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산건설이 법원에 회생폐지 절차를 신청했다. 사실상 파산 절차를 밟게 된다. 한때 건설업계 10위를 넘볼 정도였던 50년 역사의 벽산건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김희철 벽산건설 회장은 사재를 털어넣고, 사원 명의의 허위광고까지 하다 재판을 받는 등 회사를 살리기 위해 온갖 일을 다했지만 결국 역부족이었다.

  김희철, 벽산건설 50년 역사 끝내다  
▲ 김희철 벽산건설 회장
벽산건설은 지난 14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회생폐지절차를 신청했다.서울중앙지방법원은 오는 28일까지 벽산건설의 회생 절차 폐지에 대해 관리위원회, 채권자협의회 및 이해 관계인에게 의견을 듣고 파산 여부를 결정한다. 회생절차 종료가 결정되면 15일 뒤 파산선고가 내려진다.

벽산건설의 파산의 원인은 건설경기 침체다. 건설경기는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얼어붙었다. 동아건설, 신창건설 등 중견 건설회사들이 법정관리와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벽산건설도 다르지 않았다.

김 회장은 벽산건설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품고 있다. 김 회장의 아버지인 김인득 창업주가 슬레트사업부터 키워온 회사이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IMF로 경영난에 허덕이던 당시 18개의 계열사 중 13개를 내칠 때도 벽산건설만큼은 안고 있었다.

김 회장은 벽산건설을 살리기 위해 온갖 일을 다했다.

벽산건설은 2008년 부동산 경기침체로 아파트 미분양이 다수 발생했다. 당장 공사대금을 줄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김 회장은 직원 156명에게 허위 분양계약서를 작성하도록 해 금융회사로부터 700억 원을 대출받았다. 부도를 막기 위한 김 회장의 고육지책이었다. 그는 이 사건으로 법원에서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다.

2010년 벽산건설은 또다시 유동성 위기에 내몰리면서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당시 사업장에서 자금 회수가 되지 않으면서 돈줄이 꽁꽁 얼었다.

김 회장은 채권단과 특별약정을 체결하는 등 유동성 확보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 결과 채권단에게 1천억 원을 수혈받기도 했다. 김 회장은 2011년 회사 부채를 줄이기 위해 사재 290억 원을 회사에 내놓으면서 회생을 위한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벽산건설은 경기침체가 맞물리면서 매출액이 해마다 급락하는 등 날개없이 추락했다. 매출액은 2010년 1조3479억 원에서 2012년 6675억 원, 2013년 4200억 원으로 계속 떨어졌다. 영업이익도 2010년 이후 적자가 이어졌다.

벽산건설은 결국 2012년 11월 기업 회생계획을 인가받는다. 워크아웃을 벗어나지 못하던 벽산건설은 1천억 원 규모의 대출 만기를 막기 위한 자금을 확보하지 못했다. 영업손실 1309억 원, 순손실 2893억 원을 기록하며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벽산건설은 그 와중에 잇따라 악재를 맞았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주력사업인 아파트 프로젝트파이낸싱이 부실해지면서 2012년 3월 증권선물위원회로부터 회계처리 위반 사실이 적발돼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에 올랐다.

김 회장은 마지막 방법으로 벽산건설의 매각을 추진했다. 하지만 부동산경기 침체에서 벽산건설 같은 중견 건설업체는 매력이 없었다. 시장에서 벽산건설 같은 매물은 넘쳐났다. 김 회장의 M&A 시도도 번번이 실패했다.

지난해 12월 결정적 실패가 있었다. 벽산건설은 중동계 투자자로 알려진 아키드 컨소시엄이 관심을 보이면서 600억 원 규모의 M&A 계약을 체결해 매각이 성공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인수자가 인수 자금을 입금하지 않으면서 결국 매각은 무산됐다.

벽산건설은 매각을 포기하지 않고 지난 13일 매각을 위해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허가해 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하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입찰자가 구비서류를 제대로 준비 못했다는 것이 불허가 결정 이유였다. 김 회장은 지쳤고 벽산건설은 지난 14일 결국 회생폐지절차를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벽산건설은 '소리없이 강한' 기업으로 평가받았다. 벽산건설은 1998년 IMF 위기 당시 구조조정 중 채권단 목표보다 50%가량 많은 244명을 정리할 만큼 개선을 위해 노력하며 2000년 흑자전환, 2002년 워크아웃 졸업이라는 결과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2008년 수주 물량이 3조 원을 돌파했고, 매출액이 1조754억 원으로 건설업계 10위를 넘볼 만큼 그 위상이 대단했다. 하지만 글로벌 경제위기와 부동산경기 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서 벽산건설은 50년 역사의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현재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 상태인 100대 건설기업은 모두 18개 회사에 이른다. 그 명단은 다음과 같다.

워크아웃(8개) : 금호산업(18위), 경남기업(21위), 고려개발(38위), 진흥기업(43위), 신동아건설(46위), 삼호(52위), 동일토건(84위), 동문건설(92위)

법정관리(10개) : 쌍용건설(16위), 벽산건설(35위), STX건설(40위), 극동건설(41위), 남광토건(42위), 동양건설산업(49위), 한일건설(56위), LIG건설(59위), 남양건설(74위), 우림건설(88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