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진 기자 tjjoso@businesspost.co.kr2023-04-13 08: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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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4월 기준금리를 시장 예상대로 연 3.50%로 동결했다. 직전 금통위인 2월에 이어 2번 연속 제자리걸음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올해 안으로 금리인하를 단행할 가능성에 대해 “과도하다”라는 말을 했다. 6명의 금통위원 가운데 5명이 향후 금리인상 가능성을 열어두자는 의견을 냈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 달러화 약세에도 불구하고 원화 약세 기조가 이어지면서 우려를 낳고 있다.
시장에서 기대하고 있는 연내 금리인하 가능성에 대해 확실하게 선을 긋는 것인데 그만큼 한국 통화당국의 고민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5월 기준금리를 0.25% 인상하는 베이비스텝을 단행할 가능성이 있는 터에 금리인하 시그널을 주는 것 자체가 부담인 것으로 읽힌다.
외국인의 자본 유출과 수입물가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박 등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격차 확대 부작용이 즉각 현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긴축 기조가 마무리될 것이라는 기대로 달러화가 약세로 돌아서는 와중에 원화 가치가 올라가지 못하고 있는 이례적인 상황은 대내외적으로 우려를 낳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1300원대로 장기간 유지되고 있어서 체감하지 못하고 있을 뿐 사실 이 정도의 원화가치는 2002년 카드사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비상 경제상황에서나 볼 수 있었다.
더구나 미국 금리인상이 정점을 찍고 있다는 글로벌 컨센서스가 형성되는 와중에 유독 원화가치만 상대적으로 처지고 있다는 사실은 걱정을 더한다.
실제 한국은행이 10일 발표한 ‘2023년 3월 이후 국제금융 외환시장 동향’에 따르면 미 달러화는 달러인덱스(DXY) 지수 기준으로 지난달 1일부터 이달 6일까지 2.9% 하락했다.
이 기간 원·달러 환율은 1322.6원에서 1319.1원으로 원화가치가 0.3% 오르는데 그쳤다. 일본 엔화와 영국 파운드화는 각각 3.4%, 유로화는 3.3% 절상한 것에 한참 못미쳤다.
인도네시아 루피화(2.3%), 중국 위안화(0.9%), 인도 루피(0.8%) 등 중진국보다 낮은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원화가치의 상대적 하락은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이 빠르게 식어가고 있다는 의미다. 13개월 연속 무역적자는 이를 방증하고 있고, 자칫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이 일본에도 못 미칠 것이라는 회의론자들의 전망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주주총회 시즌 이후 배당금이 지급되는 4월 외국인투자자의 달러 환전 수요가 몰려 원화가치 추가 하락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시선도 보내고 있다.
원화값 절하는 수입 원자재와 상품 가격을 끌어올려 결국 물가 상승 압력을 높인다는 점에서 소비자들에게도 직격탄이 될 수 있다. 고물가 악순환이 깊어지는 와중에 불황이 지속되는 스테크플레이션이 엄습할 경우에는 단기적으로 만회할 수 있는 카드가 사실상 없다는 게 중론이다.
통화당국이 원화가치 하락에 대해 보다 깊게 생각해야 하는 이유다.
한국은행은 12일 내놓은 ‘금리인상 이후의 미국경제 상황 평가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리기 시작하며 유동성을 줄였다고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늘어난 유동성에 비하면 그 축소 폭이 작아 긴축 효과가 미미했다고 봤다.
과거 금리인상기와 비교해 미국 정부의 재정기조가 완화적인 수준을 유지한 점도 통화 긴축 파급 효과를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했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미국의 추가 금리 인상 폭이 커질 가능성도 열어두고 유동성 관리에 나서야 하는 것은 아닌지 짚어볼 일이다.
물론 추가 긴축이 야기할 고통은 불가피할 것이다. 한국 경제에서 가계부채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국민들의 부담이 커질 수 밖에 없고 기업들도 자금조달 비용 상승 압력을 이겨내지 못하면 금융위기 그림자가 드리워질 수 있다.
결국 선택의 문제인데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경제학자들의 목소리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IMF외환위기를 예측한 것으로 대중에게 잘 알려진 최용식 21세기경제학연구소장은 금리인상으로 원화가치를 끌어올리면 수출 기업의 채산성이 걱정되는 등 부작용이 있을 수 있지만 그 과정에 한국 기업의 경쟁력이 강화돼 장기적으로 긍정요인이 될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최 소장은 비즈니스포스트와 전화인터뷰에서 원화가치가 하락하면 수출이 증가할 것이라는 판단은 이론일 뿐 현실과 다르다고 했다.
그는 “환율이 상승하면 해외 수입업체가 수출가격 인하를 요구하고, 수출기업은 그 요구를 받아들인다"며 "같은 물량을 수출해도 환율이 상승하면 달러 금액은 감소해 수출이 줄었던 것이 역사적 경험"이라고 강조했다.
반대로 원화가치가 올라가면(환율 하락) 수출이 증가하면서 경상수지 흑자가 커졌는데 수출 기업이 원화가치 상승 부담을 이겨내기 위해 제품 경쟁력 강화라는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그는 "100달러짜리 수출하던 기업은 150달러짜리 내지는 200달러짜리를 새롭게 개발해야 망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한국 수출역사가 이미 증명했다"며 "한국의 경우 198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이 대표적인 사례이며, 일본에서도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중반에 그런 현상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조태진 금융증권부장/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