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전에서 배출되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의 저장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먼저 상업운전을 시작한 고리 원전은 2031년이면 시설 내 임시 저장소가 꽉 찰 것으로 예산된다. 사진은 고리 1호기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 시설의 모습.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원자력발전량이 늘고 있다. 이에 따라 원전 폐기물 즉 고준위 방사성폐기물(방폐물)도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원전 내 임시로 마련된 고준위 방폐물 저장시설이 머지 않아 포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별도의 저장시설 마련은 지역 반발에 부딪힌 상태라 원전 가동률 증가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원전 발전의 절대량과 국내 발전량 가운데 원전 비중은 모두 높아지는 중이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11월 말 기준으로 누적 원전 전력거래량은 15만2985기가와트시(GWh)로 전체 전력거래량 가운데 30.6%를 차지했다. 7년 만의 최고치다. 2017년 이후 다시 30%대를 회복한 것이다.
게다가 올해 12월 들어 한파와 폭설이 이어지면서 전력수요가 크게 늘었다. 23일에는 역대 겨울 전력수요 최대치인 94.5기가와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원전 폐기물 저장시설이 당초 예상보다 더 빨리 포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특히 고리 원전은 1978년 국내 최초로 상업운전을 시작한 만큼 다른 원전보다 저장시설 확보 문제가 시급하다.
2022년 6월 기준으로 고리 1호기 내 저장시설은 이미 꽉 찬 것으로 파악됐다. 원자로별 포화도는 고리 2호기 93.6%, 고리 3호기 95.7%, 고리 4호기 93.7% 등이다.
고리 원전보다 상업운전이 늦게 시작된 원전들 역시 시설 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저장시설의 포화도가 심각한 수준이다.
원전별 포화도를 보면 한울원전은 82.5%, 한빛원전은 74.9% 신월성원전 62.9% 등이다.
정부는 2021년 12월 '제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통해 각 원전의 포화 예상 시점을 고리·한빛 원전 2031년, 한울 원전 2032년, 신월성 원전 2044년, 새울 원전 2066년 등으로 전망했다.
이에 산업통상자원부는물론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국회 등 관련기관들은 전방위적으로 기존 고리 원전 내 저장시설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1일 산업통상자원부의 2023년 주요 업무계획을 보면 정부는 고준위 방폐물 관리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특별법 제정을 추진한다. 또, 부산시 기장군 고리원전 내에 한시 저장시설 설치를 위한 설계발주도 추진한다.
저장시설을 새로운 위치에 지으려면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은 만큼 기존 고리원전 내에 마련된 임시 저장시설을 확장해서 우선 대응하겠다는 의도로 읽힐 수 있다.
국회에도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를 위한 특별법안 3건이 제출돼 있다.
국민의 힘 이인선 의원과 김영식 의원은 8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및 유치지역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과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 등에 관한 특별법안’을 각각 대표 발의했다.
이에 앞서 지난해 9월 더불어민주당의 김성환 의원은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한수원은 ‘고리 사용후핵연료 건식 저장시설 건설 기본계획안’의 이사회 의결을 추진하고 있다.
황 사장은 올해 10월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고리원전에 임시 건식저장시설 설치를 빨리 해야 한다”며 “이 과정에서 주민 수용성 확보에도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를 비롯해 한수원, 국회 등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저장시설 확보에 속도전 양상을 보이는 것은 그만큼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 문제가 미룰 수 없을 정도로 시급해졌기 때문이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올해 8월26일 경북 경주 한국원자력환경공단에서 열린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2단계 표층처분시설 착공식’에 참석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원전의 혜택을 누린 현재 세대의 의무이자 책임”이라며 “고준위 방폐물 처분시설 확보를 더는 미루면 안 된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 기조와
황주호 한수원 사장이 국정감사를 통해 고리 원전 내 건식저장시설 설치를 공식화한 만큼 관련 안건은 내년에는 의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있다.
그러나 고리 원전이 위치한 부산·울산 지역과 지역구 의원들이 반대의사를 드러내고 있어 내년에도 안건 의결이 지체되거나 무산될 가능성은 배제될 수 없다.
21일 KBS에 따르면 부산·울산 지역 국회의원 대상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가운데 절반 이상인 7명이 '방사성폐기물 저장시설 확보'에 반대 혹은 조건부 반대 의견을 내놨다.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