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매치] 삼성-경계현 SK-곽노정, 반도체 혹한기 탈출 '다른 길'

▲ 2023년 반도체 산업의 겨울이 더욱 매세워질 것으로 보인다.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 대표이사 사장(왼쪽)과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의 어깨가 더욱 무거워지고 있다.

[편집자주] 2023년,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지나 고금리와 인플레이션, 세계 경기침체와 지정학적 리스크로 불안정한 시장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기업에도 예측하기 어려운 위기가 다가오며 회사의 미래를 짊어진 CEO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국내 주요 CEO들은 서로 경쟁하면서도 이 과정에서 회사의 발전을 이끌어 한국 경제의 위기 극복에 해답을 찾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올해 이들이 대결하는 분야와 이뤄내야 할 목표를 통해 앞으로의 시장 흐름과 업계 판도를 예측해본다.
 
[비즈니스포스트] 반도체 혹한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2023년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 대표이사 사장과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의 어깨가 더욱 무거워지고 있다.

SK하이닉스 뿐만 아니라 삼성전자도 2023년 1분기 혹은 2분기에 영업손실을 낼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두 사람의 위기대응 능력이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다만 경계현 사장과 곽노정 사장은 같은 위기를 맞이하고도 다른 대응책을 내놓았는데 2023년 그 결과에 따라 두 사람의 경영능력에 대한 평가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1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메모리반도체 수요 부진이 심각한 상황에서도  삼성전자가 인위적인 감산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당분간 업황이 반등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D램 시장의 40%, 낸드플래시 시장의 3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메모리반도체 1위 기업이다. 따라서 삼성전자가 감산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면 업계의 반도체 물량 조절은 효과를 거두기 힘들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는 메모리반도체 2, 3등인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이 반도체 생산량을 줄이겠다고 발표한 것과 달리 여전히 기존 계획대로 반도체를 생산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이에 따르면 2023년 삼성전자의 메모리반도체 생산량은 2022년보다 16% 정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 DS(반도체)부문은 감산을 단행하지 않는다면 경쟁사와 마찬가지로 2023년 1분기 혹은 2분기에는 영업손실을 내 적자전환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경계현 사장은 삼성전자가 1분기 정도 적자전환을 감수할 수 있는 만큼 이번 위기상황을 오히려 점유율 확대 기회로 삼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분석된다. 경쟁사들과 달리 삼성전자는 긴 시간동안 적자를 버틸 체력을 갖춘 만큼 ‘치킨게임(상대방이 망할 때까지 초저가로 제품을 공급하는 전략)’을 피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인위적 감산 계획이 없는 삼성전자의 낸드플래시 시장점유율은 2024년 35.7%까지 올라갈 것”이라며 “반도체 산업 불황은 1등 기업의 시장지배력 상승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어느정도 여유가 있는 경계현 사장과 달리 곽노정 사장은 급박한 상황에 놓여있다. 반도체업황이 장기화되면 삼성전자와 달리 SK하이닉스는 이를 버텨내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는 이미 2022년 4분기부터 영업손실을 내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데다가 2023년에는 5조 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낼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SK하이닉스가 2022년 9월 말 기준 현금성자산 7조2천억 원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재무상황이 심각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채민숙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SK하이닉스는 2023년 5조3230억 원의 영업손실을 낼 것”이라며 “특히 낸드플래시의 평균판매가격 하락으로 재고자산평가손실 규모가 확대되면서 수익성에 부담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보유하고 있는 현금성자산, 원가경쟁력, 시장점유율 등에서 차이가 큰 만큼 경 사장과 곽 사장이 마주한 상황과 대응책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경 사장과 곽 사장은 모두 엔지니어 출신으로 각각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로 꼽힌다. 또 2022년 3월 같은 시기에 각각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대표이사로 선임되면서 선의의 경쟁을 펼치고 있다.

경 사장과 곽 사장은 2022년 상반기까지는 모두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메모리반도체 업황이 최고조에 이르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어렵지 않게 역대급 실적을 달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23년 반도체업황이 최악으로 치달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두 사람의 위기대응 경영능력이 본격적으로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경 사장과 곽 사장의 향후 연임여부도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2023년은 경 사장이 더 주도적으로 전략을 세울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다만 경 사장의 반도체 생산량 유지 전략으로 삼성전자가 얻게 될 득보다 실이 커진다면 그 책임을 피하질 못할 수 있다. 반도체업황이 장기화된다면 삼성전자도 막대한 출혈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2023년 초에는 삼성전자도 감산을 고려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한다.

곽 사장은 2023년 SK하이닉스의 적자를 최소화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안고 있다.

곽 사장은 이를 위해 수율(결함이 없는 합격품의 비율) 개선과 함께 고부가가치 제품 판매를 확대해 수익성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생산수율을 높이면 단위당 생산비용이 절감돼 수익성을 높일 수 있다.

곽 사장은 2021년 SK하이닉스 뉴스룸 인터뷰에서 “우리 회사 생산기술의 총합은 수율로 정의할 수 있다”며 “수율을 업계 최고(Best In Class)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모든 역량을 모아 추진하고 있는 목표”라고 말하기도 했다.

만약 비용 절감이나 수율 개선과 같은 방식으로 재무부담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SK하이닉스가 보유한 키오시아 지분의 처분도 검토할 가능성이 있다. SK하이닉스가 보유한 키오시아 지분 투자금액은 약 6조3천억 원 정도로 평가된다.  

메모리반도체 산업은 높은 고정비 부담으로 유연한 공급 조절이 어려운 산업특성상, 지금과 같은 다운사이클은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모두 피해갈 수 없다. 그러나 2023년 하반기부터는 반도체 고객사들의 재고도 어느 정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어려운 시기가 오랫동안 지속되지 않을 것이란 희망섞인 관측도 나온다.

김석훈 한국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D램은 2023년 3분기, 낸드플래시는 2023년 4분기 내지 2024년에 업황 반등 모색이 가능할 것”이라며 “특히 낸드는 상대적으로 가격에 민감한 개인소비자 제품 수요가 많아 업황이 반등할 때 더 가파르게 상승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