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수재 기자 rsj111@businesspost.co.kr2023-04-20 14:5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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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L이앤씨, 삼성엔지니어링 등 러시아에서 사업을 진행하는 건설사들이 한국과 러시아 관계에 촉각을 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DL이앤씨, 삼성엔지니어링 등 러시아에서 사업을 진행하는 건설사들이 한러 관계에 촉각을 세우게 됐다.
러시아 침공에 따른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 가능성을 시사했다. 러시아가 곧바로 발끈하고 나서 양국 관계에 긴장감이 올라오고 있다.
20일 스푸니트크, 리아노보스티 등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성명서에서 “무기가 어디에서 오든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공급은 반러시아 행위로 간주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전날(19일) 로이터와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할 수 있다는 발언에 러시아가 대응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러시아 외무부는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하면 한국과 러시아 관계뿐 아니라 한반도 상황에도 악영향을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러시아에서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건설사들은 사태의 추이를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러시아가 2022년 3월 한국을 적대국가에 포함해 제재가 시작될 수 있다는 말이 돌았는데 무기 지원으로 갈등이 심화되면 실질적 제재안이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직접적으로 러시아와 갈등을 빚지는 않았다. 다만 러시아가 윤 대통령의 발언에 강경한 태도를 보여 양국 사이 적대적 기류가 흐르자 건설사들이 기존에 수주한 사업의 진척 속도가 더욱 더뎌질 수 있다는 시선이 나온다.
실제 현대엔지니어링은 2021년 6월 수주한 1천억 원 규모의 오렌부르그 가스처리시설 EPC(설계·조달·시공) 공사를 이미 백지화했다. 전쟁이 일어나자 사업초기 단계에 접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러시아에 사업장을 두고 있는 건설사로는 삼성엔지니어링과 DL이앤씨 두 곳으로 파악된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지난해 2월 중국 국영 건설사 CC7과 러시아 발틱 에탄크레커 프로젝트(1조3721억 원)을 수주하며 처음으로 러시아시장에 진출했다. 이 사업은 러시아 BCC(Baltic Chemical Complex LLC)가 발주한 것으로 삼성엔지니어링은 EP(설계·조달)업무를 맡는다.
DL이앤씨는 2021년 6월 모스크바 정유공장 건설사업(3271억 원)을 EP사업으로 수주했고 같은 해 12월 초대형 가스화학 프로젝트인 발틱 콤플렉스 프로젝트(1조6천억 원)도 EP방식으로 따냈다.
삼성엔지니어링과 DL이앤씨는 EPC(설계·조달·시공)에서 사업위험을 낮추기 위해 직접 시공을 제외한 부가가치가 높은 설계와 조달을 맡았다.
시공과정에서 공사기간이 조금이라도 미뤄지면 수익성에 큰 타격이 발생하는 만큼 중동과 아시아 등과 비교해 아직 경험이 부족한 러시아에서 사업을 보수적으로 접근한 것으로 분석된다.
삼성엔지니어링과 DL이앤씨의 러시아 사업은 전쟁으로 속도가 느려지긴 했으나 무리없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 우려하는 대금회수 위험도 낮은 것으로 예상된다.
2022년 사업보고서 기준으로 삼성엔지니어링의 러시아 발틱 에탄크래커 프로젝트 관련 표기된 도급금액 1조3515억 원 가운데 548억 원을 기납품액으로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DL이앤씨의 모스크바 정유공장 관련 도급금액으로 514억 원이 기록됐고 완성공사액은 386억 원으로 절반 이상 진행됐다. 또한 발틱 콤플렉스 프로젝트도 도급금액 1조3158억 원 가운데 10% 수준인 1370억 원가량 프로젝트가 진행된 것으로 집계됐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사업이 영향을 받지 않을 수는 없지만 기성에는 문제가 없다”며 “러시아가 국제금융결제망(SWIFT)에서 제외됐지만 유로 등 달러 이외 통화 등으로 도급금액을 회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를 두고 국제정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지만 국내 건설사들은 러시아 시장 진출에 계속 관심을 둘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가 세계 최대 천연가스 보유국이자 생산국이며 글로벌 3대 산유국 지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북극해에 매장된 150억 톤의 원유와 100조㎥의 천연가스 개발 계획도 가지고 있다. 다만 러시아 플랜트시장은 강자인 유럽EPC사들이 선점해 국내 건설사들 진출이 쉽지 않았다.
▲ 사진은 삼성엔지니어링이 수주한 러시아 발틱 에탄크래커 프로젝트 위치도. <삼성엔지니어링>
그럼에도 건설사들은 플랜트 역량을 키우며 러시아시장에 도전하고 있다.
대표적 기업이 DL이앤씨다. 2014년 러시아 국영 천연가스회사 가즈프롬의 가스처리 공장 프로젝트를 통해 교두보를 마련한 뒤 신뢰관계를 쌓아왔다.
이후 2015년 러시아 현지법인을 세운 뒤 사업수행 역량을 보여 2016년에 유럽EPC사들이 독점하던 기본설계(FEED)로 업무를 확장했다. 앞서 발틱 콤플렉스 프로젝트도 기본설계를 수행한 뒤 본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기본설계는 플랜트사업의 기초 설계와 견적을 설정하는 작업으로 플랜트 프로젝트 전체에 관한 이해와 기술력이 필요한 고부가가치분야로 꼽힌다. 또 사업의 초기단계부터 고객사와 관계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에 최종 수주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
해외건설업계 관계자는 “해외사업에서 국가 부도위험 등 소버린리스크(Sovereign risk)의 존재는 있을 수밖에 없지만 이를 완화하기 위한 계약조건을 반영하는 것도 중요하다”면서도 “설계·조달·시공 가운데서도 당장 업무를 진행할 수 있는 설계에 초점을 맞춰 상황이 개선될 때 사업을 조속히 재개할 수 있도록 전략을 세우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류수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