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은 ‘품질 전문가’ 권문식 사장을 내친 뒤 3개월 만에 왜 다시 불러들였을까? 품질 때문이다. 정 회장은 현대기아차의 ‘품질’에 잇따라 브레이크가 걸리자 ‘품질경영’을 구현할 전문가는 권 사장 밖에 없다고 본 것이다.

  품질위기 다급해진 정몽구, 권문식 다시 불러  
▲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최근 현대차는 품질에서 잇따라 빨간 경고등이 들어오고 있다. 27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미국 컨슈머리포트의 자동차브랜드 평가에서 23개 브랜드 가운데 16위에 머물렀다. 2012년 11위, 지난해 14위를 기록해 2년 연속 순위가 곤두박질쳤다. 기아차도 15위를 기록하면서 지난해보다 4단계나 추락했다.


이달 실시한 미국 시장조사업체 J.D파워의 내구품질조사(VDS)에서도 31개 업체 중 27위로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2012년 10위, 지난해 22위보다 내려갔다. 정 회장으로서는 이런 품질 성적표를 놓고 걱정이 클 수밖에 없다. 현대차는 3월 신형 LF소나타 출시를 코앞에 두고 있다. 또 제네시스 수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반면 도요타는 8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주행테스트에서 현대차와 큰 차이가 없었지만 신뢰도 등급과 추천비율에서 압도적 점수를 받았다. 특히 도요타 미니밴은 미국에서 가장 '가족적인 차'로 사랑받고 있다. 대표적 하이브리드차 프리우스는 캘리포니아주 신차딜러연합회(CNCDA)가 꼽은 '베스트셀링카'로 선정됐다.


품질의 도요타는 글로벌시장에서 무섭게 진격하고 있다. 도요타는 지난해 글로벌 판매대수 974만 대로 GM과 폴크스바겐을 제치고 글로벌 1위를 기록했다. 도요타는 올해 글로벌 판매 목표를 1032만 대로 정했다. 글로벌 판매 1000만 대 돌파는 자동차 역사에서 전무한 숫자다.


반면 현대차는 갈수록 부진이 심화하고 있다. 지난해 현대차와 기아차의 미국시장 점유율은 4.6%, 3.4%로 전년 대비 각각 0.3%포인트와 0.4% 포인트 하락했다. 연간 30만 대 이상 팔리던 주력모델 YF쏘나타는 지난해 20만 대 밑으로 판매량이 떨어졌다. 지난해 판매량이 떨어진 것은 신차 출시가 적었던 반면 일본 경쟁회사들이 엔저 효과를 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어백 결함 등으로 현대차 내부 품질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가 무너진 점이 더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미국 고속도로안전관리국(NHTSA)은 지난달 9일 에어백 결함과 관련해 현대차 엘란트라(국내명 아반떼) 5만2000 대에 대해 리콜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NHTSA는 “사이드 에어백이 작동하면서 운전자가 귀를 베인 사례가 보고됐다”고 밝혔다.

품질에 비상등이 켜지자 정의선 부회장이 미국 현장을 직접 챙기고 있다. 지난 18일부터 이틀간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 위치한 현대차 북미공장과 조지아주의 기아차 공장을 점검했다. 최근 미국의 현대차 판매담당 사장과 기아차 판매 담당 부사장을 전격 경질하는 등 일부 구조조정도 단행했다.

정 부회장은 현지 공장을 방문하면서 "시장에서 먼저 기선을 잡아야 한다"며 "품질관리에 전력을 다 하는 등 준비를 꼼꼼히 하라"고 주문했다.

  품질위기 다급해진 정몽구, 권문식 다시 불러  
▲ 권문식 현대기아자동차 연구개발본부 사장
권문식 사장이 이례적으로 3개월 만에 원대복귀한 것도 이런 현대기아차의 사정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권 사장은 지난 24일 현대기아차 연구개발본부장으로 돌아왔다. 권 사장이 지난해 11월 미국 시장에서 대규모 리콜사태를 책임지고 나간 지 겨우 3개월만이다. 권 사장은 현대차 내부에서 품질분야 최고 전문가다. 그만큼 이번 복귀는 품질에 대해 위기를 느낀 정 회장의 절박함이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연구개발본부장은 자동차에 관한 모든 연구개발(R&D)와 품질을 함께 총괄하는 자리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자동차 품질과 관련해서는 권 사장만한 인물이 없다는 것이 조직 내부에서의 평가”라며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만큼 그의 책임감도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권 사장의 두 어깨에 올해 현대차의 품질향상에 따른 브랜드 이미지 회복이라는 짐을 다시 얹었다.

권 사장은 1996년 처음 현대자동차와 인연을 맺고 현대차 기술기획팀 이사와 연구개발본부 기획조정실장을 역임했다. 2008년 현대제철 사장과 2010년 현대케피코 사장을 맡아 현대그룹의 품질관리에 일조해왔다.


2012년 연구개발본부장 취임 이후 평소에도 직원들에게 품질관리를 엄격하게 지시한 것으로 유명하다. 권 사장은 지난해 ‘2013 제네바모터쇼’에서 i40절개차를 구석구석 살피다 “벌써 페인트칠이 벗겨지고 녹이 슬었다”며 담당직원을 질책하기도 했다.

또 2012년 미국 연비과장 논란에 휩싸였을 때 연구소 센터장들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아침 6시에 대기하라"고 불호령을 내리기도 했다. 통근과 회의 준비를 감안하면 새벽 4시 정도엔 눈을 떠야 하는 강행군을 요구한 것이다. 연구소 직원들에게 외부와 접촉을 삼가라는 지시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