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정치란 사회적 희소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다." 미국의 정치학자 데이비드 이스턴이 한 말이다. 

사회적 희소가치는 돈, 명예, 권력 등 누구나 갖고 싶어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두가 혹은 대다수가 수긍할 수 있도록 배분돼야 탈이 없다. 이를 위해 사람들은 다수의 지지가 더해져 정당화된 권력에 사회적 희소가치를 나누는 것을 위임한다.
 
[기자의눈] 윤석열에게 '정치'는 부정적 단어? 대통령으로서 '정치' 해야

윤석열 대통령이 9월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래서 사람들은 대통령의 단어 선택 하나하나에 주목한다. 대통령은 가장 고도의 정치적 행위를 하는 것이 본연의 책무이고 정치행위는 기본적으로 말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최근 윤 대통령의 발언 가운데 '정치복지', '정치방역'이란 말이 주목받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8월23일 출근길문답에서 수원 세모녀 사건과 관련해 "저는 자유와 연대의 기초가 되는 복지에 관해 그동안 정치복지보다는 약자복지로 (추구했다)"며 "그리고 어려움을 한목소리로 낼 수 없는 약자들을 찾아 이분들의 어려운 삶을 배려하겠다고 국민에게 말씀드려 왔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 발언 뒤 정치복지란 말이 대통령실 비서진을 통해서 최근 다시 언급됐다. 

안상훈 사회수석은 15일 복지정책 방향 브리핑에서 "10여 년 동안 전개된 우리나라의 복지 확대를 보면 약자에 대한 집중 지원보다는 득표에 유리한 포퓰리즘적 복지사업이 더 눈에 띄는 형국"이라며 "약자 챙기기에 앞서서 득표가 우선시되는 현실이 우리가 경계해야 할 정치복지의 민낯"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모든 현안에 직접 발언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만큼 대변인이나 담당 수석을 통해 공식적으로 하는 말도 대통령의 말과 다름없다. 이러한 점에 비춰 볼 때 윤 대통령은 민주당의 복지 정책 방향을 정치복지라 규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보편적 복지와 선택적 복지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를 수 있다. 보수정당의 대통령으로서 선택적 복지를 강조하며 민주당이 추구하는 보편적 복지 노선을 비판할 수도 있다.

하지만 포퓰리즘이라는 이름을 덧대 '정치' 복지라 지칭한 데에선 정치를 바라보는 윤 대통령의 부정적 인식이 엿보인다.

복지는 누구나 받기를 바라지만 국가가 제공할 수 있는 한계가 있는 만큼 이를 배분하는 것은 정치행위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복지 앞에 수식어로 정치가 한 번 더 붙으면서 맥락상 부정적 함의를 띄게 됐다. 

이러한 현상은 방역정책을 표현할 때에도 나타났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대선 후보 시절 "정치방역이 아닌 과학방역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문재인 정권의 방역 정책을 비판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뒤 진행된 대정부질문에서 한덕수 국무총리는 정치방역과 과학방역의 차이점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오히려 윤석열 정부의 방역정책이 문재인 정부에서 시행하던 정책의 연장선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를 고려하면 문재인 정부에 부정적 프레임을 씌우기 위해 정치방역이란 말을 선택한 것으로 여겨진다.

정치를 향한 윤 대통령의 부정적 인식을 엿볼 수 있는 다른 사례도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선대위 출범식에서 이재명 후보에 대해 "제가 이런 사람하고 국민 여러분 보는 데서 토론해야겠습니까"라며 "어이가 없고 정말 같잖다"고 말하기도 했다.

선거에서 상대 후보를 공격하는 일은 흔하지만 '같잖다'는 말에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뿐만 아니라 정치인 전체를 바라보는 윤 대통령의 시각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정치를 향한 불신의 의식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아마 특수부 검사로서 오랜 시간 정치인들을 수사하면서 정치인과 정치에 대해 부정적 인식이 만들진 것일 터이다.

이러한 인식은 정치행위의 핵심인 인사에서도 드러난다. 

대통령실 요직을 검찰 출신 인사들이 차지하고 있고 한덕수 국무총리나 김대기 비서실장을 비롯해 주요 인선에 정치인 출신이 잘 눈에 띄지 않는다.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현직 의원이라고는 하지만 관료로서 정체성이 더 짙다. 김은혜 홍보수석 역시 경치경력보다는 언론인 경력이 더 많다.

대통령실 비서실 인적 쇄신 과정에서도 권성동 의원이나 장제원 의원의 추천을 받았던 어공(어쩌다 공무원)들이 쓸려나갔다고 한다.

'믿을 만한' 검찰과 '똑똑한' 관료들로 스크럼을 짜고 검찰총장 시절처럼 일사분란하게 '정치'가 아닌 '통치'를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

하지만 검사 윤석열과 정치인이 된 대통령 윤석열은 달라야 한다. 윤 대통령은 자신이 이제 정치인이라는 자각과 함께 '정치'를 해야 한다. 

16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직무수행 긍정평가는 33%로 집계됐다. 임기 초반 대통령 지지율이라 보기에는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이를 다르게 말하면 '검사' 윤석열을 지지하는 국민은 전체의 3분의 1밖에 안된다고 볼 수 있다.

정치의 중요성을 올바로 인식하고 분명하고 합당하게 정치행위를 하는 대통령 윤석열로서 거듭난다면 지지율은 자연스레 오르지 않을까. 김남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