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아파트 이름을 고급스럽게 짓기 위한 ‘네이밍’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건설사의 하이엔드 브랜드로 모자라 강, 공원 등 주변 입지의 강점을 나타내는 단어를 덧붙이는 현상도 생겼다. 여기에 프랑스어, 라틴어 등 외국어를 추가로 끌어다 붙인 단지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갈수록 길고 어려워지는 셈이다. 
 
아파트 이름 갈수록 길~고 어려워져, 하이엔드 브랜드만으로는 부족해

▲ 최근 건설사들의 하이엔드 브랜드에 더해 단지의 특징을 담은 펫네임이 유행하는 등 아파트 이름을 고급스럽게 짓기 위한 '브랜드 네이밍' 바람이 거세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의 한 고가 아파트 단지.


 20일 부동산업계 사정을 살펴보면 최근 몇 년 동안 집값이 수억 원씩 뛰는 등 아파트시장이 과열되면서 단지 이미지와 가치를 높여줄 이름에 관한 관심과 요구도 커지고 있다. 

건설사들의 도시정비 수주전과 분양시장만 보더라도 세련되고 차별화한 단지명이 예전보다 훨씬 더 중요해지고 있다.

최근 아파트 브랜드나 단지명의 특징은 각종 외국어 단어들을 갖다 붙여 ‘있어 보이게 만드는’ 신조어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이를테면 포스코건설이 지난 13일 론칭한 새 하이엔드 아파트 브랜드 ‘오티에르(HAUTERRE)’는 프랑스어로 ‘높은, 귀한, 고급’을 뜻하는 ‘HAUTE’와 ‘땅, 영역, 대지’를 뜻하는 ‘TERRE’를 결합한 단어다. 고귀한 사람들이 사는 특별한 곳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H와 A를 쓴 브랜드 로고도 중세 유럽의 귀족가문 문장 같은 고급스러움을 지향했다.

SK에코플랜트의 새로운 하이엔드 브랜드 이름으로 유력하게 꼽히는 ‘라파사드(laFACADE)’도 프랑스어다. 건물의 외관 중 가장 중요한 정면을 의미하는 파사드에서 따왔다. 

이 밖에 SK에코플랜트가 올해 출원한 아파트 브랜드는 ‘드파인’, ‘라테오’, ‘에피토’, ‘아펠루나’, ‘제뉴’ 등으로 모두 외국어 이름이다.

무엇보다 요즘 아파트 이름은 건설사 브랜드에서 끝나지 않는 추세다. 고급스런 이미지를 부각하고 입지 등 아파트 단지의 특징을 담아 만든 하나뿐인 ‘펫네임’이 유행이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주로 아파트 브랜드 래미안 뒤에 라틴어 단어를 붙이는 사례가 많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재건축하는 서울 서초구 신반포15차의 새 이름은 ‘래미안 원 펜타스’다. 원 펜타스는 하나를 의미하는 원(One)에 라틴어로 엘리트를 의미하는 펜타스(Pentas)을 붙인 것이다.

지난해 수주한 서울 강남구 도곡삼호아파트 재건축 단지 이름은 ‘래미안 레벤투스’로 제안했다. 레벤투스(Reventus)는 라틴어로 귀환이라는 뜻이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당시 보도자료에서 도곡삼호 재건축 사업으로 부와 명예를 재탄생시키겠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서울 용산구 이촌동의 ‘래미안 첼리투스’ 역시 라틴어 이름이다. 첼리투스는 하늘로부터라는 뜻의 라틴어로 한강변에서 가장 높은 아파트(56층)라는 단지 특성을 담았다.

이 밖에도 ‘래미안 목동 아델리체’는 고귀한이란 의미의 스페인어 아델리오(Adelio)와 귀족, 품격이라는 뜻의 독일어 아델(Adel), 아끼다라는 듯의 영어 체리쉬(Cherish) 등 외국어 3개를 결합해 지었다. 삼성동 ‘래미안 라클래시’도 불어 라(La)와 영어 클래스(Class)의 합성어다.

다른 건설사들도 외국어 단어들을 섞어 단지명을 짓고 있다.

