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전영묵 삼성생명 대표이사 사장이 차입금 한도를 대폭 늘리고 위험분산을 위한 공동재보험을 체결하는 등 리스크 관리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금융업계는 삼성생명이 이미 2조 원가량의 유동성을 확보해 놓고 있지만 자산운용에 경험이 풍부한
전영묵 사장이 내년에 닥쳐올 수도 있는 경기침체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려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 전영묵 삼성생명 대표이사 사장(사진)이 차입금 한도를 대폭 늘리고 위험부담도 재보험사로 이전하는 리스크 관리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
1일 삼성생명에 따르면 유동성 위기에 대비하기 위해 2023년 말까지 단기자금 차입한도를 3조6천억 원까지 늘려 운용한다.
삼성생명은 11월29일 열린 이사회에서 이러한 단기자금 차입한도를 확대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이에 따라 삼성생명은 3조6천억 원의 범위 안에서 당좌차월(일정 한도 내에서 예금잔액을 초과해 수표를 발행해도 은행이 이를 지급하는 것)이나 환매조건부채권(RP)를 매도해 자금을 마련할 수 있게 됐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금리가 오를 것이라고 예상되면 마이너스통장 한도를 뚫어놓는 것과 비슷하게 한도를 미리 확보해놓은 것이다”고 설명했다.
삼성생명은 단기자금 차입한도를 확대하기로 한 같은 날 국내 유일 재보험사인 코리안리와도 5천억 원 규모의 공동재보험계약을 맺었다.
공동재보험은 원수보험사가 영업보험료 전체를 재보험사에 출재하고 지급보험금뿐만 아니라 해약환급금, 만기보험금, 책임준비금 적립 등의 책임을 재보험사와 공동으로 부담하는 제도를 말한다.
원수보험사인 삼성생명은 공동재보험을 통해 부채부담을 재보험사인 코리안리와 나눌 수 있어 재무건전성을 개선할 수 있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홍재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공동재보험은 보험 리스크뿐 아니라 금리 리스크까지 출재할 수 있는 원수보험사의 자본관리 수단 중 하나다”며 “의미를 확장해서 본다면 자산 운용의 운신의 폭도 제고할 수 있는 수단이다”고 말했다.
전 사장이 갑자기 차입 한도를 늘리고 재무건전성 개선에 나서고 있으나 삼성생명이 당장 유동성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삼성생명이 올해 증시하락의 영향을 받아 변액보증준비금을 많이 쌓아야 해 3분기까지 다소 부진한 실적을 내고 있지만 4분기에 부동산과 주식 매각으로 7천억 원 수준의 이익 개선효과를 앞두고 있다.
특히 삼성생명은 2조 원 수준의 유동성을 확보하고 있어 유동성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회사가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11월11일에 열린 3분기 콘퍼런스콜에서 “현재 수준의 해약이나 유동성 문제는 제어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금융업계는 전 사장이 올해보다 내년에 경제상황이 더 안 좋을 수 있다고 판단해 선제적으로 리스크 관리에 들어갔다고 바라보고 있다.
올해 레고랜드 사태와 일부 보험사의 신종자본증권 조기상환 미행사 우려 등으로 빚어진 자금시장의 유동성 경색이 내년부터 더 심각한 경기침체 상황과 만나 더욱 심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금융당국에서 연일 금융회사를 대상으로 선제적 리스크 관리와 유동성 확보를 강조하고 있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11월11일 외신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단기성과에만 집착해 시장 상황 변화에 대비한 선제적 리스크 관리를 소홀히 한 금융기관에 대해서는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했다.
이 원장은 1일 국제금융학회 정책세미나에서는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통화긴축 상황에서 대내외 충격을 흡수할 수 있도록 금융회사의 건전성과 유동성을 촘촘히 관리해 나가고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전 사장은 자산운용 실력이 뛰어나고 치밀한 경영관리를 해나간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0년 금융위기 당시 삼성생명 자산운용본부를 이끌면서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산을 안정적으로 운용하기도 했다.
전 사장은 1964년 태어나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삼성생명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해 자산PF운용팀장, 투자사업부장, 자산운용본부장을 지냈고 삼성자산운용 대표이사 부사장을 거쳐 2020년 삼성생명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 조승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