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정부가 전력산업기반기금(전력기금) 부담금의 요율을 낮췄다. 전기요금 인상에 따른 물가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풀이된다.

한국전력공사로서는 요금 인상 기대가 커져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인프라 투자에 사용할 기금 수입이 줄어 결과적으로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력기금 부담금 내려 전기료 인상 길 트여, 기금 쓸 곳 많은 한전 부담 여전

▲ 올해 7월부터 전기요금에 함께 부과돼 온 전력산업기반기금 부담금 요율이 3.7%에서 3.2%로 하향돼 한전이 전기요금 인상의 기대를 품게 됐다. 


31일 전기사업법 시행령 일부 개정령안을 보면 전력기금 부담금의 요율은 올해 7월부터 내년까지 단계적으로 1%포인트 인하된다.

전력기금은 전력산업의 발전 및 기반조성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한 기금으로 전기요금과 함께 부과된다. 현재 부담금 요율은 기본요금과 전력량요금의 3.7%다.

시행령 개정에 따라 올해 7월부터는 전력기금 부담금의 요율은 3.2%로, 내년 7월에는 2.7%로 조정된다.

정부는 3월에 전력기금 외 12개 부담금을 전면 정비한다는 방안을 내놓은 바 있다. 제2의 세금으로 여겨지며 국민에 부담을 주는 부담금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부담금 경감 관련 안건을 처리한 28일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통해 “국민과 기업에 과도한 부담을 주거나 그 타당성이 약화된 32개 부담금을 폐지‧감면해 국민과 기업의 부담이 연간 약 2조 원 수준 경감될 것”이라며 “특히 전기요금, 항공요금, 영화관람료 등 국민의 실생활과 직결되는 부담금들이 대폭 정비된다”고 말했다.

다만 전력기금 부담금 요율의 인하 결정은 전기요금 인상과 맞물린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한전의 재정난 해결을 위해 전기요금 인상이 절실하지만 정부로서는 쉽게 인상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 물가 잡기에 비상이 걸린 상태에서 사회적, 경제적으로 영향이 큰 전기요금을 올렸다가는 물가 상승을 크게 자극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력기금 부담금이 전기요금에 포함돼 부과해 온 만큼 전력기금 부담금을 낮추면 그만큼 전기요금 인상에 따른 대중적 체감 영향을 줄일 수 있다.

전기요금을 내는 사람 입장에서는 어차피 전기요금을 1만 원 낸다고 가정했을 때 전기 사용에 따른 요금 9천 원과 전력기금 부담금 1천 원을 내든, 전기 사용에 따른 요금 9500원과 전력기금 부담금 500을 내든 차이가 없다는 의미다.

정부가 전력기금 부담금의 요율을 낮추기로 결정한 데는 최근 전기요금 인상에 따른 부담금 징수액의 증가가 중요한 근거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2022년 2분기 이후 5개 분기 연속으로 전기요금을 인상하는 등 전기요금 인상이 이어지면서 2023년에 전력기금 부담금은 전년보다 6322억 원 늘어난 3조106억 원이 징수됐다.

2023년 전체 부담금 징수액이 22조4천억 원으로 전년보다 9천억 원이 늘었는데 증가분의 3분의 2를 전력기금 부담금이 차지한 것이다.

정부로서는 전력기금 부담금 징수 규모가 이전보다 커진 만큼 어느 정도 징수액 감소는 감수할 만하다 판단한 것으로도 보인다.

전력기금 부담금 요율이 반기 동안 3.7%에서 3.2%로 13.5% 감소하면 연간 기준으로는 전력기금 부담금 징수액은 6~7% 줄어든다. 연내 전기요금 인상까지 이뤄지면 올해 전력기금 부담금의 징수 규모는 지난해와 비교해 5% 가량 감소하는 정도에 그칠 수 있다.

다만 한전이 재정난을 겪는 상황에서 전력기금 요율의 인하가 적절한지를 놓고는 비판적 시선도 나온다.

전기요금에서 한전으로 돌아가는 몫이 늘고 정부로 귀속될 몫이 줄어드는 만큼 당장은 전력기금 요율 인하는 한전의 재정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전력기금이 사용되는 '전력산업의 발전 및 기반조성’은 한전이 주로 맡고 있는 업무이기도 하다. 결국 한전의 부담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대목이다.

한전은 신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에너지 전환기 대응을 위해 송전망 확충 등 이전보다 큰 규모로 인프라 확대를 추진해야 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김동철 한전 사장은 16일 기자간담회에서 전기요금 정상화를 호소하며 “폭증하는 전력수요에 대비한 막대한 전력망 투자와 정전·고장 예방을 위한 필수 전력 설비 투자에 드는 재원 조달이 더욱 막막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총괄위원장을 맡은 정동욱 교수는 31일 실무안 언론브리핑에서 “제11차 전기본의 성공 여부는 전력망 확충에 달렸다”며 “전력망 확충은 우리 전력산업의 긴급한 과제”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