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삼성전자가 글로벌 통신장비 시장에서 '화웨이 퇴출'이라는 기회를 만났다.

김우준 삼성전자 네트워크사업부장 사장은 영국과 인도를 비롯해 보안과 외교적 이유 등으로 화웨이 통신장비가 퇴출되는 지역에서 수주를 늘리고 이를 발판삼아 글로벌 통신장비 시장에서 도약을 노릴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통신장비 화웨이 빈자리 메운다, 김우준 글로벌 입지 확대 기회

▲ 김우준 삼성전자 네트워크사업부장 사장(사진)이 보안과 외교적 사유 등으로 화웨이를 퇴출시키고 있는 해외시장을 중심으로 개방형 무선접속망(오픈랜)을 구축하며 글로벌 통신장비 시장에서 도약을 노리고 있다. <삼성전자>


5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영국 통신업체인 보다폰의 무선망을 지원하기 위해 웨일스와 영국 남서부의 2500개 국사에서 오픈랜 구축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오픈랜은 개방된 무선접속망(RAN)으로 서로 다른 제조사의 통신장비를 연동해 사용할 수 있는 차세대 통신망이다. 

이번 오픈랜 구축사업은 보다폰이 2020년에 발표한 화웨이 통신장비 대체 계획에 따른 것이다.

보다폰은 안테나 등 일부 통신설비에 화웨이 제품을 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정부는 2020년 7월 국가안보회의(NSC)를 통해 통신사업자가 고위험 공급업체(HRV)의 통신장비를 2027년까지 제거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영국정부는 주요 고위험 공급업체로 화웨이를 꼽았다.

영국 정부의 이런 결정은 미국 행정부의 중국기업 견제 행보에 발맞춘 것으로 풀이된다. 

당시 미국 정부는 화웨이 통신장비에 백도어(보안조치 우회경로)가 심어져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2019년 5월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통신장비 판매와 사용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이후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주요 국가들이 ‘탈화웨이’ 대열에 동참했다. 미국은 더 나아가 2023년 4월 ‘해외 비신뢰 통신 방지법’을 통과시키고 동맹국에게 화웨이 통신장비 퇴출을 촉구했다.

통신장비 업계의 선두주자 화웨이가 미국 동맹국들로부터 퇴출압력을 받게 되면서 삼성전자가 이를 대체할 수요를 가져갈 기회를 맞이할 것으로 분석된다.

로이터에 따르면 독일 정부도 5G 통신장비에 화웨이 제품 사용을 금지하는 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는 보다폰과 함께 독일에서도 오픈랜 구축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나아가 삼성전자는 인도에서도 오픈랜 사업을 넓혀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인도 정부는 2021년 5월에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기업을 5G 통신장비 사업에서 배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통신전문 매체 이티텔레콤은 소식통을 인용해 "삼성전자는 인도 통신사 보다폰아이디어와 함께 인도 타밀나두 지역의 20여 곳에서 개념증명(PoC)을 수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개념증명은 신기술의 실행 가능성을 입증하는 작업을 뜻한다.

인도 통신시장은 규모가 큰 만큼 사업매력도가 높은 시장으로 꼽힌다. 인도 통신규제청(TRAI)이 2022년 9월 발표한 바에 따르면 당시 인도 이동통신 사용자 수는 약 11억5천만 명으로 중국에 이어 세계 2위 규모에 이른다.

아울러 인도정부는 나렌드라 모디 총리 취임 이후 5G와 6G 상용화를 위해 속도를 내고 있어 오픈랜을 비롯한 차세대 통신장비 수요도 커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삼성전자 통신장비 화웨이 빈자리 메운다, 김우준 글로벌 입지 확대 기회

▲ 기지국, 라디오, 안테나 기능이 모두 담긴 삼성전자의 통신장비. <삼성전자>


김우준 사장으로서는 화웨이가 유럽과 인도 등지에서 밀려나고 있어 해외 시장을 적극 개척할 기회를 맞이하게 된 셈이다.

김 사장은 새롭게 쌓은 오픈랜 사업 성과를 바탕으로 글로벌 통신장비 시장 공략에 더욱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김 사장은 올해 8월 우리 정부가 주관하는 오픈랜 생태계 구축 동맹(ORIA)에 참여하는 등 오픈랜 사업에 더욱 힘을 주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옴디아에 따르면 2022년 글로벌 통신장비 시장규모는 81억 달러(약 63조 원)였으며 이 가운데 오픈랜을 포함한 무선접속망 부문이 전체 매출의 약 94%를 차지했다.

글로벌 무선접속망 시장에서 화웨이(31.3%)가 선두를 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의 시장점유율은 7.6%로 5위에 머물렀다. 

하지만 김우준 사장은 신시장으로 여겨지는 오픈랜 분야에서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김 사장은 4월 통신전문 매체 피어스와이어리스와의 인터뷰에서 “삼성전자가 vRAN과 오픈랜에 갖고 있는 선도적 지위가 새로운 기회를 확보하는 데 핵심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vRAN은 무선접속망 장비가 제공하는 네트워크 기능을 가상화 소프트웨어(SW) 형태로 구현해 개방성과 유연성을 높이는 기술을 말한다.

옴디아에 따르면 2022년 vRAN 기술이 적용된 오픈랜 설비매출이 전체 무선접속망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1%에 불과하지만 2027년에는 18.5%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여재현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연구원은 7월 발간한 ‘오픈랜과 이동통신 산업정책의 귀환’ 보고서에서 “미국이 중국 기업의 영향력 확대가 자국경제와 안보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자국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산업정책과 더불어 ‘인도-태평양 전략’ 차원에서 오픈랜 생태계에서의 중국 배제 및 주요 동맹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 연구원은 "우리나라는 미국과 안보 협력을 기반으로 하는 동맹국으로 미국과 오픈랜 공조 강화는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 사장은 1968년 생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동갑이다.

서울대 전자공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미국 네트워크 업체인 에어바나 최고기술책임자(CTO)를 거쳐 삼성전자 네트워크사업부에 2012년 영입됐다. 상품전략그룹장, 차세대 전략그룹장, 전략마케팅 팀장을 역임한 뒤 지난해 연말 인사에서 사장으로 발탁됐다. 김바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