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마사요시 손(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가 반도체 설계 자회사 ARM의 실적 호조에 상장을 낙관하고 있다.
손 회장은 소프트뱅크가 ARM 기업공개 뒤에도 대다수의 지분을 보유할 것이라는 계획을 재확인하면서 상장과 매각을 동시에 추진할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미국 CNBC는 현지시각으로 12일 “손 회장이 소프트뱅크의 ARM 상장을 가능한 이른 시일에 추진하겠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소프트뱅크는 이날 1분기(자체 회계연도 4분기)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을 통해 1분기에 162억 달러(약 20조8천억)의 순손실을 냈다고 밝혔다. 분기 사상 최악의 실적을 기록한 것이다.
1천억 달러 규모의 IT기술 스타트업 투자 펀드 ‘비전펀드’를 통해 매수한 쿠팡과 중국 디디추싱 등 기업 주가가 크게 떨어지면서 소프트뱅크 실적에 악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소프트뱅크가 2016년에 인수한 반도체 설계기업 ARM의 회계연도 2021년 매출은 27억 달러로 지난 회계연도보다 35% 증가하면서 꾸준한 성장세를 나타냈다.
소프트뱅크는 320억 달러에 인수했던 ARM을 엔비디아에 매각하는 400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지만 지난해 결국 주요 국가 경쟁당국의 승인을 받지 못해 무산됐다.
손 회장은 ARM 매각의 대안으로 추진하는 미국증시 상장 성과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하며 반도체시장 성장에 따라 ARM의 기업공개에 긍정적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2023년 3월 전에 상장을 목표로 두고 있다고 말하며 증시 상황이 나아지는 대로 기업공개 일정을 서두를 수 있을 것이라는 계획도 내놓았다.
소프트뱅크는 ARM의 기업공개를 통해 그동안 비전펀드 투자 실패로 본 손실을 만회하고 재무구조를 안정화할 수 있는 수준의 자금 확보를 목표로 두고 있다.
손 회장은 이날 콘퍼런스콜에서 소프트뱅크가 ARM 상장 뒤에도 높은 지분율을 유지해 확실한 경영권을 유지하도록 하겠다는 계획을 확인했다.
이런 계획은 최근 블룸버그 등 일부 외국언론을 통해 보도됐는데 손 회장이 이를 직접 사실이라고 확인해준 셈이다.
손 회장이 소프트뱅크의 ARM 대주주 지위를 유지하려는 구체적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ARM의 매각 가능성이 여전히 논의되고 있어 소프트뱅크가 상장과 매각을 동시에 추진할 가능성을 열어두기 위한 포석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소프트뱅크가 ARM 상장 뒤에도 대다수의 지분을 보유한다면 다른 기업이 소프트뱅크에서 ARM 지분을 인수해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어 매각 논의도 지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반도체 설계기업 ARM의 미국 캘리포니아 사옥. |
박정호 SK스퀘어 대표이사 부회장은 최근 SK하이닉스가 참여하는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방식으로 ARM 인수를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가 ARM을 인수한다면 메모리반도체에 편중된 반도체사업 구조를 개선할 수 있고 ARM의 고객사인 반도체 설계기업 및 스마트폰업체와 협업 확대를 추진할 여지가 크다.
결국 소프트뱅크가 ARM 상장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SK그룹 측과 매각 논의도 동시에 진행하면서 상장 시기와 규모, 매각가 등을 조율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소프트뱅크가 엔비디아에 ARM을 통째로 매각하려던 것과 달리 경영권 확보에 충분한 수준의 지분만을 매각한다면 SK그룹과 같이 인수를 추진하는 쪽에서도 자금 부담을 덜 수 있다.
다만 미국 증시에서 반도체주가 장기간 약세를 지속한다면 소프트뱅크가 ARM 상장 계획을 철회하고 지분 전량 매각을 추진하는 쪽으로 방향을 돌릴 가능성도 충분하다.
손 회장이 ARM 상장이나 매각에 지나치게 높은 기대를 걸고 있다는 점이 앞으로 기업공개와 인수 논의 과정에서 모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그는 이날 콘퍼런스콜에서 소프트뱅크가 ARM 기업공개로 자금을 얼마나 조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느냐는 질문에 대답을 피했다.
그러나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손 회장은 3월까지만 해도 ARM 상장을 통해 600억 달러에 이르는 기업가치를 인정받겠다는 목표를 세워둔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소프트뱅크가 처음 ARM을 인수할 때 지불했던 가격과 비교해 약 2배 수준에 이른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