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금융당국이 시중은행을 향해 수신금리 경쟁 자제를 당부하면서 시중은행의 예금금리 인상 흐름이 한순간에 멈춰 섰습니다.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은 10월만 해도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에 맞춰 앞다퉈 예금금리를 올렸는데 지난주 금융통화위원회 이후에는 기준금리가 오른 지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서로 눈치만 살피고 있습니다.
 
[백브리핑] 낮아지는 시중은행 예금금리, 대출금리는 왜 내리지 않나요

▲ 금융당국의 수신금리 경쟁 자제 당부에 따라 시중은행의 예금금리 인상 흐름이 멈췄다. 사진은 29일 서울 시내 한 시중은행에 걸린 정기예금 금리 안내문. <연합뉴스>


최근 5%대 시중은행 정기예금상품이 크게 줄면서 실질적으로 예금금리가 거꾸로 가고 있다는 기사도 많이 보이는데요.

시중은행의 예금금리가 내려갔다면 대출금리도 낮아지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그런 움직임은 보이지 않습니다.

30일 은행권 관계자의 말을 종합해보면 앞으로도 시중은행의 대출금리 인하는 쉽사리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내년까지도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이 예고돼 있기 때문입니다.

15일 은행연합회에 공시된 10월 신규 취급액 기준 코픽스(자금조달비용지수)는 3.98%로 2010년 관련 제도 도입 이후 가장 높이 올랐습니다.

코픽스(COFIX, Cost of Funds Index)는 시중은행의 자금 조달금리를 가중평균해 산출한 값, 즉 은행의 조달비용입니다. 주택담보대출과 전세자금대출 등 기존 변동형 대출상품 고객의 금리를 재산정할 때 기준이 됩니다.

문제는 코픽스가 앞으로도 계속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는 겁니다.

코픽스는 시중은행이 실제 취급한 정기예금과 정기적금, 상호부금, 주택부금, 양도성예금증서, 환매조건부채권매도, 표지어음매출, 금융채 등 8개 수신상품의 금리를 바탕으로 산출합니다.

금융당국의 당부에 따라 예금과 적금금리가 지금과 비슷한 수준을 한동안 유지한다 해도 기준금리 인상으로 다른 항목들이 상승하면 코픽스는 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시중은행이 대출상품에 적용되는 가산금리를 내린다면야 대출금리가 낮아질 수도 있겠지만 이 역시 가능성 높은 일은 아닙니다. 시중은행이 수익성 일부를 포기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어찌 보면 지금은 시중은행 입장에서 수익성을 확대하기 좋은 시점일지도 모릅니다.

금융당국의 개입으로 수신금리 인상이 억제된 상황에서 기준금리가 계속 오르며 대출금리 상승이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예금과 대출금리 차이에서 발생하는 예대마진은 시중은행의 핵심 수익원입니다.

국내 시중은행이 매년 치열하게 순이익 다툼을 하는 상황에서 아무런 동기 없이 자발적으로 가산금리를 내리면서까지 이익 일부를 포기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는 얘기죠.

국내 가계 대출금리는 현재 상당히 높은 수준입니다.

한국은행의 ‘금융기관 가중평균금리’ 자료를 보면 10월 예금은행의 신규 취급액 기준 가계 대출금리는 평균 5.34%를 보였습니다. 10년 사이 가장 높습니다. 2020년 10월 2.64%와 비교하면 2년 사이 2배 넘게 올랐습니다.

그만큼 가계의 이자 부담이 늘어났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현재 예금금리도 상당히 높은 수준까지 올라왔습니다.

10월 예금은행의 저축성 수신금리 평균은 4.01%로 집계됐습니다. 올해 1월 만해도 1.65%였는데 1년도 채 안 되는 사이 2배 넘게 뛰었습니다.

하지만 가계의 이자 혜택이 늘어났다는 얘기는 잘 안 보입니다.

기본적으로 예금과 대출상품은 고객 군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금상품은 묻어둘 돈이 있는 고객, 대출상품은 써야 할 돈이 없는 고객이 이용합니다.

예금금리와 대출금리가 동시에 오르면 돈이 있는 사람은 이자 혜택을 볼 수 있겠지만 돈을 빌린 사람은 이자 부담만 커집니다.

이는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이 궁극적으로 부익부 빈익빈 상황을 가속화한다는 주장의 주요 근거이기도 합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28일 기자들과 만나 시장 개입이라는 비판에도 시중은행에 수신금리 인상을 자제하도록 당부한 것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지금은 극히 예외적 상황이다.”

시중은행으로 시장의 자금이 빠르게 몰리는 ‘극히 예외적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수신금리 인상 흐름에 제동을 걸었다는 겁니다.

시중은행에 유동성이 쏠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은행의 유례없는 6연속 기준금리 인상으로 금융소비자의 이자부담이 급속도로 커진 것도 정상적 상황처럼 보이진 않습니다.

이복현 원장은 당시 기자들에게 “(시장 개입 등의) 비난을 받더라도 금융당국이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시장의 유동성 흐름을 제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금융소비자의 치솟는 이자부담을 줄이기 위해 시중은행의 대출금리를 적절히 제어하는 것도 결국 금융당국의 역할일 겁니다.
 
[백브리핑] 낮아지는 시중은행 예금금리, 대출금리는 왜 내리지 않나요

▲ 윤희숙 진보당 상임대표가 30일 전북도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4대 시중은행의 대출금리 인하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금융당국의 직간접적 압박에 시중은행의 대출금리가 내려간 사례는 많습니다.

올해만 봐도 시중은행들은 새 정부 출범 뒤 이자장사 비판이 거세지자 새로운 예대금리차 공시제도 시행을 전후한 7월과 8월 적극적으로 대출금리를 내렸습니다.

금융소비자가 금리인하요구권을 적극 활용하는 것도 대출금리 인하를 위한 좋은 방법입니다.

금리인하요구권은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은 금융소비자가 신용상태의 개선 등이 있을 때 직접 금융사에 금리인하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합니다.

금리인하요구권이 있다는 것만 봐도 직접 챙기지 않으면 시중은행이 알아서 대출금리를 내려주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시중은행이 기준금리가 올랐다고 내 예금상품의 금리를 알아서 높여주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은행은 내년에도 금리인상 기조를 유지해 현재 3.25%인 기준금리를 내년 3.5% 이상으로 올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런 고금리시대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예상조차 쉽지 않고요.

고금리시대 예금금리든 대출금리든 꼼꼼히 챙겨 현명한 금융소비자가 돼야겠습니다.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