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최근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SPC그룹이 운영하는 브랜드를 정리한 목록이 공유되고 있다. 브랜드 홍보가 아닌 SPC그룹에서 판매 중인 상품의 불매운동 동참을 호소하는 행위다.
불매운동을 지지하는 소비자들은 "불매운동 고고" "이게 사람이 할 처사인가" "이 기회에 포켓몬빵도 단종되길"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 SPC그룹의 계열사 SPL의 제빵공장에서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파리바게뜨, 던킨 등 SPC그룹 브랜드 불매운동 조짐이 일어나고 있다. SPC그룹 본사 |
SPC그룹 계열사 SPL의 생산공장에서 가족을 홀로 부양하던 20대 노동자 1명이 교반기(소스배합기)에 끼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소비자들의 반감은 커지고 있다.
SPC그룹 향한 불매운동은 처음이 아니다. 이미 과거에도 여러 차례 벌어졌다.
올해 6월 파리바게뜨 제빵기사들의 열악한 처우에 항의하는 청년단체 63곳이 모여 불매운동을 선언하기도 했다. 2016년에는 계란 가격이 폭등하자 회사가 직원들에게 계란을 구매하도록 지시한 이른바 ‘계란 사재기’에 분노한 소비자들이 등을 돌리기도 했다.
이번에 SPL 생산공장에서 발생한 노동자 사망사고가 소비자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키게 된 것은 단순히 희생자의 안타까운 사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어린 노동자가 목숨을 잃은 것도 가슴 아픈 일이지만 단순한 사고가 참변으로 이어진 이유가 SPC그룹의 산업안전 의식과 안전 인프라가 겉치레에 불과했기 때문이란 사실이 드러나 안타까움이 더하다.
사고는 같이 작업하던 동료 직원이 자리를 비운 사이 일어났다. '2인 1조 작업'이라는 안전수칙이 형식적으로만 지켜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사고 발생 시 기계 작동을 멈추게 하는 안전장치는 일부에만 설치되는 등 안전 관련 시설도 미흡했다는 사실이 직원들의 입을 통해서 밝혀졌다.
SPC그룹은 올해 2월 기업의 안전문화를 정착시킨다며 식품·산업 안전문화 태스크포스(TFT)를 발족시켰다. 또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으로부터도 2016년에 받은 안전경영사업장 인증도 2차례나 연장 받았지만 사망사고를 막지 못했다.
사고 이후 보인 SPC그룹의 태도는 한숨마저 나온다.
사고가 발생한 다음 날인 16일 SPC그룹은 파리바게뜨의 영국 현지 1호 매장 오픈 소식을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알려 빈축을 샀다.
파리바게뜨로서는 영국 시장의 교두보 마련이란 성과를 자축할 만도 하지만 당시 노동자 사망사고로 여론의 시선이 따가웠던 상황을 고려해 발표 시점을 미루는 등 다른 선택이 필요했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허영인 SPC그룹 회장 명의의 사과문 발표는 17일 오전에서야 나왔는데 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지난달 26일 발생한 현대프리미엄아울렛 대전점 화재사고 당시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은 당일 현장을 찾아가 사과문을 발표하는 등 발 빠른 대처를 보여줬다. 다수의 인명 피해가 발생한 사고였지만 현대백화점그룹을 향한 소비자들의 불매운동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SPC그룹의
사고현장 수습 및 공장 재가동 과정은 고인과 함께 일했던 동료들에게도 상처를 안겼다.
동료의 시신을 교반기에서 꺼내고 못 쓰게 된 반죽을 치운 게 SPL 공장 노동자들이다. 사고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동료 노동자들은 바로 다음 날부터 사고가 발생했던 배합기 옆에서 작업을 해야만 했다.
불매운동에 나선 소비자들이 ‘피 묻은 빵’이라는 구호를 외치게 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24일 강동석 SPL 대표이사를 국정감사 증인으로 소환한다.
허 회장은 ‘그레이트 푸드 컴퍼니(Great Food Company)’라는 비전을 내세워 SPC그룹을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시키는 꿈을 꾸고 있다.
하지만 가장 기본이 돼야 할 산업안전 의식의 변화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가치소비'에 민감한 해외 소비자들로부터 SPC그룹이 외면받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미 올해 6월 프랑스 파리에서는 파리바게뜨 2호점 앞에 모인 현지인들이 파리바게뜨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SPC그룹은 이번 사고를 교훈 삼아 그동안 수면 아래에 가려졌던 취약점들을 개선하고 비전에 걸맞는 노동환경과 사고대처능력을 갖추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신재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