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세계적 빅딜은 과연 성사할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만남을 놓고 시장의 관심이 뜨겁다.

손 회장과 이 부회장의 만남에서 의제의 핵심은 ARM이다. 소프트뱅크가 지분 75%를 쥔 반도체 설계자산(IP)기업 ARM을 놓고 두 사람 사이에 어떤 논의가 오갈 것인지에 시선이 쏠린다.
 
[데스크리포트 10월] 삼성전자 '5만전자 탈출'에 ARM이 계기 될까

이재용(왼쪽) 삼성전자 부회장과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만나 ARM을 놓고 어떤 논의를 할지 주목된다. 


ARM은 반도체 설계자산을 바탕으로 로열티를 받는 회사다. 특히 모바일칩(AP) 분야에서 독보적 위상을 갖고 있으며 애플, 퀄컴, 미디어텍, 삼성전자 등 세계적 기업을 고객으로 두고 있다. 

그래서 ARM은 '팹리스(반도체 설계회사) 중의 팹리스'라고 불린다. ARM이 없으면 시스템반도체 설계가 불가능하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소프트뱅크는 투자실패로 올해 2분기에만 230억 달러의 순손실을 보고 있다. 이를 메울 방안이 절실한데 ARM 지분은 주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삼성전자의 현금성자산은 125조 원에 이른다. 이를 바탕으로 삼성전자는 새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인수합병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 

더구나 이 부회장은 '2030년 시스템반도체 세계 1위'라는 목표도 세워뒀다. 그런 만큼 삼성전자의 ARM 인수 가능성을 놓고 시장에서는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최근 삼성전자 주가는 52주 신저가(5만2500원) 언저리를 맴돌고 있다. 개인투자자는 9월에만 삼성전자 주식을 2조 원 넘게 순매수하며 반등을 기대하고 있다. 

여기에는 삼성전자의 ARM 인수 가능성을 향한 기대감도 일정 부분 작용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여러 정황을 종합해볼 때 삼성전자가 ARM 단독 인수에 나설 가능성은 '0'에 가깝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세계 주요국 사이에선 최근 들어 반도체산업을 국가안보의 중요한 수단으로 보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ARM의 독보적 반도체 설계 기술력을 고려할 때 주요국의 경쟁당국이 메모리반도체 세계 1위 삼성전자의 ARM 인수합병을 승인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 

앞서 ARM 인수를 추진했던 그래픽처리장치 세계 1위 엔비디아도 주요국 경쟁당국의 승인을 얻지 못해 결국 뜻을 접어야 했다. 

더구나 ARM은 몸값이 엄청나다. 엔비디아가 ARM을 인수를 추진할 2020년 당시만 해도 몸값이 400억 달러였지만 지금은 최대 600억 달러(85조 원가량)까지도 거론된다. 

물론 삼성전자가 ARM을 사려고 든다면 못 살 것도 없다. 하지만 ARM의 로열티 매출이 한해 3조 원 안팎인 점을 고려하면 치뤄야 할 몸값이 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삼성전자가 SK하이닉스나 인텔 등과 컨소시엄을 이뤄 ARM 공동인수를 추진할 가능성도 나오지만 이 역시도 실익이 크지 않다는 시선이 많다. 사공이 많아서는 ARM의 기술력을 주도적으로 활용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결국 이 부회장과 손 회장의 만남에서 성사할 가장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로는 '혈맹 맺기를 통한 기술협력'을 꼽을 수 있다. 
 
[데스크리포트 10월] 삼성전자 '5만전자 탈출'에 ARM이 계기 될까

▲ ARM 반도체 기술 이미지.


삼성전자가 ARM의 상장에 앞서 일정 지분에 먼저 투자하고 이를 바탕으로 두 회사 사이에서 반도체 분야의 새 수요를 열어가기 위한 기술협력을 강화하는 방안이다.

인공지능, 자율주행, 빅데이터 등 분야에서 시스템반도체와 메모리반도체를 통합해 성능을 끌어올리기 위한 기술을 놓고 협력이 이뤄진다면 삼성전자와 ARM 두 회사 모두에게 '윈-윈'이 될 수 있다.

소프트뱅크로서는 기존 AP에 치우진 ARM의 시스템반도체 설계 분야를 더욱 넓히면 앞으로 상장과정에서 몸값을 높게 받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업황의 겨울에 당분간 고전이 예상되는데 ARM과 협력하면 인공지능 등에서 새로운 메모리 수요를 창출할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ARM이 반도체 설계 분야를 넓히면 삼성전자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사업 확대에도 힘이 더해질 수 있다.

이 부회장과 손 회장의 만남에서 반도체 업황의 봄을 앞당길 신기술에 관한 비전이 나온다면 삼성전자와 ARM 두 회사의 기업가치 상승에도 계기가 마련될 수 있는 셈이다.

이와 함께 소프트뱅크가 운영하는 비전펀드에서 투자한 470여 개 기업 가운데서 이 부회장과 '깜짝' 인수합병 논의가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손 회장이 비전펀드의 추가 출범이나 자본확충을 검토 중이어서 이와 관련한 인수합병 협의가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부회장과 손 회장 두 사람이 아무리 세계 IT업계의 거목이라고 해도 첫술에 배부를 수 있는 결과를 당장 내놓을 수는 없다. 

다만 두 사람의 만남에서 반도체업계 혹은 IT업계의 미래 밑그림이 그려진다면 삼성전자를 좀 더 사모아야 할 지에 관해서도 어느 정도 가늠해볼 수는 있을 듯 하다. 박창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