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컬리가 무료배송 기준을 대폭 완화하는 카드를 꺼냈다.

무료배송 기준을 낮추는 것은 양날의 칼과 같다. 주문량을 대폭 늘릴 기회이기도 하지만 자칫하면 배송비 부담 탓에 수익성이 악화할 수도 있다.
 
컬리 '무료배송 기준 완화' 카드 다시 꺼내, 김슬아 흑자 자신감 제대로 붙었다

▲ 컬리가 약 1년 만에 '무료배송 기준 완화' 카드를 다시 꺼냈다. 사진은 김슬아 컬리 대표이사.


그런데도 컬리가 무료배송 기준을 낮췄다는 것은 김슬아 대표이사의 자신감이 반영된 전략으로 여겨진다.

28일 유통업계에서는 컬리가 7월1일부터 무료배송 기준을 대폭 낮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두고 지난해 7월 컬리패스를 폐지한 지 약 1년 만에 무료배송 서비스를 다시 강화하는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컬리는 7월1일부터 구독형 멤버십 ‘컬리멤버스’ 고객에게 한정해 2만 원 이상만 주문해도 무료배송을 받을 수 있는 쿠폰을 매달 31장 발행한다. 사실상 매일 2만 원어치 장을 봐도 매일 무료로 상품을 받을 수 있는 셈이다.

컬리에서는 원래 4만 원 이상의 상품을 구매해야만 무료배송을 받을 수 있다.

이 기준을 절반만 충족해도 된다는 것은 고객 입장에서는 엄청난 이득이다. 무료배송 기준을 맞추기 위해 당장 필요하지 않은 상품을 억지로 사지 않아도 된다는 점 때문이다.

컬리가 무료배송 기준을 확 낮춘 것은 지난해 컬리패스를 조용히 없앤 뒤 약 1년 만이다.

컬리는 원래 ‘컬리패스’라는 구독형 멤버십을 운영한 바 있다. 이는 월 구독료 4500원을 내면 1만5천 원 이상만 구매해도 무제한 무료배송을 제공하는 서비스였다.

하지만 지난해 8월 컬리멤버스를 내놓으면서 동시에 컬리패스 서비스를 슬그머니 종료했다. 컬리멤버스 고객에게도 무료배송 쿠폰을 주긴 했지만 한 달에 1번만 준다는 점에서 일부 고객에게 볼멘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컬리가 컬리멤버스를 내놓으면서 컬리패스를 없앤 것은 수익성을 강화하겠다는 전략으로 읽히기도 했다.

무료배송은 고객 입장에서는 무조건 좋은 혜택이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실리를 따져봐야 하는 선택이기도 하다.

고객이 많아 배송할 물량을 대거 확보하고 있다면 규모의 경제 효과를 볼 수 있어 무료배송 기준을 낮추는 데 부담이 없다. 실제로 쿠팡은 유료멤버십 회원만 1400만 명가량을 확보하고 있어 신선식품을 1만5천 원 이상만 구매해도 무료배송을 해 준다.

하지만 컬리는 상황이 다르다. 지난해 낸 연 매출이 2조 원을 조금 넘는 수준인데 이것만으로는 무료배송 기준을 낮추기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컬리는 2015년 창사 이후 2023년까지 9년 연속으로 적자를 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료배송 기준을 대폭 낮추겠다고 선언한 것은 내부적으로 판단했을 때 ‘이제는 무료배송 기준을 완화해도 돈을 벌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컬리멤버스 고객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재 컬리는 컬리멤버스 고객의 가입자 수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컬리 내부적으로는 멤버십 가입자 수가 예상보다 좋은 흐름을 보인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월 구독료 1900원을 내면 즉시 적립금 2천 원을 돌려받는데다 여러 할인 쿠폰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컬리를 자주 쓰는 고객이라면 가입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점이 멤버십 흥행의 이유로 꼽힌다.

멤버십 가입자들의 충성도가 일반 고객보다 크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컬리 입장에서는 컬리멤버스의 흥행으로 얻는 것이 더 많다고 할 수 있다.

멤버십 가입자들은 대부분 일반 고객보다 훨씬 자주 소비하며 한 번에 소비하는 금액도 많은 편이다. 이들을 대상으로 무료배송 기준을 낮추면 더 자주 구매가 일어날 수 있다. 컬리 역시 이런 효과를 노렸다고 볼 수 있다.

무료배송 기준 완화가 김슬아 대표의 자신감이 묻어나는 전략이라는 해석도 있다.

김 대표는 최근 1년 반 동안 컬리의 혹독한 체질 개선 작업에 주력했다. 2023년 1월 기업공개 절차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뒤 내부적으로 이익을 낼 수 있는 체력을 만들자는 데 공감대를 형성하고 이와 관련한 전략에 온 힘을 쏟았다.
 
컬리 '무료배송 기준 완화' 카드 다시 꺼내, 김슬아 흑자 자신감 제대로 붙었다

▲ 컬리가 무료배송 기준을 완화한 데에는 흑자 전환에 따른 자신감도 반영돼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그 결과 컬리는 지난해 12월 창사 이후 9년 만에 처음으로 월간 흑자를 냈다. 상각전영업이익(EBITDA) 기준이긴 하지만 2015년 1월 회사가 설립된 뒤 첫 월간 흑자라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았다.

올해 1분기에는 첫 분기 흑자에도 성공했다. 영업이익 5억 원을 낸 것인데 이를 두고 컬리는 “근본적 손익 구조의 개선이 이뤄졌기 때문에 첫 영업이익이 가능했다”며 “지속가능한 성장 구조를 구축하기 위해 수익원 다각화와 운반비, 지급수수료 절감 등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로서는 대내외적으로 컬리의 이익 기반이 어느 정도 다져졌다는 점을 증명한 만큼 앞으로는 외형 성장에 좀 더 속도를 내야 할 필요성에 무게를 둬도 된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컬리는 수익성 강화에는 성공했지만 동시에 매출 성장률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는 지적도 동시에 받고 있다.

컬리의 지난해 연간 매출 성장률은 2%였으며 올해 1분기 성장률도 6%였다. 이는 전체 이커머스 시장 성장률과 비교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다.

충성고객을 중심으로 무료배송 기준을 낮춤으로써 거래액을 늘리고 동시에 매출 성장률도 끌어올리는 전략을 선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로 여겨진다.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