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현대차 이어 SK LG도 ‘탈중국’, 미중 패권경쟁에 북미·동남아서 새 활로

▲ 국내 기업들이 미·중 패권경쟁 구도에 대응해, 중국 사업 규모를 축소하고 북미·동남아서 새 기회를 찾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에 이어 SK, LG도 중국 사업 규모를 대폭 축소하는 등 국내 대표 기업들의 '탈중국'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이 격화하면서 중국 현지 생산공장 운영과 시장 상황의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사업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국내 기업들은 미국 주도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 중국을 대체할 수 있는 기회를 북미나 동남아시아 등 새로운 시장에서 찾고 있다.

14일 재계 취재를 종합하면, 몇 년 전부터 천천히 이뤄지던 국내 기업들의 중국 사업 철수가 최근 가속화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LG디스플레이는 올해 들어 중국 광저우 액정표시장치(LCD) 공장 매각 작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를 위해 산업통상자원부와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첨단기술에 해당하는 8세대급 LCD 공장은 해외 매각시 정부의 허가가 필요하다. 현재 중국 최대 디스플레이 업체 BOE, 중국 가전업체 TCL의 디스플레이 자회사 차이나스타(CSOT), 중국 가전업체 스카이워스 등이 LG디스플레이의 광저우 공장 인수의향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LG화학은 지난해 9월 말 IT소재 사업부 내 편광판·편광판소재 사업을 약 1조1천억 원에 중국 기업에 매각했다. LG화학은 중국 난징에 편광판 생산공장을 두고 있었다.

SK그룹도 중국 사업 규모를 줄이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올해 4월 중국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자회사 SK하이닉스시스템IC 지분 49.9%를 중국 우시산업발전집단(WIDG)에 매각키로 결정했다. 또 SK하이닉스 중국 상하이 판매법인은 지난해 4분기부터 청산 절차를 밟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앞서 “(중국은) 좋든 싫든 상당히 큰 시장인 만큼 포기하는 것은 선택지가 아니다”라며 “경제적으로 계속해 협력하고 발전과 진전을 이뤄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갈수록 심화하는 미중 갈등 속에 중국 사업 의존도를 어느 정도 줄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중국 투자는 사실상 멈춘 상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23년 SK하이닉스를 포함한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중국 투자는 1100만 달러로, 2022년 대비 99.8% 급감했다.

삼성전자와 현대차그룹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중국 사업 규모를 축소해왔다. 삼성전자는 2018년~2020년 중국에 두고 있던 스마트폰, PC 제조 공장을 잇달아 폐쇄했다. 현재는 중국에 시안 반도체 공장과 쑤저우 가전 공장과 반도체 후공정 공장만 남아 있다.
 
삼성 현대차 이어 SK LG도 ‘탈중국’, 미중 패권경쟁에 북미·동남아서 새 활로

▲  중국 ​​베이징현대 충칭 공장.


현대차는 2021년 베이징 1공장을, 2023년 말엔 충칭 공장을 매각했다. 5개의 중국 현지 공장 가운데 3개(베이징 2·3공장, 창저우공장)만 남았다.

대신 올해 4분기부터 미국 조지아주에서 전기차 신공장(HMGMA)을 가동할 예정이다. 또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푸네에서 연산 20만 대 이상 규모의 신공장 건설도 추진하고 있다.

삼성전자도 스마트폰 생산시설 대부분 베트남과 인도로 옮겼다. 미국 텍사스 테일러에 반도체 신공장을 지으며 북미와 동남아에서 새로운 사업 확대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국내 수출기업은 아직까지 중국 의존 비중이 크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중국 수출 비중은 최근 몇 년 동안 다소 감소하고 있지만, 여전히 2023년 기준 수출 비중이 19.7%에 이른다. 이는 같은 기간 미국 수출 비중 17.3%보다 높은 것이다.

이를 고려하면 미·중 갈등에 따른 탈중국 현상은 국내 기업들의 실적에 단기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반도체, 전기차, 2차전지 등의 산업에서는 국내 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중국을 대체할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란 시각도 제기된다.

결국 국내 수출 제조업 기업은 대부분 중국 업체들과 경쟁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는데, 미국이 중국을 배제한 새로운 공급망을 구축함으로써 구조적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정은미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민주-공화 양당의 대중국 견제 전략 기조가 장기간 지속할 전망이며, 한국 산업은 이로 인한 국제 분업 구조 재편기, 즉 ‘전략논리’의 시대에 직면했다”며 “미·중 전략 경쟁은 리스크인 동시에 다양한 업종에서 중국 역할을 대체할 수 있는 구조적 기회요인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