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전기차시장이 크게 위축된 가운데 BMW, 폭스바겐, 스텔란티스 등 일부 수입차업체들은 전기차 판매로 국내에서 브랜드 입지를 강화하며 시장 판도를 바꿔나가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세계적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에 최근 전기차 화재 사고가 잇따라 주목을 받으면서 국내 전기차시장이 얼어붙은 가운데 일부 수입차업체들은 오히려 전기차를 중심으로 국내 판매 전략 강화에 나서고 있다.
최근 수입차 브랜드 사이 일고 있는 전기차시장 입지 변화가 수입차업계에 어떤 파장을 일으킬 지 관심이 쏠린다.
9일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 통계를 종합하면 올해 1~9월 BMW는 국내에서 5만4472대를 팔아 메르세데스-벤츠(4만8048대)에 6424대 앞선 수입차 판매량 1위를 달리고 있다.
BMW는 지난해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8년 만에 메르세데스-벤츠를 제치고 연간 판매 1위에 올랐다.
당시 판매량 격차는 698대에 불과했다. 올해 들어 판매량 차이를 더욱 늘리며 선두 굳히기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올해 들어 BMW는 전기차 판매에서 메르세데스-벤츠와 비교해 확실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올해 1~9월 수입 전기차 판매 순위를 보면 전기차 전문업체인 미국 테슬라가 2만3617대로 압도적 1위를 차지한 가운데 BMW가 4979대로 2위, 메르세데스-벤츠가 3271대로 3위를 기록했다.
BMW는 올해 전체 판매량의 10%가 채 되지 않는 전기차 부문에서 메르세데스-벤츠와 1708대의 판매량 격차를 벌렸다.
국내 자동차 시장조사업체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전기차 판매량은 전년 동월보다 13.3% 줄어들며 세계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위축세를 나타내고 있다.
더욱이 지난 8월 인천 지하주차장에서 벤츠 전기차 EQE에 불이 붙어 발생한 화재 사고가 대규모 피해로 이어지면서 전기차 수요가 더욱 줄어들 조짐도 관측된다.
이런 영향을 받아 올해 BMW는 국내 전기차 신차 출시 일정에 차질을 빚고 있다.
BMW코리아는 당초 연내 중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iX2와 중형 전기 세단 BMW i4 부분변경 모델(페이스리프트)을 국내에 출시할 계획을 세웠으나 최근 출시 시점이 내년 상반기로 미뤄진 것으로 파악된다.
BMW코리아 관계자는 "시장 상황에 따라 마케팅 효과 등을 고려해 iX2와 i4 출시 시기를 조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다만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가 자사 전기차 화재 사고로 배터리 등 신뢰성에 타격을 받으면서, 지난 15년 동안 국내 수입차 양강구도를 구축해 온 BMW와 벤츠 사이 판매경쟁 향방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달 BMW는 수입 전기차 판매 톱10에 i4 e드라이브40, iX3, i5 e드라이브40, iX1 x드라이브30 등 4개 차종이 이름을 올린 반면, 벤츠 전기차는 단 한 차종도 10위 안에 들지 못했다.
올해 1~9월 국내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3271대로 전년 동기와 비교해 절반(47.6%) 가까이 꺾였다.
같은 기간 BMW가 판매 감소를 한자릿수(9.3%) 수준으로 방어한 것과 대조적이다.
8월 전기차 화재 사고로 국내 전기차 판매업체들이 일제히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하면서 벤츠의 준대형급 이상 상위모델들은 파라시스, CATL 등 모두 중국산 배터리를 탑재한 반면, BMW 전기차는 대부분 국내업체인 삼성SDI 배터리를 쓰는 것으로 나타난 점도 BMW 전기차 판매에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올해 들어 전기차 판매에서 오히려 두각을 나타내는 수입차업체들도 있다.
올해 1~9월 수입차 누적 판매량 9위 독일 폭스바겐과 7위 아우디는 신차 부재로 인해 판매량이 전년 동기보다 각각 15.1%, 53.7% 뒷걸음쳤다.
하지만 두 브랜드 모두 국내 전기차 판매 시장에선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다.
올해 들어 9월까지 아우디의 전기차 판매량은 2810대로 전년 동기(618대)보다 4.5배 넘게 늘었다. 테슬라, BMW, 메르세데스-벤츠에 이은 수입 전기차 4위에 해당하는 판매실적이다.
아우디 국내 전기차 판매량의 90%가량을 책임지고 있는 준중형 전기 SUV Q4 e-트론은 국고와 지방자치단체 보조금을 적용받으면 프리미엄 브랜드 전기차로서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5천만 원대(서울 기준)에 구매할 수 있다.
폭스바겐이 국내에서 판매하는 전기차는 준중형 전기 SUV ID.4 단 1차종 뿐인데 올해 1~9월 국내에서 2119대가 팔려 전년보다 판매량이 약 3.5배나 늘었다. 판매 순위는 아우디에 이은 5위다.
ID.4는 지난 5월 소프트웨어 오류 등으로 지난 5월 말 출고가 중단됐는데, 7월 판매를 재개하며 약 1300만 원 규모의 구매 할인 혜택을 제공하며 승부수를 던졌다.
ID.4는 지난달에도 국내에서 267대가 팔려 수입 전기차 판매 4위에 이름을 올리며 폭스바겐코리아 전체 월간 판매량의 26.8%를 책임졌다.
반면 같은 기간 수입차 누적 판매 4위 스웨덴 볼보는 전기차를 출고하는데 어려움을 겪으며 같은 기간 전기차 판매량이 191대로 1년 전보다 66.3%나 꺾였다.
볼보코리아는 작년 11월 국내 사전예약을 시작한 소형 전기 SUV EX30을 올 7월부터 본격 출고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최신화 작업 등에 시간이 걸리면서 고객 인도 시점이 올 8월, 10월로 미뤄지다 결국 해를 넘기게 됐다.
스텔란티스코리아 산하 지프는 지난달 브랜드 첫 전기차인 소형 전기 SUV '어벤저'를 출시하며 판매 확대에 나섰다.
올해 1~9월 지프 국내 판매량은 2034대로 전년 동기보다 40.2% 급감했다.
지프는 유럽과 중동 일부 국가를 제외하곤 한국에 어벤저를 아시아 최초로 출시했다.
방실 스텔란티스코리아 대표이사 사장은 "어벤저는 전동화 시대를 맞이하는 지프의 방향성이자, 지프가 가진 자유와 모험 정신을 시대의 흐름에 맞게 재해석한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