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영은 '금융의 잡스'가 될 수 있나  
▲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 <사진=뉴시스>

현대카드는 지난해 12월 ‘MC옆길로새’라는 광고를 선보였다. ‘성공을 위해선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자신만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광고 카피다. 정태영 사장의 철학을 그대로 보여주는 거라는 평가를 받는다.


정 사장은 본업인 카드업보다 다른 분야에서 더 유명인사다. 정 사장은 스스로 ‘스티브 잡스의 신봉자’임을 자처하며 기존의 틀을 깨고 융합을 통해 카드의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주려고 한다.


정 사장은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인문학 전반에 걸쳐 깊을 관심을 쏟는다. 정 사장이 해외 출장을 나갈 때는 거의 반드시 현지 관광지와 미술관 투어 등의 일정을 포함시킨다고 한다.


◆ 스티브 잡스를 너무나 닮고 싶은 정태영


정 사장이 디자인을 강조하는 것은 그의 우상인 ‘스티브 잡스’의 영향이 크다고 알려졌다. 잡스 역시 역작인 아이폰을 만들면서 디자인 부분에 남다른 집착을 보였다. 정 사장은 지난해 SNS에 “갑자기 잡스가 그리워진다. 읽다 만 전기를 영화 개봉 전에 끝내야겠다”며 잡스를 돌아봤다.


정 사장이 처음 취임했던 2003년은 현대카드를 비롯해 국내 카드업계가 어려움을 겪던 시기였다. 정 사장은 위기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현대카드M을 내놨고 이는 성공적으로 현대카드의 실적개선을 이끌었다. 현대카드M의 성공에는 업계 최고 수준의 파격적 혜택을 주는 마케팅이 가장 큰 몫을 했다는 데 이견이 없다.


그와 함께 주목을 받았던 것이 바로 카드의 디자인이었다. 정 사장에게 디자인이란 현대카드만의 가치를 빛내줄 강력한 수단이었다. 후발주자인 현대카드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선 남들이 관심을 쏟지 않는 부분에서 혁신을 통해 차별화를 이뤄야만 했던 것이다. 이는 스티브 잡스가 스마트폰을 개발하면서 계산기 앱에 정성을 기울였다거나 남들이 보지 않은 기판에 온 힘을 쏟은 것과 일치한다.


정 사장은 현대카드만의 디자인을 만드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정 사장은 국내 최초의 기업전용 서체인 ‘You&I 서체’를 개발해 모든 영업점과 제품에 적용했다. 천편일률적인 카드 디자인을 버리고 ‘투명한 현대카드’와 카드 옆면에 색을 넣는 ‘컬러 코어 카드’ 등을 잇달아 출시했다. 기존 신용카드의 절반 크기인 ‘미니 카드’를 선보이기도 했다. 스티브 잡스가 글자체에 큰 관심을 쏟은 것과 동일하다.


정 사장은 디자인 경영을 기업문화에도 적용하려고 다양한 시도를 했다. 정 사장은 ‘현대카드 디자인랩’이란 디자인팀을 둬 현대카드의 모든 디자인을 직접 진두지휘하고 있다. 정 사장은 직원들이 사용하는 개인 사무용품도 현대카드가 직접 디자인하여 이를 회사 내에 설치된 자동판매기를 통해 판매한다.


지난해 5월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에는 그동안 정 사장이 이끌어온 현대카드의 모든 디자인 혁신의 역사가 전시됐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그동안 현대카드는 기업이념을 실체화 하는 수단으로 디자인임을 믿고 끊임없이 고민하며 다양한 도전을 해왔다”고 말했다. 디자인 라이브러리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디자인 시상식인 ‘2013 DFAA'에서 종합대상을 수상했다.


