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채널Who] 세계적 갑부들이 소형모듈원자로(SMR)에 투자하는 이유는 뭘까?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주는 SMR 개발기업 테라파워를 세워 원전사업에 뛰어들었다. 여기에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회사를 통해 투자했다.

은둔 고수로 불리는 장덕수 DS자산운용 회장은 다른 SMR 회사인 뉴스케일에 1천억 원을 투자한 것으로 전해진다.

남들보다 뛰어난 사업감각, 투자혜안을 지닌 이들이 SMR에 투자하는 것은 분명 이유가 있다. 일단 큰 돈이 될 거라 본 것이다. 그리고 여기엔 SMR이 기존 원전의 약점들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이 깔려있다.

한편에서는 SMR이 기존 원전의 약점을 충분히 극복하지 못했다는 반론도 나온다. 그래서 아직 덜 싸고 덜 깨끗한 SMR을 보완하기 위해 많은 기업들의 연구개발 경쟁이 이뤄지고 있다.

과연 어떤 기업이 SMR 대격전의 승자가 될까? 그리고 SMR에서 자주 거론되는 한국 기업 두산에너빌리티는 여기서 어떤 기회를 얻게 될까?

SMR은 출력기준으로 300MW 이하인 소형원전을 모듈형으로 만들었다는 뜻이다. 핵심기기인 증기발생기, 펌프, 노심, 핵연료 등을 하나의 원자로 용기에 담아 일체화하는 방식으로 최대 80%까지 공장에서 제작할 수 있다.

원전을 떠올릴 때 커다란 돔 형태의 격납건물과 함께 그 주변으로도 상당히 큰 규모의 건물들이 에워싸고 있는 것이 연상된다. 실제로 원전에 가보면 생각했던 것보다 그 규모가 더 크다.

이런 원전을 지으려면 당연히 공장이 아닌 건설현장에서 대부분의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이 작업 중 상당 부분이 공장에서 양산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고 가정하면 시간과 부지를 아낄 수 있고 비용도 낮출 수 있다.

그래서 경제성 측면에서 SMR이 기존 대형 원전보다 필요 부지가 적고 건설기간이 단축된다는 점, 공장 대량생산을 통해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여기엔 함정이 있다. 지금 가동되는 원전이 대형화된 것은 분명 이유가 있다. 크게 지어야 출력 기준으로 경제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에너지 출력 기준으로 본다면 원전이 작아질수록 kW당 건설단가는 오히려 상승한다. 섣불리 경제성을 장점으로 내세우는 데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래서 대량생산 체제를 구축하고 기술개발을 통해 단가를 꾸준히 낮출 필요가 있다. 이 때문에 시장 선점이 중요하다. 아직 기술표준이 없는 상황에서 여러 개발사들이 제각기 고유한 SMR 모델을 만들고 있는데 대량 양산체제를 구축한다는 것은 개발경쟁에서 소수만 생존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경제성보다 중요할 수 있는 부분이 안전성과 친환경성이다.

기존 원전이 핵심설비가 배관으로 연결된 구조라 사고가 나면 연결부위 방사능 유출 위험이 있는 반면 SMR은 한 압력용기에 핵심설비가 담겨 있어 방사능 유출 위험이 줄어든다. 사고가 났을 때 인간의 개입 없이 자연 순환 냉각으로 안전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도 안전성 측면의 강점이다.

SMR의 안전성 기준은 10억 년 만에 한 번의 노심 손상인데 기존 대형 원전 기준 10만 년의 한 번과 비교하면 1만 배 안전하다고 볼 수도 있다.

다만 핵폐기물 문제는 SMR의 친환경성에 의구심을 품게 하는 대목이다.

기존 원전보다 출력 기준으로 최대 30대 더 많은 핵폐기물이 생산되는 것으로 파악되기 때문이다. 탄소배출 측면에서 친환경이라 하더라도 탄소보다 더 고약한 핵폐기물이 남는다면 이걸 친환경이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런 여러 약점들을 보완한 업그레이드 버전이 4세대 원자로를 적용한 모델도 개발되고 있다. 3세대 원자로가 경수로형 모델인데 반해 4세대 원자로는 우라늄 자원 이용률을 높여 핵연료 사용을 줄일 수 있고 경수로보다 고온 운전이 가능해 열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경제성, 안전성, 친환경성 측면에서 한 단계 위인 셈이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주의 테라파워가 개발하는 소듐냉각고속로, 미국 엑스에너지의 고온가스로 등이 그런 4세대 원자로다.