대우건설이 지은 서울 동작구 사당동 ‘이수 푸르지오 더 프레티움’은 가치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 프레티움을 가져왔다. ‘여주역 푸르지오 클라테르’는 세련된, 고급 등을 나타내는 영어 단어 클래시와 영토라는 뜻의 테리토리를 합성했다. 여기에 여주역까지 이름에 집어넣어 입지적 장점을 강조했다.

대구에 지은 ‘북구청역 푸르지오 에듀포레’도 역 이름에 에듀, 포레 등 단어를 써 역세권, 학세권, 숲세권 입지를 부각했다.

포스코건설이 지난해 7월 고양시 일산에 공급한 '더샵 일산엘로이'는 건설사 브랜드명과 각각 고급, 왕족, 최고라는 뜻의 단어인 럭셔리(Luxury), 로얄(Royal), 엑설런트(Excellent) 앞 글자를 따와서 만들었다.

대우건설, 롯데건설, 현대엔지니어링이 함께 수주한 경기도 광명시 광명뉴타운2구역 단지명은 '푸른 언덕의 성'이라는 뜻의 '베르몬트로광명'이다. 프랑스어로 푸른이라는 의미의 베르(Vert), 언덕이라는 뜻의 몬트(Mont)와 라틴어 캐스트로(Castro, 성)의 조합이다.

아파트 주민들이 단지명 ‘개명’에 나서는 사례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경기 수원시의 천천 푸르지오는 올해 2월 단지명을 지하철역 이름을 포함한 ‘화서역 푸르지오 더 에듀포레’로 바꿨다. 새 이름을 보면 단지의 특징을 강조해 가치를 높이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경기 의왕시에서는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등 호재를 아파트 이름에 직접 담으려는 움직임이 많았다. 

2021년 GTX-C노선 정차역으로 추가된 인덕원역 인근의 아파트 단지인 ‘의왕 내손 이편한세상’은 ‘이편한세상 인덕원 더 퍼스트’로 이름을 바꿨다. 같은 의왕시 내손동의 ‘포일자이’ 단지는 인덕원역과 도보로 40분 떨어진 곳이지만 지난해 7월 ‘인덕원 센트럴자이’로 단지명을 변경했다.

개발호재가 있는 서울 마곡지구 주변에서는 여러 단지들이 아파트 이름에 마곡을 넣기 위해 이름 변경을 추진하고 있기도 하다.

최근 아파트 이름들의 이런 추세를 두고 일각에서는 현대판 주거 신분제의 모습이 아파트 이름에도 반영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아파트 소유 여부에서 나아가 얼마나 비싼 명품 아파트에 사는지가 새로운 계급이 된 시대상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과거 아파트는 행정구역, 건설사 이름이 붙거나 그냥 ‘좋은 의미’를 담은 단어로 이름을 지었다.

1990년대에는 현대아파트, 쌍용아파트 같이 건설사 이름을 붙이거나 방배 우성아파트, 목동1단지 등 행정구역이 들어간 이름이 대부분이었다. 장미아파트, 개나리아파트와 같이 꽃이름을 쓴 아파트도 많았다.

경기도 고양시 화정지구 아파트단지 이름인 별빛마을, 달빛마을, 은빛마을, 옥빛마을은 1995년 마을이름 공모 당선작이다. 이는 당시 중학교 2학년이던 개그맨 유세윤씨가 응모해 당선된 것으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이 이름들은 아름다운 빛이 골고루 비쳐 희망이 솟는다는 의미로 지은 것으로 고급을 강조하거나 아파트 가격에 영향을 줄 입지적 요인들을 주렁주렁 달지도 않았다.

2000년대 들어서는 건설사들이 브랜드 아파트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1998년 분양가 자율화 제도가 도입되면서 아파트 품질 등 상품성 경쟁이 시작되면서 브랜드 아파트 시대가 본격화됐다.

여전히 한국 아파트시장에서 1, 2위를 다투는 브랜드인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래미안, GS건설의 자이 등 브랜드도 이 때 나왔다. 

또 2000년대만 해도 한화건설의 꿈에그린, 금호건설의 어울림 등 한글 브랜드가 있었다. 코오롱글로벌의 하늘채, 대우건설의 푸르지오, DL이앤씨의 이편한세상 등도 한자와 결합하긴 했어도 한글이 바탕이 된 아파트 브랜드이다.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