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배터리 수요 회복 3년 더 걸릴 수도", 각국 정책 후퇴에 침체 장기화 전망도

▲ 일각에선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 세계 각 국가들의 보조금으로 형성된 시장이기 때문에 보조금 정책이 후퇴하는 현재 상황을 고려하면, 수요가 본격적으로 회복하기까지 3년은 더 걸릴 것이란 시각을 내놓고 있다. 사진은 제너럴모터스(GM) 캐딜락의 전기차 '리릭'.

[비즈니스포스트]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 ‘캐즘'(일시적 수요감소)으로 치부하기엔 미국·유럽 등 주요 시장 상황이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어, 캐즘을 넘어 시장 침체가 더 길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세계 각 국가들의 보조금으로 형성된 시장이기 때문에 보조금 정책이 후퇴하는 현재 상황을 고려하면, 수요가 본격적으로 회복하기까지 3년은 더 걸릴 것이란 시각을 내놓고 있다.

25일 배터리 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전기차와 배터리 수요 반등이 예상보다 더 늦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이호근 대덕대학교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세계 각국의 대규모 보조금이 없었다면 전기차와 배터리 시장 자체가 형성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현재 상황을) 일반적 '캐즘'으로 볼 수 없다”며 “예측대로라면 반값 전기차는 작년 말에 나왔어야 했고, 올해부터는 오히려 내연기관차보다 전기차 가격이 더 저렴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전기차 대중화까지 적어도 3년은 더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일반적 캐즘은 시장에서 빠르게 제품을 소비하는 얼리어답터들이 초기 수요늘 늘리고, 기술 고도화와 대량 생산으로 대중화화기 전까지 잠깐의 수요공백이 생기는 현상을 의미한다. 하지만 전기차와 배터리 시장은 이같은 일반적 캐즘을 적용하는 게 무리라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지난 3월 제너럴모터스(GM)와 혼다의 전기차 합작 투자 철회 후 토요다 아키오 도요타 회장은 “향후 수십 년 동안 판매되는 차량의 대부분이 순수 전기차가 아닐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증권가에서도 전기차 수요 전망치를 낮추고 있다. 한병화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유럽연합(EU) 국가들의 보조금 축소와 폐지, 강력한 내연기관차 환경규제인 유로7 도입 연기, 유럽 친 전기차 정책 정당의 의석수 감소를 반영해 유럽 전기차 판매 추정치를 하향 조정한다”며 “2024~2030년 전기차 판매 추정치는 기존 대비 8~14% 감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조금은 전기차 시장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중국은 2009년부터 미래 산업 육성이란 명목 아래, 과도할 정도의 정부 지원금을 전기차 업체에 제공했다. 정부 보조금 규모만 2022년까지 30조 원에 달했다.

미국은 중국산 저가 전기차와 배터리 공세를 막기 위해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세액공제(AMPC) 혜택으로 수 조 원의 보조금을 지급했다. 소비자에게 전기차 한 대 당 1천만 원이 넘는 보조금을 지급했다.

지난 2월 중국에서 발간된 ‘정부 재정 보조금이 전기차 보급률을 높일지에 관한 준자연적 실험의 증거’ 논문에 따르면 보조금 1% 인상은 전기차 판매량 1.36% 증가, 전체 자동차 시장에서 차지하는 전기차 시장점유율 2.31% 증가로 이어졌다.

한국의 산업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미 IRA 보조금 혜택으로 한국 배터리의 미국 판매량은 최대 26%까지 증가했다고 진단했다.

정부 보조금 등 정책지원이 줄어들면 전기차 값이 내려가도 소비자가 체감하기 어렵고, 이것이 현재 전기차와 배터리 시장 침체로 이어지고 있다는 해석인 것이다.

실제 미국과 유럽 등 세계 주요국들이 최근 전기차 지원 축소에 나서자 수요가 요동치고 있다.

최근 유럽은 의회 선거 결과, ‘친환경’을 표방했던 녹색당 등이 크게 후퇴했다. 미국 정부는 지난 5월 전기차 전환을 가속화하기 위해 추진했던 내연기관차 연비 강화를 중단하고, 규정을 완화했다.

독일은 올해 초 전기차 보조금 지급을 전면 중단했다. 당초 2024년 말까지 보조금을 지급할 예정이었으나, 예산 문제로 시기를 1년 앞당겼다. 프랑스는 자국을 제외한 국가에서 생산한 전기차에 대해선 보조금 지급분을 줄이기로 했다.

최근 발표된 5월 유럽 전체 순수 전기차 판매량은 지난해와 같은 달에 비해 10.8% 감소했다. 전체 자동차 판매량 중 순수 전기차 판매비중은 13.9%로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1.3%포인트 하락했다.

미국의 올해 1분기 전기차 판매량은 26만9천 대로 전년 동기보다 2.6% 늘었지만, 작년 4분기보다는 7.3% 감소했다. 김호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