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의 성향 차이가 문재인 정부에서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노동계와 관계가 원만하지 않았던 박근혜 정부에서 두 노조는 모두 정부에 각을 세웠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노정관계를 복원하려는 움직임에 한국노총은 긍정적으로 화답하고 있는 반면 민주노총은 여전히 거리를 두고 있다.
이런 차이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두 조직의 탄생 배경과 밟아온 길을 살펴보면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9일 노동계 등에 따르면 한국노총은 그 뿌리가 해방 직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서 깊은 단체다. 1946년에 결성된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을 모체로 한다.
한국노총은 탄생 시점에서 온건성향으로 출범했다. 해방 직후 노동운동이 좌편향되는 것을 우려한 김구 등 우익 인사들이 대한독립촉성협의회 산하단체로 노동총연맹을 조직했다. 노동총연맹은 1948년 대한노동총연맹으로 바뀌었다.
이승만 정권에서 대한노동총연맹은 사실상 관변단체 역할을 했다. 1960년 4.19혁명 이후 어용파 간부들이 물러나고 한국노동조합총연맹으로 거듭났으나 1961년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의해 해체됐다가 산별노조체제로 재결성됐다.
군부독재 시절 한국노총은 사실상 제대로 된 노동운동을 하지 못했다. 이는 나중에 민주노총이 출범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한국노총이 정권과 가까운 관계였던 것은 최용수 위원장이 민주공화당 소속 전국구 의원으로 8~9대 국회의원을 지낸 데서도 드러난다. 그 뒤 이찬혁 위원장, 김동인 위원장, 박인상 위원장 등이 집권당 의원으로 활동했다.
이런 기조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어 한국노총 출신 의원들은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등 교섭단체에 포진해 있다.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 김성식 국민의당 의원이 대표적이다.
노동자 대파업과 민주화 이후에 한국노총은 어용노조 성향을 벗어났다. 하지만 여전히 실용적이고 타협적 성향을 지니고 있어 민주노총과 대비되는 부분이 많다. 2007년 17대 대선 때는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를 지지하는 일도 있었다.
노사정위원회만 해도 민주노총은 설립 1년 만에 불참을 선언했지만 한국노총은 박근혜 정부가 노동시장 구조개편을 추진한 2015년까지 꾸준히 참여하며 정부의 노동정책 파트너 역할을 충실히 담당했다.
규모로만 보면 한국노총은 민주노총보다 더 크다. 2016년 기준 단위노조 3339개, 95만5천 명 수준이다. 산하 25개 산별연맹 가운데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금속노련), 전국금융산업노조, 전국공공산업노동조합연맹 등이 한국노총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민주노총은 애초부터 한국노총이 제 역할을 못한다고 비판하고 설립된 단체다. 그런 만큼 한국노총보다 강경한 성향을 띄고 있고 민주노총에서 한국노총을 일종의 어용노조로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시각도 여전히 없지 않다.
민주노총의 태동은 1987년 7~8월 노동자 대파업이 계기가 됐다. 당시 노동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이전까지 1987년 2675개였던 노조는 1989년 7883개까지 늘어났고 노조조직률도 12.3%에서 18.7%로 증가했다. 이런 움직임은 강경노선의 민주노총의 발판이 됐다.
1990년 14개 지역협의체와 2개 업종별 조직, 600여 개 노동조합을 거느린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이 결성됐다. 이들은 1994년 권영길 등을 공동대표로 민주노총준비위원회를 결성했고 이듬해 866개 노조, 41만 명 조합원의 규모로 민주노총이 창립됐다.
민주노총은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9년 11월 합법적 지위를 획득했다.
민주노총은 진보정당 창당과 연대 등으로 정치 참여를 적극 시도하고 있다. 기성 정당의 비례대표로 참여하는 한국노총과 다른 부분이다. 국민승리21, 민주노동당을 창당하고 통합진보당 설립에도 깊이 관여했다.
금속노조와 전교조, 공공운수노조, 공무원노조가 민주노총 내 주류 조직이다. 특히 금속노조는 조합원 수만 16만 명으로 산별 최대노조이자 민주노총 산하 최대 조직이다.
계파로는 민족해방(NL)계열의 국민파가 주도권을 쥐고 있으며 민중민주주의(PD)계열의 중앙파가 양강을 이룬다. 강성성향의 현장파 역시 직선제 선거에서 한상균 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