◆ 다른 곳에 인색했던 스티브 잡스, 관심이 넓은 정태영


정 사장은 카드업에서 디자인과 융합을 통해 성과를 낸 뒤 융합의 범위를 점차 넓혀가고 있다. 최근 디자인 마케팅은 카드를 넘어 지역사회에 대한 재능기부와 문화와 융합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태영은 '금융의 잡스'가 될 수 있나  
▲ 정태영 사장은 카드업과 이종간의 융합을 활발히 진행해 왔다. 사진은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서울역 아트쉘터, 슈퍼콘서트, 오이스터 프로젝트, 마이택시 <사진=현대카드 제공>

현대카드는 2009년 8월 디자인 재능기부 차원에서 서울역에 ‘아트쉘터(버스승차대)’를 설치했다. 서울역 아트쉘터는 IT기술과 예술이 융합된 공공 미디어 아트로 서울역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로 자리잡았다. 아트쉘터는 2010년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미국의 국제우수디자인상(IDEA)에서 금상을 받았고 독일 레드닷(Red dot)과 국제포럼디자인상(iF)에서도 수상했다.


지난해 11월에는 국립현대미술관과 제휴했다. 현대카드는 직접 디자인한 무인발권기를 기증해 방문객들의 편의를 도모했다. 현대카드는 지난해 12월 18일부터 제주도와 함께 ‘가파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현대카드는 가파도를 자연과 예술이 공존하는 ‘영감의 섬’으로 탈바꿈하겠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현대카드의 ‘컬쳐프로젝트’는 다양한 문화 영역에서 실험성과 독창성을 보여주는 컬쳐아이콘을 소개하는 문화마케팅 브랜드다. 컬쳐프로젝트는 2011년 4월 R&B 음악가인 존 레전드를 시작으로 지난 16일 막을 내린 스페인 출신의 세계적인 디자이너인 하비에르 마리스칼의 전시회까지 13회째 진행되고 있다.


2007년부터 시작한 ‘슈퍼콘서트’는 세계적인 음악가인 비욘세와 빌리조엘, 스티비 원더 등을 초대해 벌이는 초대형 공연 이벤트로 자리잡고 있다. 2012년 진행된 레이디 가가 공연은 4만5,000석 매진을 기록했으며 지난해 8월 메탈리카와 뮤즈 등 국내외 37개 음악가들이 참여했던 ‘시티브레이크’는 7만5,000명 관객을 끌어 모았다.


다른 업종간 협업인 ‘콜라보레이션’도 확대되고 있다. 현대카드는 2011년 9월 중소 생수업체인 ‘로진’과의 협업으로 ‘잇 워터(it water)’라는 생수 제품을 출시했다. 현대카드는 유통활로를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던 로진에 디자인과 브랜드 네이밍을 무상 기부했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생수를 마시면서 현대카드라는 브랜드를 미각으로 체험하도록 하는 것이 이번 협업의 목적이다”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2월에는 이마트와 함께 ‘오이스터(OYSTER)’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주방용품에 현대카드의 디자인 감성을 넣었다. 현대카드는 “늘 사용되지만 그동안 주목받지 못한 생활필수품을 기호품으로 디자인하는 작업에서 오이스터 브랜드가 탄생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 전국 60여 곳의 이마트에서 1차 출시된 오이스터 제품들은 인기를 얻어 지난해 4월 2차 제품이 출시됐다.


현대카드는 지난해 5월 기아자동차와의 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현대카드는 기아차의 경차 ‘레이’를 기반으로 ‘마이택시’라는 컨셉트카를 탄생시켰다. 마이택시는 지난 2일 ‘iF 디자인 어워즈 2014’에서 전 세계 금융회사 중 최초로 커뮤니케이션 부문 금상을 수상했다. iF 주최 측은 “금융회사가 금상을 수상한 사례는 대단히 이례적이다”라며 “금융회사가 이종 영역과의 협업으로 산업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를 높게 평가했다”라고 말했다.


이런 정 사장의 활동 반경에 대해 평가는 엇갈린다. 디자인 경영을 나누려는 참신한 시도라고 평가하기도 하지만 스티브 잡스처럼 선택과 집중을 통해 완벽한 혁신을 이루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정 사장은 스티브 잡스를 너무나 닮고 싶지만 잡스와는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