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1. 왜 인간은 거대한 건축물을 지을까. 유현준 홍익대 교수의 책 '어디서 살 것인가'에서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생존을 위한 과시를 위해서'라고 적고 있다. 

우리가 이만한 건축물을 세울 정도로 힘이 세니 함부로 덤비지 말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례는 역사에 많다. 
 
[데스크리포트 8월] 현대차가 GBC를 초고층으로 안 하는 게 좋은 이유

▲ 현대자동차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조감도.


이집트 파라오는 피라미드를 지어 이웃 바빌로니아의 침략 의지를 사전에 차단했다. 로마는 점령지에 거대 건축물을 세워 이민족들의 기를 꺾었다.

현대에 와선 초고층빌딩이 비슷한 역할을 했다. 미국은 아직 유럽에 확실한 우위를 가지지 못했던 1931년 뉴욕에 102층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지었다. 

옛 소련과 냉전이 한창일 때는 110층 쌍둥이 건물 뉴욕 세계무역센터와 110층 시카고 시어스타워를 건설했다.

하지만 미국은 소련이 붕괴한 1991년 뒤에는 100층 이상의 초고층빌딩을 짓지 않았다. 경쟁자가 사라지니 과시할 필요가 사라져서다.

미국은 심지어 빈 라덴이 비행기를 이용한 9.11 테러로 세계무역센터를 무너뜨린 뒤에도 그 자리에 그전보다 낮은 94층 건물을 지었다. 

#2. 현대자동차그룹이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지을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를 놓고 세간의 관심이 뜨겁다. 애초 계획대로 105층을 지을 지, 아니면 70층이나 50층 2~3개동으로 분할할 지에 시선이 쏠린다.

현대차그룹에선 "아직 땅파기 공사 전으로 현재 설계변경을 검토하고 있으나 확정된 내용은 없다"고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GBC 건설에 협조를 얻어야 하는 강남구에서 원안대로 초고층건물을 지어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는 점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방자치단체로서야 GBC에 현대차그룹 사무동뿐 아니라 숙박시설, 전시시설 등이 들어서는 만큼 랜드마크로서 상징성을 위해 그런 의견을 낼 수 있다.

하지만 100층 이상 초고층건물은 기술적문제뿐 아니라 항공기 고도 문제 등으로 인해 건설비용이 어마아마하게 든다. 현대차가 GBC건물 높이를 낮추면 비용을 최대 2조 원까지 낮출 수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현대차그룹은 국내외 전기차 공장 건설을 앞두고 있다. 공급망 경쟁력 강화뿐 아니라 로보틱스와 도심항공모빌리티, 자율주행 등 미래사업 투자에 앞으로 수십조 원의 재원이 필요하다. 

초고층건물은 자산가치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미래 기업가치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현대차그룹이 국내에서 가장 높은 초고층건물이라는 과시욕을 버리면 얻을 수 있는 실익이 크다.

#3. 현대차그룹이 GBC 계획을 처음 구상했던 건 2006년이다. 애초 성동구 성수동에 지으려했지만 서울시 반대로 무산됐다. 

그 뒤 2014년 삼성동 옛 한국전력 부지를 10조5500억 원을 들여 매입하며 GBC 계획을 구체화했다. 
 
[데스크리포트 8월] 현대차가 GBC를 초고층으로 안 하는 게 좋은 이유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2006년뿐 아니라 2014년까지만 해도 사실 현대차그룹은 '싼 차'를 만든다는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브랜드가치 높이기 차원에서 대외적으로 사세를 과시할 필요성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현대차그룹에서 만드는 전기차 아이오닉5와 EV6은 지난해와 올해 세계 주요 자동차매체들이 주는 상을 휩쓸다시피 했다. 

미국과 유럽시장에서 글로벌 완성차업체를 누르고 당당히 시장점유율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미국 시장에선 딜러에게 주는 판매장려금이 주요 업체들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다. 

그만큼 브랜드가치가 올라간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과거 내연기관차 시대 '패스트 팔로워(추격자)'에서 전기차시대를 맞아 '퍼스트 무버(선도자)' 위치를 점차 다져가고 있다.

정의선 회장이 이끄는 현대차그룹은 과거 정몽구 명예회장 시대와 달리 초고층건물로 사세를 과시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브랜드가치를 높였다. 

현대차그룹이 삼성동 GBC 부지를 매입했을 때 그 돈이면 글로벌 완성차업체를 인수할 수 있다는 비판이 거셌다. 다행히도 삼성동 부지 매입 뒤 토지가치가 현재 2배가량 높아졌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행운이 또다시 찾아오리라 장담할 수 없다. 현대차그룹은 현재의 자산가치가 아니라 미래의 기업가치를 초고층건물처럼 높여야 한다. 박창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