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일(현지시각) 바스 에이크호우트 유럽 녹색당 공동대표 후보가 벨기에 브뤼셀 총선 현장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유럽의회 선거에서 녹색당이 참패했다. 녹색당이 잃은 의석들을 강경 우파들이 차지하면서 유럽의회 정치 지형에 큰 변화가 예고됐다.
이에 따라 유럽연합(EU)이 향후 기후정책을 추진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10일(현지시각) 유럽의회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온 총선 공식집계를 보면 유럽국민당(EPP)이 직전 2019년 선거 때보다 9석 더 많은 186석을 얻어 1당 자리를 지켰다.
2당인 사회민주진보동맹(S&D)은 135석을 획득해 전보다 4석 감소했으나 2당 지위를 유지했다.
이번 총선에서 가장 큰 변화는 4당이었던 녹색당이 6위로 밀려난 것이다. 2019년 71석을 얻었던 녹색당은 이번 총선에서 18석을 잃어 53석으로 떨어졌다.
녹색당이 가장 크게 의석을 잃은 지역은 독일과 프랑스로 각각 9석, 7석을 상실했다.
블룸버그와 더 인디펜던트 등 주요 외신들은 유럽 내 정치환경 변화가 녹색당 의석 상실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바라봤다.
바스 에이크호우트 녹색당 공동대표 후보는 프랑스 언론 르몽드와 인터뷰에서 “2019년 총선 중심에는 기후 문제가 있었다”며 “하지만 2024년 총선에서는 기후정책을 반대하는 선거 캠페인도 자주 눈에 띄었다”고 말했다.
녹색당과 정책적으로 긴밀하게 협력하는 3당인 리뉴유럽당(RE)도 102석에서 79석으로 보유 의석이 크게 줄었다.
반면 강경우파인 '정체성과 민주주의당'(ID)과 보수개혁당(ECR)은 약진했다. 이들 두 정당 보유 의석수를 합치면 131석으로 2당인 사회민주동맹과 비슷하다.
이에 전문가들은 유럽연합이 향후 ‘그린딜’로 대표되는 기후정책 추진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바라봤다. 그린딜은 2019년 우르슬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집행위원장이 제안한 정책으로 온실가스 감축, 산업 탈탄소화 지원, 생물다양성 복원 등 광범위한 기후 대책을 아우른다.
강경우파 진영은 농어업 종사자 생활권 보장, 기업 이권 보호 등을 내세우며 그린딜 축소를 주장하고 있다.
▲ 10일(현지시각) 발표된 총선 결과가 반영된 유럽 의회 정당별 의석수. 짙은 붉은색은 좌익당(Left), 옅은 붉은색은 사회민주진보연맹(S&D), 녹색은 녹색당(Green), 하늘색은 리뉴유럽당(RE), 짙은 파란색은 유럽국민당(EPP), 파란색은 보수개혁당(ECR), 옅은 파란색은 정체성과 민주주의당(ID), 회색은 무소속, 옅은 회색은 당을 정하지 않은 신임 후보들이다. <유럽 의회> |
컨설팅업체 플레시먼힐러드의 막시모 미치닐리 기후에너지 분야 대표는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그린딜은 여전히 살아 있지만 이전처럼 활발하게 추진되지 못할 것”이라며 “유럽연합은 앞으로 10년 동안은 이미 도입된 제도를 추진할 수는 있겠지만 새로운 기후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의회 내부의 다툼에 가로막혀 어려움을 겪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유럽 의회는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 상향, 난방·연료유 전용 탄소 배출권 시장 출범 등을 지난해부터 추진하고 있는데 이번 회기 내로 마무리되지 못해 다음 의회에서 표결에 부쳐진다.
크시슈토프 볼레스트라 폴란드 기후변화 장관은 로이터를 통해 “모든 신규 정책들이 통과될 확률이 높지만 그 과정에서 매우 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기후정책 추진 과정에서 예산 문제도 불거질 것으로 예상된다.
총 7억5천만 유로(약 1조1118억 원) 규모 ‘유럽 회복 계획(European Recovery Plan)’이 2027년 만료되기 때문이다. 전체 계획된 기금에서 기후 대응에 들어가는 금액 비중은 30%가 넘는다.
2028년부터는 새로운 예산 확보계획이 필요한데 분담 비중을 놓고 회원국 간 의견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어 절대 금액 규모 자체가 축소될 확률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유럽의회 선거 결과로 유럽 의회 내부 갈등도 커져 예산 확보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됐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유럽연합이 기후정책을 전면 폐기하는 사태까지는 가지 않을 것으로 분석했다.
피터 비스 전 유럽집행위원회 선임 기후정책 간부는 블룸버그를 통해 “현재 여러 정당별로 나뉘어 있는 의석들을 볼 때 기후정책 폐기 안건에 압도적 과반 표결을 행사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우려되는 점은 기후 위기에 놓인 현실에도 유럽이 제때 통일된 목소리를 내기 어려워질 것 같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오렐리앙 소세 영국 그랜텀연구소 보조교수도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이번 총선 결과에도 불구하고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시민들이 기후 문제에 관한 관심이 떨어진 것은 아니다”며 “기후정책 축소는 곧 시민들의 반발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