고민스러운 부분은 상용화 시기 측면에서 기존 3세대 경수형 SMR이 가장 앞서있다는 점이다. 4세대 SMR이 어느 시점에 유의미한 상용화가 이뤄질지, 4세대 SMR 가운데 어떤 방식이 대세가 될지 예단하기 쉽지 않다.

그런데 이 부분이 한국 기업 두산에너빌리티의 가치가 돋보이는 지점이다. 국내 유일의 원전 주기기업체로서 제조역량이 빛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밸류체인에서 가장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부분은 개발과 설계 분야겠지만 앞서 얘기했듯 다양한 방식이 제각각 개발되고 있는 상황이다. 아직 어느 누가 시장을 선점할지, 누가 살아남아 대세가 될지 불확실한 부분이 있다.

반면 주기기 제조부문은 범용성이 크다는 장점이 있다. 진입장벽도 높은 편이다.

두산에너빌리티의 경쟁력은 40년 동안 원전 기기 기술력과 노하우를 인정받은 데서 확인된다. 한국, 미국, 프랑스, 중동 등에서 원전 건설에 참여하며 입지를 다졌다. 높은 품질, 납기 엄수 등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주기기 부문 최고로 인정받고 있다.

원전 주기기는 대형원전이나 SMR이나 원리가 비슷해 모두 적용할 수 있다.

원전에서 안전성 만큼 중요한 게 없기 때문에 고객사들의 신뢰는 두산에너빌리티의 큰 자산이다.

두산에너빌리티의 경쟁력은 소재 개발 능력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원자로 제작에 들어가는 주단소재를 실제 제작할 능력을 지니고 있다. 주단소재는 원자력 대형 압력용기를 구성하는 단조 금속 소재다.

세계에서 주단공장을 보유한 원자로 제작업체는 두산에너빌리티가 유일한 것으로 파악된다.

SMR 개발에 미국 업체들이 앞서 있는데 미국 등 선진국이 왜 주기기나 기자재 공급을 남의 나라에 맡기느냐는 의문이 나올 수 있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의외로 원전 밸류체인이 다소 취약하다.

우리나라에서 탈원전 정책으로 원전 밸류체인이 무너졌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하지만 미국의 탈원전 역사는 우리보다 훨씬 길다. 미국은 1979년 실제 원전 사고를 국내에서 경험했다. 이후로 오랜 기간 원전 건설이 중단됐고 그 결과 공급망이 약해졌다.

미국이 원자력 발전을 재개하면서 중국, 러시아와 원전 주도권 경쟁을 하는 단계에서 한국과 원전 동맹을 맺은 게 이런 이유 때문이다.

현재 원전 주기기 제작이 가능한 나라는 한국 프랑스, 일본 스페인 캐나다 정도다. 두산에너빌리티가 국내 유일 주기기업체인 만큼 앞으로 기업가치가 더 오를 수 있다.

SMR에서 여러 개발사들이 두산에너빌리티와 협력하고 있는 것도 두산에너빌리티의 이런 가치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두산에너빌리티는 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전력기술 등이 참여하는 혁신형 SMR, i-SMR 개발에서 핵심설비 쪽을 담당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국 뉴스케일의 SMR 핵심 기자재 납품업체이기도 하다. 현재 뉴스케일은 SMR 상용화에 가장 앞서 있다고 평가된다.

뉴스케일은 미국 최초로 원자력규제위원회로부터 설계 인증을 받았고 SMR 건설계획이 비교적 구체적이다. 2025년에 착공해 2029년 운전을 시작하고 2030년 상용화한다는 목표다.

i-SMR이나 뉴스케일의 SMR은 경수형 방식인데 두산에너빌리티는 이뿐 아니라 4세대 원자로 방식의 SMR 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미국 엑스에너지는 비경수형인 고온가스로 방식의 SMR을 개발하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가 여러 개발사들의 프로젝트에 핵심 기자재 업체로서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앞으로 SMR을 향한 관심이 늘어날수록 두산에너빌리티의 일감이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제 막 상용화 단계로 가고 있는 SMR. 개발사들의 사업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구조인데 반해 두산에너빌리티 같은 핵심 기자재 공급업체의 사업은 리스크는 훨씬 적으면서 리턴은 제법 괜찮은 구조라 할 수 있다.

앞으로 어떤 원자로 기술이 SMR을 주도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에너지 관련 기업이나 정부, 투자자 모두 시장 형성을 지켜보며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

미래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SMR 개발 경쟁 속에서 어쩌면 을의 위치인 두산에너빌리티의 입지가 더 안정적일 수도 있다.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