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구조조정과 함께 경영권 승계도 추진하나  
▲ 정몽준 전 현대중공업 회장.

현대중공업그룹이 구조조정과 함께 경영승계 작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할까?

현대중공업그룹이 3조5천억 원 규모의 자구안을 추진해 사업부 분사와 금융계열사 정리 등을 끝내면 지주회사 전환을 위한 조건이 갖춰지게 된다.

현대중공업그룹이 지주회사체제로 지배구조를 바꾸면 오너 3세인 정기선 현대중공업 전무로 경영권 승계도 한결 수월해진다.

◆ 사업부 분사, 지주회사 전환의 첫걸음인가?

17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최근 설비지원부문 분사를 추진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약 1천 명 규모의 설비지원부문을 떼어나 설비보수 전문회사로 키우려고 한다.

현대중공업그룹이 발표한 자구계획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지게차사업, 태양광사업, 로봇사업 등을 분사해 지분을 매각한다는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분사와 계열사 재편 등 사업조정으로 1조1200억 원을 확보할 것을 기대한다.

현대중공업의 사업부 분사는 1차적으로 유동성을 확보하고 경영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분사계획이 주채권은행의 자구안 요구에 따라 급하게 추진된 것이 아니라 이전부터 계획된 것으로 파악하는 시각도 있다. 권오갑 현대중공업 사장이 취임한 뒤 현대중공업은 사업부별 대표체제를 강화하며 독자생존이 가능하도록 요구해 왔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현대중공업의 분사계획이 경영승계와 무관하지 않다는 관측도 나온다. 지주회사체제를 만들어 정기선 전무에게 경영권을 넘기기 위한 발판을 다지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회사의 자구안 추진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데 사업부 분사에 경영권 승계 구상이 담겨 있다며 의심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노조는 “현대중공업 분사는 경영권 세습을 위한 재산승계와 지배구조를 원활하게 하기 위한 음모”라며 “순환출자 고리를 끊고 지주회사를 설립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재계에서 올해 기업활력제고특별법(원샷법) 8월 시행을 앞두고 현대중공업그룹의 지주회사 전환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원샷법이 시행되면 사업재편 기간에 각종 규제를 피할 수 있고 지주회사 전환작업도 한결 수월해진다.

양형모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현대중공업은 원샷법이 적용될 수 있는 대부분의 사업을 하고 있어 사업재편이 기대된다”며 “지배구조 변화와 함께 지주회사로 전환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현대중공업그룹이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하는 데 걸림돌은 순환출자와 금융계열사 2가지다. 현대중공업그룹은 현대중공업→현대삼호중공업→현대미포조선→현대중공업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로 지배되고 있다.

먼저 오너일가가 현대미포조선에서 보유하고 있는 현대중공업 지분(7.96%)을 인수해 순환출자를 해소하는 방식이 유력하게 점쳐진다. 현대중공업 주가가 떨어졌기 때문에 현대미포조선이 보유한 지분 가치도 6300억 원 수준으로 크지 않은 편이다.

금융계열사 처리는 자구계획 이행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현대중공업그룹은 현대미포조선이 보유하고 있는 하이투자증권의 매각방안을 자구안에 담았다.

◆ 현대중공업 경영일선에 나선 정기선

현대중공업그룹의 자산승계율은 0%대로 SK그룹과 더불어 30대그룹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다.

SK그룹의 경우 최태원 회장이 왕성하게 경영활동을 하고 있고 최 회장의 자녀들은 아직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반면 현대중공업그룹은 정몽준 전 회장이 물러나고 아들인 정기선 전무가 경영일선에서 뛰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의 자산승계가 더 다급해 보이는 이유다.

  현대중공업, 구조조정과 함께 경영권 승계도 추진하나  
▲ 정기선 현대중공업 전무.
정기선 전무는 미국 유학을 마치고 2013년 부장으로 현대중공업에 입사해 2년 만에 전무까지 승진했다. 현재는 선박해양영업부문 총괄부문장을 맡아 세계 선주들을 상대로 수주활동을 벌이고 있다.

정 전무는 지난해 처음으로 현대중공업 주식을 취득하며 지분을 확보했다. 올해 초에도 주식을 추가 취득하기는 했으나 두 차례 모두 상여금 명목으로 회사에서 자사주를 지급받은 것이다.

정 전무이 보유한 현대중공업 지분은 0.00074%에 그친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6천만 원 정도다. 정 전무는 아직 직접 지분매입에 나서지 않고 있다.

재계에서 조만간 현대중공업그룹도 승계작업을 시작하지 않겠느냐는 조심스런 전망을 내놓는다. 정기선 전무가 오너경영인으로서 역할을 점차 확대하고 있고 현대중공업 주가가 10년 전 수준으로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 주가는 17일 종가 기준 10만4천 원으로 2006년 7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에서 머물고 있다.  금융위기 때보다도 더 낮다.

조선업 불황으로 정몽준 전 회장의 보유 지분 가치가 떨어져 있는 지금이 지분승계의 적기라는 의견이 많다. 정 전 회장의 지분 가치는 현대중공업 주가가 최고점을 달리던 2011년 4조5073억 원이었는데 현재 1조 원도 채 되지 않는 수준으로 떨어졌다.

정 전 회장 지분을 고스란히 증여할 경우 2011년 2조 원이 넘는 증여세를 내야 했지만 지금은 4천억 원만 납부하면 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현대중공업그룹은 정기선 전무가 경영일선에 나서고 주식도 취득하면서 이미 경영권 승계의 첫 발을 뗀 것으로 보인다”며 “지분가치가 떨어지고 사업구조 개편이 불가피한 지금과 같은 기회를 놓지면 앞으로 승계작업은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