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경주의 이름난 부호 경주 교동 최씨 고택 <경주시> |
[비즈니스포스트] 내남면 이조리에서 만석군 거부가 된 최부자댁은 이제 재산을 더 이상 늘리지 않았습니다. 이후론 만석의 재산을 운용하여 해마다 얻는 수익의 삼분의 이는 빈민들과 과객들을 돕는 데 썼습니다. 경주 교동으로 이거한 뒤에도 100년 이상 오랜 동안 그렇게 했습니다.
지난 번에 말씀드린 것처럼, 이조리의 최부자댁 집터는 사방에 노적처럼 생긴 산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좌 우 앞 세 방향에서 흘러온 물이 합류하며 집터를 감싸고 흘러 아주 큰 재물이 모이는 곳입니다.
교동의 최부자댁 집터는 이조리 만큼 큰 재물을 얻는 곳은 아닙니다. 그런데 최부자댁은 이조리에 있을 때부터 재산을 더 이상 늘리지 않고 남는 재물을 모두 어려운 이들을 위해 써왔으니 이런 최부자댁한테는 안성맞춤인 곳입니다.
교동 최부자댁 앞에는 남천이 흐릅니다. 또 계림에서 흘러오는 실개천이 반월성과 향교 사이를 지나 남천과 합류하여 향교와 최부자댁을 휘감아 흐릅니다.
이 실개천과 남천의 기운이 재물을 불러오는데 그 기세가 이조리의 형산강과 이조천보다는 많이 약합니다. 그래도 만석군 재산을 지키며 거기서 얻는 수익으로 어려운 이들을 돕기엔 부족함이 없는 기운입니다. 만약 최부자댁이 어려운 이들을 돕는 데 쓴 재물로 재산을 더 크게 늘리려 했다면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 재물은 헛되이 흩어졌을 것입니다.
남천 건너 500미터쯤 떨어진 곳에는 초승달처럼 예쁘게 생긴 동산이 있습니다. 이렇게 생긴 산을 풍수학에선 아미문성 혹은 아미사라 부릅니다. 앞에 아미문성이 있으면, 총명하고 지혜로운 사람들과 심성이 아름다운 사람들이 나옵니다.
이 아미사 뒤에는 또 한자의 한 일자 비슷하게 생긴 산이 솟아있습니다. 이렇게 생긴 산을 풍수학에선 일자문성이라 부릅니다. 앞에 일자문성이 있어도 총명하고 지혜로운 사람들이 나옵니다. 또, 성품이 공명정대하며 의로운 사람들이 나옵니다.
풍수학에 `멀리 떨어진 천 개의 아름다운 산보다 가까운 한 개의 훌륭한 안산이 더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산이든 물이든 가까울수록 더 큰 영향을 주고, 또 그 영향이 더 빨리 작용합니다. 최부자댁 집터는 풍수의 여러 구성 요소 중에서 안산이 가장 빼어납니다.
아미문성의 기운은 남자 자손보다 여자 자손들이 더 많이 받습니다. 일자문성의 기운은 남자 자손들이 더 많이 받습니다. 최부자댁 앞에는 아미문성과 일자문성이 모두 있으니 남녀 자손 모두 총명하고 지혜로웠을 것입니다. 또 성품이 공명정대하며 의로운 사람들이 많았으리라 봅니다.
일자문성 중에는 일직선으로 평평하게 생긴 산도 있고, 좌우 한쪽이 약간 들어간 산도 있습니다. 일자문성에 어느 쪽이든 약간 낮게 들어간 곳이 있으면, 청렴한 사람, 청빈하게 사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최부자댁의 일자문성 안산은 왼쪽편이 약간 낮게 들어갔습니다. 이 안산도 최부자댁 자손들이 선조의 유훈에 따라 재산을 늘리려는 욕심을 내지 않고 검소하게 살면서 아낌없이 어려운 이들을 돕는 데 크게 일조했을 것입니다.
일자문성 아미문성 외에도 여러 종류의 문성이 더 있습니다. 안산이 문성이면 자손들이 학문을 좋아하고 공부를 잘합니다. 옛날에는 과거에 급제하는 사람들이 나왔습니다. 바로 앞에 문성이 둘이나 있으니 최부자댁엔 학문에 뛰어난 자손들이 많았습니다.
권세를 원했다면 과거에 급제하는 사람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최부자댁 자손들은 선조의 유훈에 따라 진사 이상의 벼슬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과거의 초시에만 응시했고 9대에 걸쳐 진사가 나왔습니다.
최부자댁 여자 자손들도 지혜와 덕을 겸비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영남의 여러 명문세가에서 최부자댁 규수들을 기꺼이 며느리로 맞았습니다. 마지막 최부자인 최준 선생의 맏손녀는 동계 정온 선생 가문의 종부가 되었으며 둘째 손녀는 서애 류성룡 선생 가문의 종부가 되었습니다. 또, 셋째 손녀는 학성 이씨 가문의 종부가 되었습니다.
최부자댁 일대에서 사방을 둘러보면 시야가 매우 넓습니다. 멀리 떨어진 산맥과 산들이 병풍처럼 경주 시가지를 감싸고 있습니다. 그 모습이 참 아름답고 수려하여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것 같습니다.
