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인재(人災). 사람의 잘못으로 벌어진 재난이다.

최근 산업재해와 화재, 그리고 다중밀집사고까지 크고 작은 인재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대한민국의 안전에 비상이 걸렸다. 특히 최근의 대형사고는 사전에 준비하고 기본적 대처만 잘 했더라도 사고를 막거나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실망과 분노를 감추기 어렵다. 
 
사고공화국 대한민국, 인재(人災)를 막을 인재(人材)가 필요하다

▲ 윤애숙 커리어케어 브랜드 매니저.


언제나 사고가 발생한 이후에는 책임자를 찾는다. 책임자에 대한 문책과 처벌은 재발방지를 위해 필요하지만 이미 벌어진 사고를 되돌릴 수 없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사후약방문에 불과하다.

게다가 사고의 책임자로 지목된 이들이 제대로 책임질 수 있는 이들인지도 의문이 든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서 국내 주요 기업들은 일제히 최고안전책임자(CSO)를 임명했다.

CSO는 사고예방을 위해 근로자와 시설 및 자산의 안전과 보안을 담당하는 안전보안 관리 총책임자다. 기업들은 안전보안에 전문성이 없는 최고경영자(CEO)를 대신해 CSO를 선임하고 있다. 

그런데 CSO로 선임된 이들의 이력을 보면 안전이나 보안에 전문성을 갖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노사 전문가나 경제관료 출신의 통상 전문가, 인사 전문가와 같은 명함이 더 어울린다.

어떤 경우는 CSO가 안전보안 업무만 하는 게 아니라 최고재무책임자(CFO) 등을 겸직한다. "중대재해가 발생할 때 법적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 CSO를 형식적으로 내세우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 안전과 보안 분야의 전문가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영향으로 제조기업뿐만 아니라 물류플랫폼기업 같은 곳에서도 안전관리자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건설기업들은 주요 현장에 안전관리자를 배치하기 시작했고 화학기업들도 산업재해뿐만 아니라 환경오염 방지를 위해 안전관리자 채용을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안전보건 분야의 인재배출 시스템은 미약하기 그지 없다. 체계적 교육훈련 과정을 통해 이른바 '안전통'을 길러 내려면 절대적 시간이 필요한데 우리나라는 이제 막 교육훈련을 위한 투자를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때문에 헤드헌팅회사들도 기업들의 후보자 추천 요청에 대처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다. 경험이 많은 베테랑 헤드헌터에게도 안전관리 전문가 찾기는 상당히 난이도가 높은 프로젝트다.

제대로 된 안전관리자를 구하기가 어렵다 보니 기업들도 안전과 보안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전문가보다는 중대재해처벌법 대응 수준의 담당자를 확보하는데 급급하다. 

우리나라는 고용노동부 산하기관인 안전보건공단과 산업안전보건교육원에서 안전보건교육을 실시한다. 교육방법은 대부분 이론 주입식 교육으로 이루어진다. 교육기관과 교육내용, 교육방법 모두 선진공업국에 비해 한참 뒤떨어져 있다. 

미국은 산업안전보건청(OSHA)에서 안전보건업무를 총괄한다. 산업안전보건청에서 사업장 감독, 사업주 교육 또는 교육관련 컨설팅업무를 수행한다. 근로자에 대한 직접 교육은 OSHA가 지정하는 OSHA 교육센터, 민간교육기관, 사업장 자체교육의 3가지 형태로 이뤄진다.

영국은 보건안전청에서 산업안전보건법을 집행하지만 안전보건교육을 직접적으로 실시하지는 않는다. 영국의 대표적 민간교육기관으로 산업안전보건협회(IOSH)와 국립산업안전보건평가원(NEBOSH)이 있다. 이 두 기관에서 발급하는 자격증은 국제 산업안전 자격증으로 공인돼 있다. 

독일은 연방과 주정부의 교육담당부서에서 안전보건교육관련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한다. 직접적인 교육은 산재보험조합에서 수행한다. 정부에서 산재보험조합 교육센터를 설립해 전문적 실습형 교육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안전을 위한 노력은 지속적으로 해 나가야 한다. 안전에는 끝이 없다." 대한항공 창사 이래 첫 외국인 부사장으로 임명된 해리 데이비드 그린버그가 2002년 4월 국내 언론사와 인터뷰 중 한 말이다.

괌 추락사고 등 잇따른 대형사고로 '사고 항공사'라는 불명예를 갖게 된 대한항공은 이미지 쇄신과 안전관리 체계 재정비를 위해 전격적으로 그린버그를 영입했다. 그는 27년 동안 미국 델타항공에서 운항안전을 담당했으며 대한항공으로 옮기기 직전에는 항공컨설팅업체 컴패스그룹의 사장을 지냈다. 

그린버그는 장비와 인력, 훈련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대한항공의 안전 프로그램을 바꿔놓았다. 그 결과 대한항공은 안전문제로 협력관계가 끊어졌던 델타항공 및 에어프랑스와 코드쉐어를 복원했으며 항공 운항 안전에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첫 외국인 임원 영입은 대한항공 입장에서 꽤나 부담스러운 파격적 결정이었다. 그러나 이 결정을 통해 대한항공은 안전 항공사로 이미지를 쇄신했고 매출증가를 덤으로 얻었다. 

안전 관리에 전문성이 있는 인재를 과감히 영입하고 그에게 안전과 보안 체계를 재편할 전권을 준다면 지금과 같이 인재가 반복되는 일은 줄어들 것이다.

더 이상 사후약방문만 써서는 안 된다. 국가 차원에서 안전보안 전문 인력을 키워내기 위한 시스템을 갖추고 기업들도 형식적 담당자가 아닌 진짜 전문가를 과감히 영입해야 한다. 윤애숙 커리어케어 브랜드 매니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