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영, 삼성중공업 유상증자 카드 언제 꺼내나  
▲ 박대영 삼성중공업 사장.

삼성중공업이 수주가뭄으로 유동성 위기의 빨간불이 켜지고 있다.

박대영 사장은 자구안에 마지막 카드로 유상증자를 마련해 놓고 있는데 이 카드를 꺼내들 시기가 예상보다 빨리 다가올 수도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유상증자에 참여할지도 주목된다.

◆ 유동성 위기 가능성

18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중공업이 올해 유동성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해양플랜트 설비의 인도지연 및 계약취소가 이어지고 있는데다 선박의 수주공백 기간도 길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중공업이 보유한 해양플랜트 수주잔량은 5월 말 기준으로 모두 21기, 196억 달러에 이른다. 전체 수주잔량의 65%를 차지한다.

박대영 사장은 애초 올해 하반기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주요 해양플랜트를 인도해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셸로부터 수주한 프리루드 FLNG(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생산·저장·하역설비)의 출항시기가 올해 9월에서 내년 4월로 연기됐다. 4월에는 47억 달러 규모의 호주 브라우즈 가스전 FLNG계약이 해지되기도 했다.

박 사장은 유동성 위기에 대비해 단기차입금의 만기를 연장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최근 삼성중공업이 빌린 1500억 원 규모의 단기차입금의 만기를 연장하는 대신 대출기간을 기존 1년에서 3개월로 축소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KB국민은행도 삼성중공업에 대한 단기차입금 1천억 원의 만기를 연장해 줬다.

강승균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시중은행들이 삼성중공업의 신용등급이 계속 내려가는 상황에서 단기차입금을 연장해주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다”며 “운전자금 등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 사장은 15일 임직원들에게 자구안을 설명하면서 “수주물량의 계약취소와 인도지연 등으로 올해 추가로 필요한 자금이 약 4조 원”이라며 “1조 원은 자산매각과 사내유보금으로 충당 가능하지만 나머지 3조 원은 추가 여신이 불가피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 마지막 카드, 유상증자

박 사장은 자구안에 마지막 카드로 유상증자를 마련해 놓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자구안에 “현재 재무상황에서는 유상증자의 필요성이 크지 않지만 불확실한 경영 여건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향후 유상증자를 추진하겠다”며 “증자 규모와 시기 등은 경영진단 결과와 회사의 자금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뒤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중공업은 3월 말 기준으로 보유하고 있는 현금 및 현금성자산이 1조887억 원 규모인 반면 내년 3월까지 갚아야 하는 단기차입금 규모가 모두 2조9442억 원이다.

수주공백이 길어지고 자산매각도 시간이 필요한 만큼 유동성 위기에 대비해 자본확충을 위한 유상증자는 불가피하다고 증권가는 분석한다.

김현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중공업이 내년까지 회사채 6천억 원의 만기가 도래하는 점과 저유가로 해양플랜트 설비 인도가 지연될 가능성 등을 고려하면 1조 원 가량의 자본확충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삼성중공업은 3월 말 기준으로 자본 5조1555억 원, 부채 13조1093억 원으로 부채비율이 254.3%에 이른다. 1조 원의 유상증자가 이뤄지면 부채비율은 213%로 낮아진다.

박 사장은 현재 진행하고 있는 경영진단 결과에 따라 6월 안에 이사회를 소집한 뒤 유상증자에 필요한 정관변경 등 사전 작업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박대영, 삼성중공업 유상증자 카드 언제 꺼내나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이재용, 유상증자에 동참하나


유상증자에는 세 가지 방식이 있다. 일반공모방식과 주주배정방식, 제3자배정방식이다.

일반공모방식은 해당 기업의 주주가 아닌 일반인 모두에게 기업공개를 진행하듯이 주식을 공모하는 방법으로 기존 주주들의 주식가치가 희석된다.

제3자배정방식은 경영진과 이해관계가 있거나 특수한 제3자를 대상으로 유상증자를 하는 것으로 지배구조에 큰 변화가 생긴다.

이와 비교해 주주배정방식은 기존 주주들에게 새로 발행하는 주식의 인수권을 지분 비율에 따라 배정해 증자를 하는 방법으로 기존 주주들의 증자 참여율이 높으면 지배구조에 큰 변화가 없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삼성그룹이 삼성중공업의 지배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주주배정방식의 유상증자를 진행할 가능성이 크다. 올해 초 유상증자를 한 삼성엔지니어링도 주주배정 후 실권주 공모방식을 선택했다.

문제는 주주배정방식으로 유상증자를 추진할 경우 삼성중공업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삼성그룹 계열사 주주들이 반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삼성중공업의 최대주주는 삼성전자로 지분 17.62%를 보유하고 있다. 삼성생명(3.38%)과 삼성전기(2.39%) 등 삼성그룹 계열사의 지분과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지분까지 합하면 모두 24.09%에 이른다.

삼성중공업이 최소 1조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진행한다고 가정하면 삼성전자가 배정받는 신주는 모두 1762억 원 규모가 된다. 초과청약분 20%까지 감안하면 2114억 원이다.

조선업이 불황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삼성중공업에 2천억 원이 넘는 자금을 지원하는 데 대해 삼성전자 주주들의 반응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책임경영을 강조하며 사재를 내놓고 유상증자에 동참할 가능성도 있다.이 부회장은 삼성엔지니어링이 유상증자를 추진할 당시 실권주가 발생하면 최대 3천억 원 규모로 증자에 참여하겠다고 밝힌 적이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와 채권단은 삼성그룹 차원에서 삼성중공업을 살리겠다는 의지를 보여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며 “삼성중공업이 유상증자를 추진할 때 이 부회장과 계열사가 적극적인 동참의지를 보인다면 유상증자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