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21대 국회의 국민연금 개혁이 아무 성과 없이 끝났다.
막판까지 여야 합의의 발목을 잡은 것은 소득대체율이다. 여야는 소득대체율 43%와 45% 사이 2%포인트 차이를 극복하지 못했고 결국 합의점을 찾는 데 실패했다.
▲ 주호영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가운데)이 7일 여야 간사를 맡은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오른쪽),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과 함께 국회 소통관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
소득대체율을 43%로 하느냐 45%로 하느냐는 여야에게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벼랑 끝 마지막 패였을 수 있다. 이에 따라 기금 고갈 시기도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연금을 받는 개인에게는 큰 차이가 아닐 수 있다.
국민연금 2%포인트 더 받는다고 ‘안정적 노후’를 보장받는 것이 아니란 얘기다.
이는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공론화위원회 시민대표단이 고른 소득대체율 50%를 선택해도 마찬가지다.
5일 국민연금공단이 발표한 ‘2024년 1월 기준 국민연금 공표통계’에 따르면 올해 1월 노령연금 월평균 수급액은 64만3377원이다.
소득대체율을 현행 40%에서 50%로 10%포인트 높인다 해도 월평균 수급액은 80만 원을 갓 넘길 뿐이다.
지난해 11월 KB금융 경영연구소가 발간한 'KB골든라이프보고서'를 보면 2023년 노후 ‘적정생활비’는 가구 기준 월 369만 원이다.
부부가 각각 국민연금을 80만 원씩 받아도 적정생활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안정적 노후를 위해서는 국민연금이 아닌 또 다른 대비책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퇴직연금이 대표적이다.
퇴직연금은 노동자의 생활안정을 위해 사용자가 일정 재원을 외부 금융기관에 적립하고 노동자의 퇴직 시 연금 또는 일시금으로 지급하는 일종의 ‘기업복지제도’다. 2005년 본격 도입돼 올해로 시행 20년차를 맞았다.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퇴직연금만 중간에 빼 쓰지 않고 장기간 잘 굴려도 노후생활 수준이 달라진다는 분석과 연구는 수없이 많다.
미국, 호주 등 퇴직연금 선진국은 이를 직접 보여주기도 한다.
지난해 발표된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공적·사적 연금을 합친 미국의 소득대체율은 81%에 이른다. 이른바 ‘401(k)’로 불리는 미국의 대표적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제도 덕분이다.
미국에는 401(k)를 통해 장기간 원리금 비보장형 상품에 퇴직연금을 투자해 연금 백만장자가 된 은퇴자가 수십만 명에 이른다.
호주 역시 ‘슈퍼애뉴에이션(Superannuation)’으로 불리는 확정기여형 퇴직연금제도를 1992년 시행하면서 퇴직연금 강국으로 우뚝 섰다.
401(k)와 슈퍼애뉴에이션은 퇴직연금 유지부터 운용방법과 상품 선택 등 전반적 관리를 개인에게 맡긴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효율적 제도가 없다면 미국과 호주는 퇴직연금 강국으로 평가 받지 못했을 것이다.
▲ 고령화와 저출산이 맞물리면서 노후 리스크는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은 2023년 12월 오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무료 점심식사를 하려는 노인들이 길게 줄을 서 있는 모습. <연합뉴스> |
퇴직연금을 받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미래 불확실성에 대비해 현재의 소비를 뒤로 미뤄야 한다.
현재의 소비를 뒤로 미룰 만한 제도적 보상이나 강력한 벌칙이 없다면 퇴직연금을 유지할 동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원리금 비보장형 상품 선택도 마찬가지다.
안정성을 중시하는 장기 분산 투자가 아닌 한탕주의에 바탕에 둔 단기 집중 투자가 중심이 됐다면 미국과 호주가 퇴직연금 강국이 됐을 리 만무하다.
개인이 퇴직연금 계좌를 은퇴할 때까지 유지하고 수익성과 동시에 안정성을 추구할 수 있도록 장기 분산 투자를 유도하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은 결국 국가의 몫이다.
비즈니스포스트는 이 같은 주요 정책 제언을 위해 5월 직접 해외로 향한다. 우리보다 먼저 퇴직연금을 고민한 호주와 일본, 미국을 찾아 국내 퇴직연금제도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한다.
10년 뒤인 2034년이면 자율주행이 일상에 자리 잡고 서울 하늘에 택시가 날아다닌다고 한다. 10년 뒤가 그러하니 20년, 30년, 40년 뒤는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하나 있다.
안정적 노후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그 모든 것이 나와 상관없는 남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미래 당신의 노후는 안녕하지 않을 수 있다. 이한재 금융증권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