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채널Who] “메모리반도체에 이어 시스템반도체에서도 확실히 1등을 하겠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019년 4월 ‘반도체 2030 비전’을 내놓으면서 한 이야기다. 이 회장은 이를 위해 무려 133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렇다면 지금 상황은 어떨까? 삼성전자는 이 목표를 향해 순조롭게 나아가고 있을까?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의 한 날개를 책임지고 있는 LSI사업부는 최근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갤럭시S22 라인에 들어갈 예정이었던 삼성전자의 자체 개발 AP, 엑시노스 2200는 매우 실망스러운 평가를 받으면서 결국 국내와 인도에 출시되는 갤럭시S22 라인에는 퀄컴의 스냅드래곤이 탑재됐다. 유럽 일부 지역 수출물량에만 엑시노스2200이 사용됐다.
갤럭시S23의 출고 물량에는 전량 퀄컴의 스냅드래곤이 사용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스마트폰 AP를 직접 만드는 삼성전자 입장에서 플래그십 스마트폰에 자체 개발한 AP를 쓰지 못했다는 것은, 그것도 다름 아닌 성능 문제로 그랬다는 것은 절대 좋은 이야기라고 볼 수 없다.
삼성전자가 종합반도체기업 1위로 우뚝 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설계 역량이 필요하다. 엑시노스의 차세대 제품인 2300이 삼성전자의 반도체 설계 역량을 증명해내지 못하면 결국 그 꿈은 사그라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삼성전자의 LSI사업부 앞에는, 엑시노스 앞에는 어떤 길이 놓여있을까? 시장에서는 엑시노스의 길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눠 전망하고 있다.
첫 번째는 일단 중저가 AP시장에 집중해 설계 역량과 점유율을 키운 뒤 이후에 프리미엄 AP시장에 재도전 하는 방법이다.
이는 대만 미디어텍이 이미 걸었던, 성공 사례가 존재하는 길이기도 하다.
미디어텍은 경쟁사보다 뒤늦은 2011년에서야 비로소 스마트폰 AP 시장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중저가 제품과 프리미엄 제품을 모두 개발했던 것과 달리, 미디어텍은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중저가 스마트폰에 들어갈 AP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미디어텍의 전략은 성공해 미디어텍은 중저가 스마트폰 AP 시장을 장악했다. 미디어텍은 그제서야 프리미엄 AP시장에 눈을 돌렸다.
미디어텍은 중저가 AP를 개발하면서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2015년부터 프리미엄 모델을 내놓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여러차례 실패했지만 2021년 미디어텍이 출시한 디멘시티9000은 퀄컴의 스냅드래곤8 1세대와 삼성전자의 엑시노스 2200을 모두 성능으로 뛰어넘는 데 성공했다.
이후 스냅드래곤8+ 1세대가 출시되면서 다시 성능이 역전되긴 했지만, 이 사례는 프리미엄 AP 경쟁에서는 계속 고배를 마시고 있던 미디어텍이 이 시장에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삼성전자는 미디어텍이 썼던 이 전략을 벤치마킹하기 매우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 삼성전자가 중저가 스마트폰 시장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현재 중저가 스마트폰에 엑시노스 이외에도 미디어텍, 퀄컴, UNISOC 등 기업의 AP를 사용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중저가 스마트폰용 엑시노스 개발에 좀 더 힘쓰고 그와 함께 모바일사업부는 중저가 라인업에 엑시노스 탑재 비중을 늘려서 엑시노스의 시장점유율을 확보하고, 그렇게 쌓은 경쟁력으로 차근차근 다시 프리미엄 AP 시장에 도전하는 시나리오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 번째 길이 미디어텍의 길이었다면, 두 번째 길은 ‘애플의 길’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바로 엑시노스를 범용칩이 아니라, 애플의 M1처럼 갤럭시 시리즈에 특화시킨 ‘전용칩’으로 개발하는 것이다.
현실성이 조금 떨어져 보일 수 있지만, 삼성전자에게도 한 가지 무기가 있다. 바로 ‘원UI’다.
애플이 전용칩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뭘까? 물론 애플의 기술력이 훌륭한 탓도 있지만, IOS라는 통일된 운영체제의 이점도 빼놓을 수 없다.
갤럭시 시리즈에 탑재되는 운영체제는 구글의 안드로이드지만, 삼성전자는 갤럭시 시리즈에 삼성전자만의 사용자 인터페이스, 원UI를 사용하고 있다. 원UI에 특화시킨 칩을 개발한다면 엑시노스와 갤럭시의 성능을 함께 끌어올릴 수 있다는 뜻이다.
원UI는 이용자들에게 ‘무겁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로 아이폰을 쓰다가 갤럭시로 넘어온 사람들 가운데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느리다는 불편함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엑시노스가 갤럭시 전용칩으로 개발된다면 삼성전자는 엑시노스의 설계 과정에서 원UI의 이런 단점을 핀포인트로 해결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미국의 IT전문 미디어 샘모바일은 삼성이 엑시노스에 특별한 기능을 넣어 현상황을 타개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고 전했다. 그 특별한 움직임이란 바로 원UI의 일부 기능을 가속할 수 있는 특수 코어다.
삼성전자는 2025년까지 갤럭시 전용AP를 만들기 위해 설계팀을 풀가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2022년 12월 조직개편에서는 MX(모바일경험)사업부 아래 AP솔루션개발팀을 신설하기도 했다.
개발 목표는 2025년이지만, 갤럭시S23의 일부 모델에라도 엑시노스2300을 탑재해 갤럭시 전용 칩을 실험해 볼 가능성을 아직 배제할 수 없다.
갤럭시S23 언팩 행사가 이제 두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이 언팩행사에서 엑시노스와 관련된 삼성전자의 노림수가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업계의 한 관계자는 “퀄컴이 말하는 글로벌 쉐어(Global Share)가 반드시 100%라고 볼 수는 없다”며 “아직 삼성전자가 갤럭시S23에 엑시노스를 사용하는 것을 완전히 포기했다고 보기는 이르다”고 말했다.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