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금융산업의 판도를 바꿔온 혁신가를 꼽으라고 하면 많은 사람이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을 떠올린다.

박 회장은 금융업계 최고의 스타 CEO로, 월급쟁이로 시작해 수조 원 대의 자산가에 오르고, 자본금 100억으로 출발한 미래에셋을 자산운용, 보험, 증권을 아우르는 국내 1위 금융그룹으로 키워낸 주인공이다.

박 회장은 증권사 샐러리맨 시절에 업계 최연소 지점장, 최연소 임원 기록을 잇따라 깨고, 창업 후에는 국내 1호 자산운용사 설립, 국내 1호 공모펀드 출시, 국내 증권사 최초 자기자본금 10조 원 달성 등 셀 수 없는 신기록을 써왔다. 

박 회장은 은행 저축이 최고의 미덕이던 때에 투자의 시대, 펀드의 시대를 개막한 인물이기도 하다. 700% 수익률을 기록한 주식형 펀드, 국민을 열광시켰던 적립식 펀드도 박 회장의 작품이다.

최근 박 회장은 K컬처, K푸드를 잇는 또 하나의 한류, K금융의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미래에셋그룹은 해외에서 운용하는 자산이 117조 원에 이르며 금융 수출로 얻은 수익은 1조 원이 넘는다.

글로벌 금융기업을 만들어낸 박 회장의 리더십을 분석해보도록 하겠다.

◆ 최연소 지점장 여의도 증권맨, 사표를 던지고 금융그룹 회장이 되다

박 회장은 1990년대 여의도 증권가에서 최연소 지점장으로 이름을 날리며 탄탄대로를 걷고 있었지만 돌연 사표를 던지고 자신의 회사를 차렸다. 마흔이 되기 전에 자신만의 회사를 갖고싶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회사를 차린지 6개월 만에 IMF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회사가 어려움에 빠졌지만 박 회장은 이를 위기가 아닌 기회로 보고 자신의 이름을 내건 박현주 1호 펀드를 출시했다.  

폐쇄형 펀드기 때문에 단기 투자에 익숙한 고객들에게 외면을 받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박현주 1호 펀드는 판매 시작 3시간여 만에 500억 원어치가 완판되고, 평균 90%에 달하는 수익률을 올리는 등 크게 성공했다.

박 회장은 이후 미래에셋증권, 미래에셋생명을 잇따라 출범시키면서 사세를 확장했으며 자본금 100억 원으로 출발한 미래에셋은 국내 대표 금융기업으로 우뚝 섰다. 

이를 가능하게 했던 박 회장의 첫 번째 비결은 바로 남들과 다른 길을 가야 돈을 벌 수 있다는 ‘소수 전략’이다. 

◆ 독서와 통계자료에서 나오는 통찰력, 박현주 ‘소수 전략’의 핵심

박 회장의 소수 전략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는 바로 1999년 투자한 다음커뮤니케이션이다. 

박 회장은 외환위기의 여파로 증시가 폭락했을 때 다음의 주식을 사들였다. 기업의 펀더멘탈에 비해 주가가 너무 낮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박 회장의 판단은 적중했다. 다음의 주가는 곧 회복돼 박 회장은 24억 원을 주고 산 다음의 매각 대금으로 무려 1200억 원을 손에 쥘 수 있었다.

박 회장은 다른 사람들이 주식만 바라보고 있을 때 부동산 투자, 해외 투자로 눈길을 돌리기도 했다. 

2006년 박 회장은 2600억 원을 투자해 중국 푸둥 빌딩을 사들였다. 

많은 임원들이 가격 거품이 너무 심하다, 중국 경제가 불안하다는 이유로 박 회장을 만류했지만 박 회장은 글로벌 분산투자, 대체 투자로 눈을 돌려야 승산이 있다고 판단하고 이 선택을 밀어붙였다.

현재 이 빌딩의 가치는 매입가의 6배에 육박하는 1조5천억 원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렇다면 박 회장은 어떻게 이런 통찰력을 지닐 수 있게 된 것일까?

박 회장은 자신의 통찰력이 독서에서 나온다고 말하고 있다. 박 회장은 어릴 때부터 책에 푹 빠져 살았고, 지금도 1년에 읽는 영어원서만 5천 페이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책을 읽는 방법 역시 특별하다. 책의 의견이 내 의견과 다르더라도 저자와 대화를 하듯이 마음을 열고 읽는다는 것이다. 

박 회장이 자신의 통찰력의 비밀로 꼽는 또 다른 요소는 통계자료다. 

박 회장이 중국 푸둥타워 인수를 밀어붙였던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36%에 지나지 않았던 상하이의 도시화 비율 통계였다. 당시 세계 주요 대도시의 도시화율은 90%였던 상황에서, 머지않아 상하이의 도시화율도 90%를 찍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던 것이다.

◆ 박현주의 뚝심, 미래에셋을 글로벌 금융회사로 만들다

미래에셋의 글로벌 시장 공략은 2003년에 국내 최초로 홍콩 현지법인을 설립하면서 시작됐다. 

박 회장은 국내 시장에만 투자하다가는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휘둘릴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해외투자를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회사 안팎의 반응은 회의적이었지만 박 회장은 “내가 실패하더라도 내 경험은 후배에게 남는다”며 해외 진출을 강행했다. 

결국 미래에셋은 미국, 브라질, 일본, 호주 등 세계 14개 지역에서 283조 원의 자금을 운용하는 글로벌 금융기업으로 거듭났으며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유일한 금융회사가 됐다.

미래에셋은 2016년 대우증권의 해외 거점을 활용하기 위해 2조4천억 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대우증권을 인수하기도 했다.

미래에셋의 글로벌 공략이 성공한 데에는 박 회장의 뚝심이 커다란 역할을 했다. 특히 인도 투자는 박 회장의 뚝심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박 회장은 2000년대 초반 직접 신흥국가를 찾아다니며 현지 시장을 점검하다가 인도 투자를 결심했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모든 외국인 회사가 철수할 때에도 인도 시장을 지켰다. 인도 법인 직원 가운데 한국인은 1명에 불과할 정도로 철저한 현지화 전략도 병행했다.

현재 인도인들에게 미래에셋은 JP모건, 골드만삭스에 비견되는 금융브랜드로 성장했으며 설립 당시 2천억 원에 불과했던 수탁고는 2022년 말 기준 21조 원까지 성장했다.

박 회장이 대우증권을 인수한 목표는 바로 글로벌 금융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였다. 대우증권의 해외 거점을 활용해 미래에셋을 글로벌 투자 은행으로 도약시키겠다는 것이다.

박 회장은 미래에셋을 아시아 제 1의 금융그룹, 한국의 골드만삭스로 키우겠다는 야심을 여전히 버리지 않고 있다. 과연 불가능을 상상하는 박 회장의 도전과 함께 미래에셋이 계속해서 전성기를 만들어 갈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기획제작 : 성현모, 서지영, 강윤이 / 촬영 : 김원유, 김여진 / 진행 : 윤연아 / 출연 : 조윤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