명당의 좋은 기운은 시야가 넓어야 오래 유지됩니다. 시야가 좁으면 좁은 만큼 빨리 흥하고 빨리 쇠약해집니다.
최부자댁에서는 멀리 1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산들까지 보이니 집터의 좋은 기운이 아주 오래 유지됩니다. 그래서 만석군의 재산으로 어려운 이들을 도우면서 6대에 걸쳐 200년 가까이 여기서 살았습니다.
최부자댁 일대에서 보이는 산들은 거의 대부분 온화하고 부드럽게 생겼습니다. 거칠게 생겼거나 우악스럽거나 험상궂게 생긴 산이 얼마 없습니다. 멀리 떨어진 산맥들은 부드럽고 유장하게 뻗어 있고 가까이 있는 산들은 단아하고 수려하게 생겼습니다.
이처럼 많은 산들에 둘러싸여 있고 이 산들의 모양이 좋으면, 많은 사람들의 지지와 성원과 신망을 얻게 됩니다.
최부자댁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덕을 베푼 만큼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습니다. 주는 이도 받는 이도 참 아름다운 사람의 도리를 보여줬습니다. 이 또한 산천의 빼어난 정기가 도왔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봅니다.
최부자댁 안산인 아미문성 일자문성 뒤로는 남산이 보입니다. 이 남산에는 불꽃처럼 뾰족하게 생긴 봉우리들이 여러 개 보입니다.
그런데 이 봉우리들은 반듯하게 생기지 않고 조금씩 기울어져 있습니다. 형상이 불길하여 흉한 기운을 일으키는 화성입니다. 불길한 화성은 외적의 침략, 전쟁, 도적의 침입, 가뭄, 전염병, 갈등과 투쟁 등의 흉사를 불러옵니다.
산천의 기운은 거리에 따라 영향을 미치는 시기가 달라집니다. 가까울수록 빨리 영향을 주고, 멀수록 더 늦게 영향을 미칩니다. 남산은 최부자댁에서 4킬로미터쯤 떨어져 있습니다. 이 정도 거리면 백여 년 뒤에 큰 영향을 줍니다.
최부자댁이 교동으로 이거한 지 백여 년 뒤, 우리나라는 일제 침략으로 나라를 빼앗기는 참화를 입었습니다.
이에 11대 최부자 최현식 선생과 12대 최부자 최준 선생은 `나라가 없으면 부자도 없다`며 일제에 맞서 독립운동을 했습니다. 경주지역 국채 보상운동을 선도했고, 대한광복회 활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했습니다.
최준 선생의 둘째 아우 최완 선생은 동지들과 대동청년당을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하다 한일합방 직후 중국으로 망명했습니다. 상해에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재무위원이 되어 활동했습니다.
최부자댁에선 막대한 자금을 보내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을 지원했습니다. 최완 선생은 일경에 체포돼 모진 고문으로 고생하다 1927년 대구교도소에서 순국했습니다.
최준 선생은 임시정부에 재정 지원을 하기 위해 안희제 선생이 주도해 설립한 백산상회의 사장이 돼 임시정부를 적극 도왔습니다. 백산상회는 임시정부를 지원하느라 많은 빚을 지었고 또 일제의 탄압으로 결국 폐업하게 되었습니다.
백산상회의 막대한 부채는 최부자댁이 모두 떠안았습니다. 최준 선생은 최부자댁이 소유한 모든 토지를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그 빚을 갚았습니다. 해방 후 그 토지의 삼분의 일을 돌려받았다 하니 독립운동에 만석군 재산의 삼분의 이를 바친 것입니다.
최준 선생은 남은 재산도 인재 양성을 위한 학교를 세우고 발전시키는 데 모두 썼습니다. 재산을 정리해 대구대학(영남대학교)와 계림학숙(영남이공대학교)를 세웠으며, 학교 발전을 위해 가문의 토지와 자신의 집, 또 뜻을 같이 한 일가친척들의 집까지 영남대학교에 기증했습니다. 이와 함께 대대로 전해오던 귀중한 서적과 문헌 자료 9000여점도 모두 기증했습니다.
처음 최부자댁 역사를 연 최진립 장군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장군의 후손들은 대대로 사치와 영화를 멀리하고 곤경에 처한 수많은 사람들을 구했습니다.
최부자댁 수백 년 역사를 마감한 12대 자손들은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또 되찾은 나라를 부흥시키기 위해, 목숨도 바치고 재산도 남김없이 바쳤습니다. 최부자댁은 이렇게 오랜 세월 특별히 아름다운 미담들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과 기쁨을 줬습니다.
신라시대 교동에 살았던 요석공주는 원효대사와 나눈 특별한 사랑으로 1400년이 지난 지금까지 기억되고 있습니다. 최부자댁은 가난한 사람들과 나라를 향한 너무나 특별한 사랑으로 꽃처럼 아름답고 향기로운 이름이 뭇 사람들에게 오래 오래 기억될 것입니다. 류인학/자유기고가, '문화일보'에 한국의 명산을 답사하며 쓴 글 ‘배달의 산하’, 구도소설 ‘자하도를 찾아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