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로봇전문업체 보스턴다이내믹스가 현대자동차그룹의 인수 뒤 기존 기술중심 회사에서 벗어나 상업성을 강화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로보틱스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는데 그 중심에 선 보스턴다이내믹스에도 정 회장의 전략이 반영돼 나타난 변화로 풀이된다. 
 
로보틱스 힘주는 정의선, 인수한 보스턴다이내믹스도 상업화 서둘러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이전과 다른 상업성 강화기조는 보스턴다이내믹스가 기업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으며 상장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15일 보스턴다이내믹스에 따르면 로봇개로 불리는 4족보행 로봇인 ‘스팟(Spot)’의 기능확장 제품군을 2월 초 출시하고 홍보를 강화하고 있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스팟의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기존의 스팟에 물건을 집거나 문을 열 수 있는 ‘스팟 암(Spot Arm)’, 원거리 원격조정을 가능하게 하는 ‘스팟 엔터프라이즈(Spot Enterprise)’, 웹 기반의 운영소프트웨어 ‘스카우트(Scout)’을 더했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기존과 다르게 유튜브 등을 통해 스팟 암과 스팟 엔터프라이즈, 스카우트의 기능과 장점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2009년 1월 유튜브에 첫 영상을 올린 뒤 올해 1월까지 12년 동안 1년 평균 3.6개의 영상을 올리는 데 머물렀지만 신제품 출시 이후 올해 2월에만 벌써 3개의 영상을 올렸다.

보스턴다이내믹스가 스팟의 판매를 시작한 지난해 유튜브에 2개의 영상을 올렸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중과 소통에 크게 힘을 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3일 올린 24분짜리 영상에는 로버트 플레이터 CEO, 마이클 페리 사업개발담당 부사장, 크리스 벤첼 스카우트 기술개발자, 알 리찌 수석과학자 등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임원진이 다수 출연해 스팟의 새로운 라인업과 기술 경쟁력을 알린다.

보스턴다이내믹스 임원진이 직접 나와 상품을 설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보스턴다이내믹스가 그동안 만든 홍보영상은 별다른 설명 없이 로봇의 기술적 우월함만을 보여줬고 무엇보다 아무리 길어도 4분을 넘지 않았다.

보스턴다이내믹스가 현대차그룹을 새 주인으로 만나면서 상업성을 확보하는 데 힘을 주는 것으로 풀이된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기술을 지닌 로봇업체로 평가되지만 기술력을 상업화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구글과 소프트뱅크 등 세계 유수의 글로벌기업을 주인으로 만나면서도 상업화에 어려움을 겪자 기술적 우월성을 바탕으로 한 배타적 기업문화가 상업화를 가로막는 장벽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보스턴다이내믹스가 현대차그룹을 주인으로 만난 뒤 콧대를 조금 낮추고 시장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앞으로 어떤 성과를 내느냐는 현대차그룹 전체 로보틱스사업의 경쟁력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현대차그룹 로보틱스사업 경쟁력 강화의 핵심으로 평가된다.

정 회장은 2030년 현대차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에서 로보틱스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을 20%까지 끌어올릴 계획을 세웠는데 자체 경쟁력만 놓고 보면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대차그룹이 최근 공개한 걸어 다니는 지상이동 로봇 ‘타이거 X-1’은 미래시대 로봇 모빌리티 역할을 잘 보여주면서 유튜브 등에서 큰 관심을 받고 있지만 아직 실험용에 머물러 상용화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이와 달리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이미 지난해부터 스팟 판매를 시작했고 이번에 스팟 암과 스팟 엔터프라이즈, 스카우트를 통해 건설현장, 시설보안 등에 실질적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스팟의 활용성을 크게 높였다.

정 회장은 로보틱스사업에서 우선 시장 규모가 크고 성장 가능성이 높은 물류로봇시장에 진출하고 이어 건설현장 감독이나 시설보안, 재난구조 등 산업 구별없이 사업범위를 넓힐 계획을 갖고 있다.
 
로보틱스 힘주는 정의선, 인수한 보스턴다이내믹스도 상업화 서둘러

▲ 로버트 플레이터 보스턴 다이내믹스 CEO가 2일 스팟의 새로운 기능 출시를 알리고 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 유튜브 영상 캡쳐>


보스턴다이내믹스가 상업성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건설산업, 보안산업, 안전산업 등으로 선제적으로 시장을 넓힌다면 현대차그룹 역시 로보틱스사업의 새로운 산업 진출이 수월해질 수 있는 셈이다.

이는 정 회장이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인수한 이유이기도 하다.

정 회장은 각 분야별 다수의 기업과 협업하는 것보다 로봇시장에서 효율적으로 인지도를 빠르게 구축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를 결정했다.

보스턴다이내믹스가 기술적 우위를 유지한 채 시장에서 상업성을 인정받는 일은 상장을 위해서도 중요할 수 있다.

정 회장은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하면서 20%의 지분을 기존 주인인 소프트뱅크에 남겨뒀다. 4~5년 안에 상장을 통해 소프트뱅크의 출구를 확보해주기로 했는데 순조로운 상장을 위해서는 시장에서 기술력뿐 아니라 상업성, 성장성 등도 인정받아야 한다.

현대차그룹은 세계 로봇시장이 앞으로 5년 동안 연평균 32%가량 성장해 2025년 1772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보스턴다이내믹스가 상업성만 확보할 수 있다면 성장성은 충분한 셈이다.

정 회장은 지난해 말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를 발표하며 "세계 최고 수준의 로보틱스 기술을 보유한 보스턴다이내믹스와 함께 현대차그룹이 지향하는 인류의 행복과 이동의 자유, 한 차원 높은 삶의 경험가치 실현을 위한 새로운 길을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한재 기자]