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등록번호의 역사는 길지 않다. 박정희 정권 때 간첩과 ‘불순분자’ 색출을 위해 탄생했다. 주민등록번호에는 어찌 보면 ‘국민 통제’라는 ‘불순한 의도’가 깔려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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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 |
정부가 과연 주민등록번호와 ‘작별’할 수 있을까?
7일 안전행정부에 따르면, 유정복 장관은 오는 14일 대통령 업무보고를 할 예정인데, 이 보고에서 주민등록번호 대신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개인 식별 방식을 도입하는 방안을 포함시킨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박 대통령은 신용카드 개인정보 유출 사태의 대책과 관련해 “주민등록번호와 함께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대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행안부는 일단 주민등록번호 체계 유지를 전제로 대안 마련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민등록증 발행번호’ 도입이나, 아이핀, 휴대전호번호 인증 확대 등 개인식별 대안체계를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안행부 관계자는 “주민번호제도 자체의 개편에 대한 검토는 하지 않고 주민번호와 별도로 주민증 발행번호로 13자리 번호를 새로 부과하는 방안을 포함해 여러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결국 주민등록번호와 작별은 어렵다는 얘기이다. 주민등록번호 체계에 대한 문제점은 그동안 줄기차게 나왔다. 인터넷 등의 발달로 온라인에서 남용디면서 한번 유출이 되면 그 위험성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이번 신용카드 개인정보 유출이 대표적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주민등록번호 체계 유지를 전제로 한 대안 마련으로 방향을 잡고 있는 이유의 해답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주민등록번호 탄생 자체에 해답의 실마리가 있다.
주민등록번호가 시행된 역사는 50년도 채 되지 않았다. 1968년 1월 김신조 등 북한공작원이 당시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러 남파된 사건 이후 간첩 및 불순분자를 색출하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됐다. 최초 주민등록번호가 발급되면서 박 대통령의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는 100001, 육영수 여사의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는 200002가 부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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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색사이트에서 KSSN(Korean Social Security Number)를 검색하면 주민등록정보가 무방비로 노출된다 |
최초 주민등록번호는 12자리로 이루어졌다. 앞 여섯자리는 지역코드, 뒤 여섯자리 가운데 첫째는 성별이고 나머지는 등록순서로 구성됐다. 1975년 3차 개정을 통해 현재와 같은 열세자리로 바뀌었다. 현재 앞 여섯자리는 생년월일, 뒤 여섯자리는 성별, 등록지 고유번호, 등록순서, 오류검증번호로 구성된다.
한마디로 모든 개인정보의 ‘연결자’이자 ‘만능열쇠’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권력의 감시통제수단으로도 최적이다. 지난 해 2월 헌법재판연구소에서 발행한 ‘주민등록번호에 대한 헌법적 쟁점’을 보면, 현행 주민등록번호 체계는 기본권 침해로 위헌성이 다분한 것으로 지적됐다.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보면, 사회보장제도가 발달한 북유럽 국가에서는 ‘개인식별번호’를 사용하고 있다.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벨기에, 핀란드 등이다. 반면 영국, 캐나다, 뉴질랜드, 호주, 포르투갈 등은 개인식별번호를 사용하지 않는다. 특히 포르투갈은 헌법에서 “모든 국민에게 단 하나의 고유번호를 할당하는 행위는 금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미국, 독일, 프랑스 등은 임의적 번호제를 운영하거나 사용목적을 제한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와 같은 형식의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스웨덴과 같이 유사한 개인식별번호를 사용하는 경우에도 사회보장목적이 크게 강조된 경우다. ‘불순분자 색출’이라는 우리의 주민등록번호 탄생과 그 출발부터 다르다. 일본은 아예 식별번호의 엄격한 사용을 법으로 강제하기도 한다.
현행 주민등록번호는 전자정부 구축 등 행정 서비스의 효율성을 크게 높이는 데 기여한 측면이 있다. 또 인터넷 활용 등 정보통신 분야에서 우리나라가 급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주민등록번호가 간편한 개인 인증 수단으로 사용됐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특히 우리 사회 여러 기능의 많은 부분이 주민등록번호 체계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주민등록번호 체계를 변경할 때 치러야 할 비용과 불편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른 나라의 방식을 무턱대고 도입했다가는 제2의 도로명주소 사태를 낳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주민등록번호 체계 자체에 대한 검토를 하지 않는 것은 ‘땜질식 처방’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받기에 충분하다. 안행부가 검토중인 주민등록발행번호는 이미 2010년 도입이 시도됐다. 주민등록번호와 지문 정보를 전자칩에 넣고 임의번호를 부여해 이용하려는 것이었는데, 결국 결국은 주민등록번호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근본대책은 될 수 없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주민등록번호 체계 개편을 신중하게 검토하면서 ‘올바른 방향’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헌법재판연구소 이장희 박사는 “우리 상황에 맞는 창의적 해결방식을 도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주민등록번호에서 벗어날 수 있는 권리를 국민들에게 보장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민등록번호 체계의 문제점이 주민등록번호와 연결되는 다른 개인정보가 워낙 많아 유출될 경우 개인정보가 모두 노출되는 만큼 주민등록번호가 유출되면 국민 개개인이 그 번호를 바꾸는 등 노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