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반도체 지원금 삼성전자 소외되나, 인텔 마이크론이 연합체 주도

▲ 인텔 반도체 생산공장.

[비즈니스포스트] 미국 정부가 반도체산업에 들이는 520억 달러(약 63조6천억 원) 규모 지원법안이 결국 미국 반도체기업들만 수혜를 보는 ‘그들만의 잔치’에 그칠 수 있다는 전망이 퍼지고 있다.

인텔과 마이크론 등 미국 반도체기업들이 연합체를 구축하고 미국의 자체 기술력 확보와 생태계 조성을 강조하면서 TSMC와 삼성전자 등 아시아 기업들을 사실상 배척하고 있기 때문이다.

8일 IT전문매체 더레지스터 보도에 따르면 인텔과 마이크론, 아날로그디바이스는 보도자료를 내고 지난해 중순 설립된 ‘반도체 연합(Semiconductor Alliance)’에 합류한다고 발표했다.

반도체 연합은 비영리 보안 전문기관인 마이터인제뉴이티가 주도하던 연합체로 미국 반도체산업 발전을 위한 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미국 정부와 정치권에 조언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인텔과 마이크론 등 미국 핵심 반도체기업들이 연합체에 합류한 만큼 앞으로 미국 정치권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면서 반도체 관련된 정책 수립과 실행에 영향력을 키울 것으로 전망된다.

반도체 연합은 보도자료를 통해 최근 의회를 통과한 미국 정부의 520억 달러 규모 반도체 지원법안을 언급하며 이를 바탕으로 미국의 반도체 리더십 강화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미국 정부가 지원 대상을 선정하고 투자 보조금 및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과정에서 인텔과 마이크론이 활발히 개입해 유리한 방향으로 정책을 이끌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인텔과 마이크론은 그동안 미국 정부의 지원이 TSMC나 삼성전자 등 미국에 공장을 설립하는 아시아 반도체기업이 아닌 미국 반도체 관련기업에 집중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꾸준히 펼쳐 왔다.

미국이 세계 반도체시장에서 진정한 리더십을 확보하려면 자국 기업을 키워 자체적으로 기술력을 확보하고 미국 안에서 완전한 생태계를 구축해 키워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반도체 연합은 인텔과 마이크론의 합류를 발표하는 동시에 지원금의 상당 부분이 미국 내 기업과 관련기관에 쓰여야 한다며 “미국의 혁신과 미국의 성장에 기여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글로벌 반도체 경쟁에서 승기를 잡으려면 결국 자체적으로 연구개발을 강화해 충분한 지식재산을 확보하고 반도체 설계기업 및 협력사 생태계 발전에 힘써야만 한다는 의미다.

해외 반도체기업에 막대한 정부 지원금이 쓰여서는 안 된다는 기존의 주장을 더 강조하기 위해 중립적 성격을 띤 연합체를 통해 새로운 논리를 펼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반도체 연합이 지난해 설립 직후 내놓은 목표와 운영 원칙에는 인텔뿐 아니라 AMD와 퀄컴, 마이크로소프트 등 다른 미국 반도체기업 및 IT기업의 관계자 의견도 반영되어 있다.
미국 반도체 지원금 삼성전자 소외되나, 인텔 마이크론이 연합체 주도

▲ 미국 마이크론의 반도체공장.

미국 정부의 반도체 지원 법안이 이미 2020년부터 논의되어 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반도체 연합의 설립 목적 자체가 해당 법안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더레지스터에 따르면 인텔과 마이크론, 아날로그디바이스 등 연합체 참여 기업들은 이미 정부 지원이 해외 기업이나 기관에 쓰이는 대신 더 ‘공정한’ 방식으로 사용되도록 노력하겠다는 데 동의했다고 밝혔다.

연합체 관계자는” 반도체 연합의 노력이 미국과 중국 사이 반도체 패권 경쟁에서도 미국에 더 유리한 쪽으로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며 “미국 반도체산업 부흥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미국 정치권에서 거부하기 어려운 논리를 꺼내들어 정부 지원이 미국 반도체기업에 집중되도록 하는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반도체 연합은 “정부의 520억 달러 지원이 시작되기 전에 해당 자금이 폭넓고,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쓰일 수 있도록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앞으로 지원 방향은 미국 정부와 정치권에서 연합체의 이런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TSMC와 삼성전자는 모두 미국 정부의 반도체 지원법안에 수혜를 기대하고 지난해 잇따라 미국 내 대규모 반도체 파운드리공장 투자 계획을 내놓았다.

정부 지원을 받으면 투자에 필요한 비용 부담을 크게 덜고 미국 주요 고객사에 반도체를 생산해 공급하기 유리한 위치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텔과 마이크론 등 미국 대형 반도체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전면에 나서 사실상 훼방을 놓는 역할을 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수혜를 낙관하기 어려워졌다.

인텔 관계자는 반도체 연합 합류를 발표하는 보도자료에서 “미국 반도체산업은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다”며 “시장 참여자들이 힘을 합쳐 혁신을 이뤄낸다면 앞으로 큰 업적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이크론 관계자는 “반도체 연합은 미국에 가능한 많은 혁신을 이끌어 국가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목표를 두고 있다”며 “미국이 지속가능한 기술 리더십을 갖춰내야 한다”고 말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