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테라에 밀려 힘 못쓰는 ‘크러시’, 롯데칠성음료 박윤기 돌파구 찾기 난망

▲ 롯데칠성음료가 맥주시장 공략에서 힘을 못 쓰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박윤기 롯데칠성음료 대표이사가 안고 있는 과제 가운데 하나는 국내 맥주시장 공략이다.

롯데칠성음료는 박 대표가 이끄는 동안 매년 성장세를 이어가면서 지난해에는 매출 3조 원을 돌파했다. 하지만 맥주시장에서만큼은 여전히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맥주시장에서 OB맥주와 하이트진로의 양강 체제가 굳어진 가운데 박 대표가 ‘크러시’로 틈을 비집고 자리를 잡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27일 비즈니스포스트 취재 결과 올해도 롯데칠성음료가 맥주시장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내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롯데칠성음료는 지난해 11월 ‘4세대 맥주’를 콘셉트로 크러시를 내놨다. ‘클라우드생드래프트’ 이후 3년반 만에 야심차게 내놓은 제품이지만 출시 100일을 지나서도 고객 반응은 미지근하기만 하다.
 
카스·테라에 밀려 힘 못쓰는 ‘크러시’, 롯데칠성음료 박윤기 돌파구 찾기 난망

박윤기 롯데칠성음료 대표이사. <롯데칠성음료>


지난해 4분기 롯데칠성음료의 맥주 매출은 2022년 4분기와 비교해 0.3%가 감소했다. 신제품 출시 직후에는 소비자들의 관심이 쏠리는 것을 생각하면 아쉬운 성적이다.

박 대표의 고민이 깊다는 것은 크러시를 계획보다 빨리 가정시장에 공급했다는 점에서도 나타난다.

애초 롯데칠성음료는 유흥시장에 크러시를 먼저 입점시킨 이후 올해 하반기부터 가정시장을 공략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계획을 바꿔 출시 한 달 만인 지난해 12월부터 대형마트 입점을 시작했다. 지금은 동네마트, 편의점 등에서도 크러시를 만나볼 수 있다.

롯데칠성음료는 고객과의 접점을 늘리기 위해 가정시장 공략을 앞당겼다고 설명했지만 유흥시장 입점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OB맥주와 하이트진로는 맥주시장에서 70%가 넘는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점유율 5% 정도인 롯데칠성음료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크지 않다.

주류업계에 따르면 점유율 5%도 대부분이 가정시장을 통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다시 말해 일반 소지자들이 식당에서 맥주를 시킬 경우 클라우드나 크러시가 아닌 OB맥주의 ‘카스’, 하이트진로의 ‘테라’, ‘켈리’ 등을 더 선호하고 있다는 얘기다.

가정시장만을 공략해서는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리기가 쉽지 않다. 코로나19 상황에서는 집에서 혼술하는 사람이 늘면서 가정시장에서 주류 소비가 늘었다고는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또 달라졌다. 주류가 주로 유흥시장에서 소비되고 있는 것이다.
 
롯데칠성음료는 맥주시장에서 ‘피츠’ 사례를 다시 겪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피츠는 롯데칠성음료가 2017년 내놓은 맥주다. 하지만 판매가 부진하면서 출시 5년 만에 단종됐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피츠 출시 이후 유흥시장 입점이 너무 어려웠기 때문에 당시 주력 맥주였던 클라우드를 빼고라도 그 자리에 피츠를 넣어달라고 할 정도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롯데칠성음료로서는 신제품을 밀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수 있지만 이것이 패착이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선택이 주류업계에서 패착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결국 피츠가 실패하고 단종됐기 때문이다. 클라우드를 빼면서까지 피츠를 입점시켜 놨는데 피츠가 단종되면서 식당에서 롯데칠성음료 맥주가 사라진 것이다.

일각에서는 롯데칠성음료가 크러시 마케팅 전략을 바꾸지 않겠냐는 의견도 나온다.
 
카스·테라에 밀려 힘 못쓰는 ‘크러시’, 롯데칠성음료 박윤기 돌파구 찾기 난망

▲ 롯데칠성음료의 크러시 모델 걸그룹 에스파 카리나. <롯데칠성음료>


롯데칠성음료의 소주 '새로'가 성공한 가장 큰 이유로는 마케팅의 힘이 꼽힌다. 새로는 ‘제로슈거 소주’임을 내세워 여성 소비자들을 공략했다. 소주 특유의 맛과 냄새를 없애면서 확실한 차별점을 가져갔고 소주 시장 점유율 20%대를 넘었다.

하지만 크러시가 맛에서 차별점을 가졌다는 평가는 드물다. 맛에 있어서는 아쉽다는 소비자들도 상당하다.

롯데칠성음료는 크러시 병모양과 캔의 질감으로 승부를 걸고 있는 상황이다. ‘새로=제로슈거 소주’와는 다르게 소구점이 명확하지 않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소주나 맥주를 맛으로 차별화한다는 것이 사실 쉽지 않다”며 “우리나라 사람들은 반주로 마시거나 안주와 함께 먹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동안 익숙했던 맛에서 너무 많이 바꿔버리면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소주는 맛을 다르게 하는 것이 더 어려운데 '새로'는 그 작은 차이를 잡아 시장에서 흥행할 수 있었다는 것이 업계에서 나오는 평가”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롯데칠성음료가 걸그룹 에스파 멤버 카리나를 내세워 ‘4세대 맥주’라고 홍보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다른 전략을 세우지 않겠냐는 의견도 나온다.

맥주시장 공략이 어렵다고 해서 박 대표가 맥주 사업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롯데그룹이 주류 사업을 시작한 것은 오래됐지만 맥주를 직접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한 것은 10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OB맥주 등 주요 맥주 브랜드들이 매물로 나올 때 마다 인수를 추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롯데는 결국 2014년 자체 공장인 충주공장을 통해 클라우드를 생산하면서 롯데칠성음료 창립 60년이 훌쩍 넘어서야 자체 맥주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롯데칠성음료는 크러시의 성과를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단 입장이다.

롯데칠성음료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출시된지 100일 정도 밖에 지나지 않아 매출을 공개할 수는 없지만 크러시가 출시된 이후 지금까지 맥주 카테고리 매출이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46% 정도 늘었다”며 “맥주를 많이 찾게 되는 봄, 여름이 되면 매출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젊은 세대를 타깃으로 내놓은 맥주인 만큼 MZ세대들 사이에서는 유흥시장에서도 반응이 좋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어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윤인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