시 신격호 회장 신동빈 부회장의 경영 행보를 놓고 “롯데 부자 경영스타일은 ‘극과 극’”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일본에서 사업을 홀로 일궈 성공시킨 신격호 회장이 보수적 경영스타일을 고수할 수밖에 없는 반면 일본 노무라증권에서 10년 넘게 일하며 자본시장을 경험한 신동빈 회장은 적극적인 경영스타일을 내세울 수밖에 없다는 해석이다.
신유열 실장 역시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일본 노무라증권 경험을 지니고 있는 만큼 국제적인 경영감각을 롯데그룹에 이식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롯데그룹이 화학과 유통 등 전통적 주력 사업에서 벗어나 바이오와 메타버스 등의 신사업으로 발을 내딛는 데 신 실장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게 부각될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