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뱅크 ARM ‘낙동강 오리알’ 신세, 삼성 SK 외면하고 상장도 불투명

▲ 일본 소프트뱅크의 ARM 지분 매각 및 상장 계획이 모두 불투명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손정의(마사요시 손) 소프트뱅크 회장.

[비즈니스포스트] 손정의(마사요시 손) 회장이 이끄는 일본 소프트뱅크가 반도체 자회사 ARM 지분 활용방안을 두고 뚜렷한 묘안을 내놓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주요 반도체기업의 지분 인수 가능성은 사실상 무산됐고 미국증시 상장 계획도 여러 악재에 부딪혀 강행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2일 야후파이낸스 보도에 따르면 소프트뱅크의 기업가치가 앞으로 ARM 지분의 잠재적 가치에 따라 큰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투자기관 맥쿼리캐피털은 “소프트뱅크의 ARM 인수는 긍정적 성과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다”며 “반도체주 가치가 전반적으로 하락한 상황에도 잠재력에 주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손정의 회장은 2016년 320억 달러(약 45조 원)에 ARM을 인수한 뒤 엔비디아에 지분 매각을 시도했다. 그러나 주요 경쟁당국의 독점금지 심사에 부딪혀 매각이 무산됐다.

소프트뱅크는 이후 ARM의 미국 또는 영국증시 상장을 추진하고 있었지만 올해 초부터 기술주를 중심으로 전 세계 증시가 악화하며 신규 상장이 쉽지 않은 환경이 펼쳐졌다.

그동안 ARM 지분 활용방안을 두고 다양한 시나리오가 거론되어 왔다. 미국 퀄컴과 SK하이닉스, 인텔 등 주요 반도체기업이 ARM 지분 공동인수 등 가능성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계획은 최근 들어 백지화 단계에 가까워진 것으로 파악된다.

SK하이닉스는 최근 ARM 공동인수를 추진하지 않고 있다는 공시를 냈다. 상반기까지만 해도 공동인수 등 다양한 전략적 방향을 검토 중이라고 했지만 입장을 완전히 선회한 셈이다.

손 회장이 최근 한국을 방문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사업 협력을 논의했을 때도 삼성전자가 ARM 지분을 일부 인수하거나 다른 반도체기업과 공동인수를 추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그러나 손 회장과 이 회장은 ARM 인수와 관련한 내용을 논의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퀄컴과 인텔 등 해외 반도체기업도 최근 들어서는 ARM 지분인수 계획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전 세계 주요 반도체기업에 설계기반(아키텍쳐) 및 기술을 제공하는 ARM 특성상 독점금지규제를 피하려면 세계 여러 반도체기업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공동 인수를 추진해야만 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최근 행보를 볼 때 이런 가능성은 매우 낮아진 것으로 보인다.

소프트뱅크는 내년 초를 목표로 ARM 상장 작업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ARM이 성공적으로 기업공개를 이뤄내 사업 운영자금을 충분히 조달하는 일도 어려워졌다.

미국 등 세계 경기침체 발생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증시가 단기간에 회복세에 오르기 쉽지 않고 따라서 ARM이 소프트뱅크에서 원하는 수준의 기업가치를 인정받기도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더구나 ARM의 근본적 사업 경쟁력도 최근 들어 불안해지면서 상장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악재가 겹치고 있다.
 
소프트뱅크 ARM ‘낙동강 오리알’ 신세, 삼성 SK 외면하고 상장도 불투명

▲ ARM의 반도체 설계기술 안내.

블룸버그에 따르면 ARM의 주요 고객사인 퀄컴은 ARM을 상대로 법정공방에 힘을 싣고 있다.

ARM은 퀄컴이 반도체 신생기업 누비아를 인수하면서 ARM과 맺은 계약 조항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며 최근 퀄컴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퀄컴은 ARM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적극적으로 맞대응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핵심 고객사 가운데 한 곳인 퀄컴과 ARM의 소송전이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드는 일은 자연히 사업 불확실성을 높여 상장에 불리한 요소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퀄컴과 애플 등 주요 고객사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ARM의 반도체 설계기반을 활용하지 않는 신기술을 차세대 반도체에 적용하려 시도할 수 있다는 전망도 고개를 들고 있다.

결국 ARM과 퀄컴의 법정공방이 이른 시일에 원만하게 해결되지 않는다면 자연히 상장 계획을 예정대로 추진하기도 어려워질 공산이 크다.

소프트뱅크는 최근 기술 투자펀드 ‘비전펀드’를 통해 투자한 IT기업들의 주가 급락으로 대규모 손실을 보면서 역사상 최악의 적자를 기록하는 등 위기상황에 놓이고 있다.

ARM 지분 매각이나 상장을 통한 자금 조달 계획마저 현실화되기 어려워진다면 재무구조가 더욱 악화하고 자연히 ARM의 연구개발 투자 축소와 기술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파이낸셜타임스 등 외국언론에 따르면 ARM의 미래를 우려한 핵심 기술인력이 회사를 떠나는 사례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결국 ARM도 소프트뱅크의 실패한 투자 사례 가운데 하나로 남으면서 손 회장에 부담을 더욱 키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 IT전문지 더레지스터는 “퀄컴과 소송전 등 최근 상황은 소프트뱅크의 ARM 지분 활용 시도에 불확실성을 더하고 있다”며 “미래 사업과 상장 계획에 모두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