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리니우스의 '박물지'(서경주 옮김, 도서출판 노마드)가 국내 최초로 번역돼 출간됐다.

박물지는 사물이나 현상을 종합적으로 기록한다는 뜻으로 쉽게 말하면 백과사전이다. 기원전 아리스토텔레스의 ‘동물지’를 비롯해 박물지로 불리울 만한 여러 저술이 동서양에서 쓰였지만 플리니우스의 박물지가 그 중에서도 최초의 걸작으로 꼽힌다.
 
새 책 플리니우스 '박물지', 서경주 로마시대 걸작을 최초로 번역 출간

▲ 플리니우스 '박물지' 표지. 


흔히 대(大)플리니우스로 불리는 가이우스 플리니우스 세쿤두스는 로마시대 정치가이자 군인, 법률가, 학자다. 문학과 예술에도 조예가 깊었다고 한다. 한 마디로 박학다식하고 다재다능했던 르네상스적 인간형의 원조격이라고 할 만한 인물이다.

플리니우스의 박물지는 총 37권으로 돼 있는데 그 중 일부는 사후에 소(小)플리니우스로 일컬어지는 조카에 의해 출간돼 중세 필사본, 근대 인쇄본을 거쳐 오늘날까지 전해졌다고 한다.

로마시대 단일 최대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이 책에는 천문학, 수학, 지리학, 민족학, 인류학, 생리학, 동물학, 식물학, 농업, 원예학, 약학, 광물학, 조각작품, 예술 및 보석 등과 관련된 약 2만 개의 항목이 망라돼 있다.

단순히 문헌을 참조해 정리한 내용 뿐 아니라 로마 총독을 지내기도 했던 플리니우스가 여러 곳을 다니며 경험하고 관찰한 풍경이나 풍습 등도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담겨 고대 서양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문헌으로 여겨진다.

저서에는 괴물, 거인, 늑대인간 등 상상력을 자극할 법한 허구적 군상들도 등장한다. 이는 현대의 판타지 문학과 영화, 나아가 온라인 게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캐릭터의 원형이 되기도 했다.

도서출판 노마드에서 국내 처음으로 번역해 이번에 선보인 이 책은 미국에서 출간된 ‘청소년을 위한 플리니우스The Boys’and Girls’Pliny‘(1885, 전 9권)를 텍스트로 재구성됐다.

모두 8부로 구성돼 있으며 각각 차례대로 지구와 원소에 대한 설명, 인간의 탄생과 구조, 육상동물, 가축, 수생동물, 조류, 곤충류, 금속을 다룬다. 부록으로 박물지에서 유래한 판타지와 게임 속 상상 동물을 다뤄 흥미를 더한다.

역자인 서경주씨는 문화방송 PD로 30년 간 방송에 종사했다. 상명대학교와 성공회대 초빙교수를 역임한 뒤 지금은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번역서로는 제임스 큐란의 ’미디어와 권력‘, 헨리 S. 솔트의 ’100년 논쟁, 무엇을 먹을 것인가‘, 헨리 D. 소로의 ’시민불복종‘(공역) 등이 있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근대 유럽인들이 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모른다’는 무지를 인정했던 데서 찾았다. 탐구하고 발견하고 기록하는 것은 비단 유럽인들 뿐 아니라 인류역사의 발전과 함께 해왔고 또 그것을 이끌어온 것이기도 하다.

기원 전후부터 동물, 식물, 광물, 지질 등 사물이나 현상을 다룬 박물지가 쓰인 것을 보면 인간의 호기심과 앎에 대한 욕구, 또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하는 열망이 얼마나 강한 지를 엿볼 수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